<내일> (MBC,2022)
하얀 피부에 짙은 눈가 그리고 검은색 도포를 입는 밤손님, 저승사자는 검은 슈트에 ‘메이드 인 헤븐’이라는 로고가 적힌 중절모를 쓰는 스타일로, 도깨비의 친구로 그 모습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물론 미디어에서 그린 저승사자의 모습이다. 저승사자의 외관은 이처럼 작품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했어도 죽은 사람의 넋을 데려가는 그들의 임무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 <내일>에는 사람을 살리는 저승사자가 등장한다. 어떻게, 저승의 사자가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어째서, 사람을 살리려는 것일까?
주마등. 저승사자들이 일하는 일종의 기관으로 저승 독점기업이다. 이곳에는 수많은 팀이 존재하고 그중 ‘인도관리팀’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저승사자의 업무인 망자를 저승으로 데려오는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하루 평균 40명, 한 해 만 5천 명이 자살로 세상을 떠난다.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로 인구 감소가 시작된 대한민국. 이것이 저승사자가 사람을 살리게 된 이유다.
저승사자와 이들을 돕는 전산, 데이터 등 여러 팀의 또 다른 사자들이 ‘주마등’에서 일하는 이유는 소위 말해 금수저로 불리는 돈, 명예, 건강 모든 하나를 갖고 태어날 수 있다는 혜택 때문이다. 하지만 인구 감소로 환생할 곳이 없어진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결국 ‘주마등’의 회장, 옥황(김해숙 분)은 이 위기를 타개할 방안으로 ‘위기관리팀’을 만들어 사람을 살리기로 한다. 단, 수명이 다 한 사람이 아닌 스스로 생을 끝내려는 자살 예정자가 ‘위기관리팀’의 대상이다.
판타지적 분위기에 취해 보다가 너무도 현실적인 수치에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 <내일>은 ‘주마등’ 안에서도 이 ‘위기대응팀’의 활동을 주로 보여준다. 1-2화에선 학교폭력으로 그 트라우마 속에 살던 노은비(조인 분)가 사회에서 가해자를 다시 만나면서 살 마음을 잃었고, 3-4화에서는 취업에 계속 실패하는 남궁 재수(류성록 분)가 삶을 포기하려고 한다. 4회 후반부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사고로 잃고 자신의 삶도 놓으려는 우진(강승윤 분)이 등장한다.
삶을 포기하려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이 바라는 건 같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매일매일이 지옥 같다. ‘내가 나약한가? 뭐가 문제지? 노력이 부족한가?’ 자신을 돌아보며 다그치지만 달라지는 게 없다. 내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는 지구는 이내 곧 해를 토해 내 ‘내일’을 눈앞에 갖다 놓는다. 지옥이 하루 연장되었다. 이렇게 사나 죽으나 똑같이 지옥일 텐데, 그런 마음으로 이들은 스스로 생을 끝내려 했다.
저승사자가 사람을 살린다는 이야기의 구조도 신선했지만 죽고 싶어 하는 이들을 살리는 방식도 조금 달랐다. 보통은 이런 특별한 능력을 가진 등장인물이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를 응징하는 대리 복수를 통해 삶을 포기한 이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었다면 ‘위기관리팀’는 자살 예정자를 상대한다. 환경이 변한다고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 있겠지만 상황만 믿기엔, 상황은 너무도 유동적이다. 언제나 내 편이 아니다. 하지만 마음의 주인은 우선 나다. ‘내 마음’이다. 위기관리팀 팀장 구련(김희선 분)은 사실은 죽고 싶지 않은, 그들의 마은 속 저 안에 묻힌 살고 싶어 하는 진심을 터트린다.
자살 예정자를 대하는 구련의 태도는 친절하지도 다정하지도, 당연히 상냥하지도 않지만 어쩐지 구련은 옥상 위 난간에 올라선 이들의 마음을 아는 듯하다. 옥황이 지옥에서 데려온 구련은 그녀의 죽음과 ‘위기관리팀’을 맡게 된 배경에 어떠한 사연이 있는 듯 보였다. '주마등' 안에서도 자살예정자를 향한 시선이 좋지는 않다. 그래서 자살자들에게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인도관리팀’ 팀장 박중길(이수혁 분)과 사사건건 부딪힘에도 자살자를 구하는 일에 전심을 다한다.
