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대사를 끝으로 손녀는 엄마 방에서 옛날 일기장을 찾는다. 그렇게 세대가 거슬러 올라간다. 손녀의 세대에서 딸의 세대로. 이 감상을 쓰고 찾아보던 중 tvN 드라마 sns에 공개된 드라마 관전 포인트를 봤다. “우리 엄마, 엄마의 엄마, 그리고 나” (드라마 1화에서 자연스럽게 관전 포인트를 느끼게 한건 정말이지 연출과 필력, 연기 세 박자의 힘이겠지!! )
손녀가 사는 세대는 꿈이 없는 건 용납을 못 하는데 그 꿈이란 게 취업과 연관되어 있어야 하는, 제한된 꿈을 강요받는 세대다. 아직 고등학생인데 뭐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안심되는, 벌써 달리는데 익숙해진 세대다. 엄마는 시대가 꿈을 뺏는 세대였다. IMF 국가부도 앞에 하루아침에 인생에서 꿈을 돈을 가족을, 그 셋을 한꺼번에 빼앗아가던 세대. 그러나 꿈이란 게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던 세대.
검색어를입력하세요WWW의 작가 권도은과 감독 정지현이 만났다. 나희도가 찬 시계며 가방이며 운동화며 머리를 묶은 곱창밴드, 만화책방 그리고 풀하우스. 티셔츠 밖으로 나오게 건 은 목걸이, 그 위에 단추를 풀고 입은 조금 큰 사이즈의 남방, 폭이 넓은 바지의 백이진의 패션. 삐삐, 모뎀을 연결해서 채팅을 하던 덩치 큰 386 컴퓨터 등 90년대 소품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중간중간 자막이나 화면 톤까지 변화를 주어 90년대 느낌을 제대로 살린다. 첫 화 엔딩 곡에서 오랜만에 들은 배기성 씨의 목소리에 나는 <마지막 승부>를 같이 보던 언니는 <질투>를 떠올렸을 정도로 OST까지 시대의 감성을 담았다.
디테일한 설정과 정말로 희도 같고 이진이 같은, 당시 한 번은 만나봤을 것 같은 두 인물을 구현해 낸 배우들의 연기까지. 1998년 청춘의 불안과 성장을 다룬 청량 로맨스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이야기를 담을 것 같아, 설렌다.
잃을 수 없는 것으로 희도는 꿈과 동경을 말했다. 꿈과 동경은 어쩐지 연장선상에 있는 단어들 같다. 꿈이 있기에 동경하는 대상이 생기거나, 동경하는 대상이 있어 꿈이 생기거나.
막연해 보이는, 추상적인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능력은 현실에 벽에 부딪히는 횟수가 늘면서 점점 줄어든다. 나이가 든다는 걸 이런 데서 느끼고 싶지 않은데, 어떤 이의 말처럼 세상아 덤벼라! 했다면, 이제는 세상이 덤빌까 무섭다.
잃을 수 없다고 말한 희도의 꿈과 동경을 시대가 빼앗았다. 처음으로 부딪힌 현실이다. 물론 희도는 시대 따위에 자신의 꿈을 빼앗길 생각이 없다. 잃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으니까. 방법을 모르겠다는 희도에게 익명의 채팅 친구, 인절미가 말했다.
“너의 세계가 사라졌다면 그 애의 세계로 가.”
90년대 인소 감성이지만, 이런 문장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한다. 이어지는 그 애의 세계로 가기 위한 희도의 엉망진창 현망진창의 계획들은 유쾌했다. 나중에 나오는 대사지만 그런 희도를 보며 “나도 이제 그렇게 하고 싶어” 라던 이진의 대사를 따라, 나도 어느 세계로 가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꿈과 동경을 빼앗기지 않을 테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처음은 서른에도, 마흔에도, 쉰에도 생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잘하지 못한다고 무쓸모의 인간으로 자신을 몰아갈 필요는 없다. 내가 아는 당신이라면 맡은 바 일을 잘하기 위해 이진이 한 것 처럼 한 시간을 일찍 시작하거나 남들보다 늦은 퇴근을 하기도 하며 최선이란 것을 이미, 하고 있을 테니까.