그리고 엉겁결에 구련 팀장과 임룡구(윤지온 분) 대리와 한 팀이 된 최준웅(로운 분)은 구련이 취하지 못하는 따스한 시선으로 자살자를 대한다. 준웅이 자살 예정자에게 되찾아준 건 ‘웃음’ 그리고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이었다. 은비를 난간에서 구하고 죽고 싶은 마음을 누그러트린 건 구련이었지만, 그녀를 살게 한건 준웅이었다. 준웅은 은비가 학창 시절 보면서 웃고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무한상사의 정총무(정준하 분)를 만나게 해 주면서 그녀를 웃음 짓게 한다. 아주 잠깐의 짧은, 반사적인 웃음이었을지 몰라도 그 웃음 한 번이 살고 싶던 마음에 꽃을 피웠다. 준웅은 재수에게 과거 아버지와 먹었던 치킨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그 치킨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아무튼 소중한 추억이다. 그때 아버지가 해주었던 실패에 관한 이야기는 재수에게 다시 시작할, 다시 살게 할 마음을 부어주었다.
자살 예정자들이 살려는 마음을 먹고, 그 마음이 안전 수치에 도달하면 ‘위기관리팀’의 공시적인 임무는 끝난다. 물론 구련의 임무는 남았다. 바로 가해자에 대한 응징. 하지만 자살 예정자가 고통을 받았던 이야기에 비하면 응징에 관한 부분은 극에서 짧게 다뤄진다. 그래서 사이다가 부족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위기관리팀’의 목적은 자살 예정자를 살리는 것, 응징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구련은 말했다. 복수도 방법이지만 잊는 것도 방법이 되듯 이겨내는 방식은 다양하다. 다만 '위기관리팀'은 자신들이 상황을 해결하고 자살 예정자가 만족하는 형태를 취하지 않고, 자살 예정자 스스로 삶의 이유를 찾게 했다는 데 의미가 있는 듯하다.
이들이 삶을 이어가고자 하게 된 전환점이 좋아하던 예능 프로그램, 맛있게 먹었던 치킨 등 일상적인 것이었다. 구련의 말처럼 좋은 날씨도 때로는 그렇지 않은 날씨도 살려는 이유가 충분히 된다. 너무 이겨내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무 이겨내려고 특별한 방법들을 찾고, 이런 상황에서도 남과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의 무게에 눌려 잊은, 모양이 변형된 자신 안에 있는 소중한, 달콤한, 기분 좋은 기억과 순간들을 찾아봤으면 좋겠다. 작고 별 볼 일 없어 보일지라도 그게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다면 충분하다. 삶의 소망은 어쩌면 이렇게 평범한 그래서 우리가 자주 지나치는 것들에 가득 담겨있을지도 모르겠다. "일어나. 그 자리가 너의 끝이 아니니까." 오늘 하루가 버티기 힘들지만,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발견하며 앞으로 나가다 보면 ‘죽지 않길 잘했다’고 말할 ‘내일’을 만나게 될 거라고 믿는다(드라마 <킬미힐미> 오리진(황정음 분)의 대사).
앞으로의 이야기는 구련이 가진 사연이 밝혀지면서 ‘위기관리팀’의 존재 이유를 박중길 팀장을 비롯 주마등 모두가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준웅을 통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 이타적인 삶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해줄 듯하다. 생각보다 저승사자에게로부터 받는 위로가 따뜻하다. 이제 시작인 드라마 <내일>이 들려줄 앞으로의 이야기도 기대된다.
이제까지 상상해본 적 없는, 사람을 살리는 저승사자를 통해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드라마 <내일>은 웨이브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제작사 슈퍼문픽쳐스, 스튜디오N 방송사 MBC
제작진 신인수, 권미경 연출 김태윤, 성치욱 극본 박란, 박자경, 김유진
김희선, 로운, 이수혁, 김해숙, 윤지온 등 출연
본 원고는 wavve 리뷰단 활동의 일환으로 '웨이브(wavve)'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주관적 평가를 포함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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