이진도 오늘 한번, 처음이라 배달이 한 시간 늦은 것뿐이다. 그러니 누군가 당신을 무쓸모 취급을 하거나, 저 아저씨처럼 화부터 낸다면 이 대사를 비장의 무기처럼 꺼내보자.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잖아요. 그 처음이 지금이니까 당분간 서툴겠습니다. 대신 빠르게 익혀나가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응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기울이고 있는 최선 중에는 적응에 필요한 ‘시간’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처음’이 없는 시간을 오래 지나고 있다. 대신 누군가의 처음을 보고 있다. 나도 서툰 시간을 보다 이해하고 기다려 주는 자세로 다시 한번 마음을 고쳐야겠다.
찐 덕후의 마음. 만화 속 한 장면 같았던 희도와 유림의 첫 만남.
이후 덕후가 맘고생할 줄 몰랐지만, 갈등이 있어 더 찐하게 느낄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우정 이야기였다.
미성년자와 성인의 상상력 차이라. 이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머리를 강타하는 충격이 있었다. 이런 대사는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작가님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을 정도로.
희도는 펜싱부가 있는 태양고로 전학을 가기 위해 자신의 펜싱을 지지하지 않는 엄마를 설득하는 것보다 강제전학을 당하는 게 더 빠르다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여러 꾀를 쓰고 급기야 나이트클럽까지 왔다. 그 자리에서 우연히 이진을 만나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지만 희도는 강제전학이 가로막혔다고만 생각해서 이진의 도움을 방해로 여겼다. 강제전학이 어떤 건지 알지 못했기에 생긴 해프닝이라기에 이진의 도움이 없었다면 희도가 겪었을 일은 웃음으로 넘길 수 없었을지 모른다.
미성년의 아이들이 소위 말해 비행을 저지르게 되는 게, 그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부족한 상상력과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주는 어른이 부족하기에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진을 통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특혜인지 알게 된 희도는 엄마에게 도움을 청해 무사히, 태양고로 전학을 가고 그곳에서 펜싱 국가대표가 된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도움을 청할 대가 있다는 건 비단 미성년자에게만 주어진 특혜는 아니겠다. 상황에 따라, 시기에 따라 도움을 요청할 누군가가 있다. 다만 나는 이즘 되면 혼자, 알아서 해야 한다는 의식이 도움을 청하기 주저하게 되고, 도움을 줄 사람이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아 손을 들기 어려웠던 것 같다. 도움이라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 혼자 애쓰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도움을 청할 곳이 있다면 그렇게 해봐야겠다. 실력이 부족한 것도, 유약한 것도 아니다. 도움을 청할 곳이 있다는 건 언제나 누려도 되는 특혜일 뿐.
(확장된 글 <도움을 청하는 특혜> : 바로가기)
솔직 담백의 인간화, 나희도.
화도 많고 흥도 많고 에너지도 가득한 당신은 무조건 E일 거야. 그런데 그 에너지가 부담스럽지 않아. 담백하다는 거지. 심지어 이진과 첫 만남에서 화를 내고 싶어 화를 내고 있다는 이진이 어이없지 밉진 않더라. 감정만 담백하게 표현하는 거,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건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한다마는 …
“못 들었냐? 그래도 괜찮아, 오늘은 다 용서할 수 있어~ “라고 말하면서 행복하다고 말할 때 나도 행복해지더라. 아무 데서나 울고, 함부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더라. 코너를 돌기전에 멈춰 서서 희도의 목소리를 듣고, 축하해라고 말하는 이진의 목소리에 담긴 세 음절의 각기 다른 높낮이에도 마음을 흔들 정도로, 청량한 태양고인간들
티키타카 속에 급고백.
저렇게 아무 감정 없이, 좋다는 말하면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데 … 이런 무심한 표현이 이진의 전매특허였던 거지....
대한민국 펜싱 국가대표 고유림. 이 말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펜싱은 그녀가 1등이란 뜻이다. 하지만 오늘 연습경기에서 희도에게 졌다. 졌다는 사실이 분해서, 자존심 상해서 희도에게 까칠하게 구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희도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희도의 이름도 모른다고 했지만 유림은 희도가 자신을 알기 훨씬 이전부터 희도를 알고,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펜싱 신동 나희도를.
희도는 유림의 실력을 순수하게 동경하고 좋아한다. 설령 그 마음이 무시당했다 해도, 여전히 당당히 좋아한다. 그건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단단한 자아를 가졌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희도가 누군가를 싫어하게 되면, 진짜 무서울 것 같다.
숨어서 우는 애, 유림.
어디서든 우는 애, 희도.
솔직하고 담백하고 당당하게 감정을 보이는 희도가 사랑스럽다. 이진이 희도에게 계속 눈길이 가는 마음을 모르지 않다. 하지만 숨어서 울 듯, 감정을 솔직히 보이는 법을,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자란 유림이 나는 어쩐지 조금 더 친근하다.
드라마에 인소 재질이 있는데 거기 딱 맞는 남조네. 그런데 자네 이름도 지웅이라고? 껄껄껄 웅, 웅, 웅자로 끝나는 말은 최웅, 김지웅, 문지웅 7반 이쁜이 유림은 펜싱 국대가 맞는구나, 아주 팩트로 훅 찌르는데, 지웅이 타격감 없고. 유명한 이쁜이의 등장
코치님이 후려치지 말라는데
네? 저한테 하시는 이야기세요?
펜싱 선수들 아니랄까 봐
대사가 간결한데 빠르게 침투해 옆구리를 쿡 찌르거나 머리를 퉁-하고 치고 간다. 하나도 안 아파 보이는 펜싱 킬이 상처도 남길 정도라는데 … 이 드라마 대사가 꼭 그렇다. 계속 남아.. 맴돌아. 무언가 잘하는 하나가 있겠지, 스스로를 너무 후려치지 말자. 자괴감이 들고 질투심이 폭발하는 요즘 코치님의 대사는 나를 인간답게, 정신을 차리게 해 주었다.
나이가 들면 늘어나는 거라고는 나이를 가리키는 숫자나 몸무게 뭐 그 정도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한 살, 한 살 늘어나면서 예전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현실적인 고민들이 하나씩 쌓이자 거대한 탑이 되었다.
이진이 말한 열여덟의 고민들은 하루 내지 이틀이면 자연히 해결될 고민들이었지만 지금 내게 온 고민들은 중장기적 사안이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부모님의 노후다. 암 진단과 허리 디스크 재발에 고통스러우면서도 가장으로서 책임에 더 괴로워하는 아빠를 보며 아빠도 사실 나랑 다를 게 없을 텐데… 사는 게 막막하고 두려운 건 아빠라고 다를 게 없을 텐데, 누군가 책임지는 게 부모라고 해서 자연스럽고 힘들지 않은 게 아닐 텐데,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열여덟 그때로 돌아가고 싶냐는 물음에 “간절해”가 아닌 “절실해”라는 이진의 대답이 남다르게 들렸다.
하찮은 고민을 할 수 있는 게 행복이었다는 걸, 시간이 오래 지나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이의 문제 일가. 갑자기 오늘 어떤 양말을 신을지 아침마다 진지하게 고민한다던 구달 작가님 <아무튼, 양말(제철소, 2018)>의 글이 떠올랐다. 오늘은 홈런볼을 먹어야지. 어젯밤부터 해온 고민이다. 이런 하찮은 고민 하나 둘 곁에 두는 게 마음을 달래는 일이 될 줄이야. 열여덟이 된 기분이다. 지난 걱정을 그리워할 줄이야. 이 드라마의 정서라는 걸, 다 지난 지금은 알겠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안 나오나 했는데 찬란하게 푸르스름한 청춘이 느껴지는 대목에서 김윤아 님의 목소리가 흐르니, 아쉽고 아쉬워진 순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 날의 기억이 두 사람에게도 그런 감정으로 떠오를까. 행복하게 보는데 마음 한 구석이 저릿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시대가 다 포기하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행복까지 포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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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트레이서 (MBC,2022)에서 자존심이야 한번 버려도 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대사가 나온다. 돈은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다지만 아무튼 내 거란 생각이 없으니 악착같이 잡는다. 하지만 자존심은 내 안에 있는 거라 생각해 한번쯤 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과연 한 번으로 끝날까. 무언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 한번 포기한 자존심을 두 번, 세 번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자존심이 과연 남아있을까?
행복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위 대사가 떠올랐나 보다. 행복하기를 포기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행복 같은 건 좀 없어도 괜찮아, 죽을 것 같아도 이 순간만 지나면 어떻게든 행복해질 거야,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포기된 행복은 기특하게, 알아서 내가 원하는 자리에 먼저 가서 앉아 있지 않는다. 행복이 뭔지 모르니 행복해야 할 순간 행복할 수 없다.
이진이 행복을 포기한 마음을 안다. 미안함과 죄송한 마음일 테다. 알지만 알아서 더 마음이 아프다. 그런 너이기에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하니까. 쉽게 행복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니까. 그거 생각보다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런 이진에게 웃음을,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주고 남몰래 누리자는 약속까지 하는 희도가 숲의 요정 같았다.
아무 데서나 잘 우는 네가 좋다고는 등 좋다는 말을 별생각 없이 하던 이진이나 자기랑만 행복하자는 말을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하는 희도나, 닮았네 닮았어. 그럴걸 고백이라고 하는 줄 모르나 봐(속닥속닥). 열여덟인데 희도 언니라고 불러 돼요?
희도한테 국사 책 던지고 갈 때 이쁜이, 닉값하러 가는구나 했는데,
지웅아 넌 크게 될 거 같아
7반 이쁜이로 자신을 브랜드화시켰으며, 팬 하고 사귀지 않는다는 인플루언서로서 자기 관리도 철철 하고 선은 지키지만 호감은 표현할 줄 아는 그 적절함까지
희도는 IMF로 펜싱부가 해체되면서 강제전학을 당해서라도 국대가 있어 절대 없어지질 않은 펜싱부가 있는 태양고로의 전학을 꿈꿨다. 그리고 지금은 24위라는 순위에서 국가대표 선발전 일등을 꿈꾼다. 이를 이루기 위해 희도는 양찬 미 코치를 찾아가 번번이 괴롭혔다. 문을 두드렸다. 시대는 분명 희도에게서 꿈을 빼앗았다. 하지만 이번엔 시대가 희도를 돕는다. 이 놈의 시대는 왜 이러는 걸까? 이럴 거면 처음부터 뺏지 않았으면 되는 거 아닌가.
얼마 전 영화 #이상한나라의수학자 시사회에 다녀왔다. 잔잔한 영화가 그날 이후부터 계속 내게 말을 걸고 있다. 학성은 지우에게 어쩌다 보니 수학을 가르쳐준다. 수학은 정답을 찾아가는 일처럼 보인다. 복잡해도 정답이 있다는 믿음이 그 긴 풀이 과정을 묵묵히 임하게 한다. 하지만 학성은 수학이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풀이가 중요하다 강조한다. 그의 말은 결과보다 과정을 강조하는 흔한, 이제는 진부해진 옛 교훈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풀이 없이 답에 닿을 수 없는 게 수학인 것처럼, 과정 없는 인생이 없으니까.
물론 인생에는 답이 없다. 그렇기에 풀이가 더 중요하단 생각이다. 학성은 잘못된 문제에서는 옳은 답이 나올 수 없다고 했다. 답이 없는 인생이어도 생의 어느 자락엔 인생이 내가 살아온 시간이 옳은 답을 내는지 그른 답을 내고 있는지 말해주는 때가 온다고 생각한다. 그때 옳은 답이길 원한다면 우린 풀이과정에 성실히 임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옳은 풀이가 옳은 문제를, 답을 만들 테니까.
꿈은 아무나 꾼다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린 꿈을 잃고 산다. 꿈을 꿔봤자 이뤄지지 않을 뿐더러 꿈을 꾼다는 게 터무니없는 일로 느껴지니까. 그래서 남들 사는 것처럼 살려고 한다. 내 인생인데 풀이 과정 없이 남의 답을 정답이라 여기는 사람에겐 인생은 어떤 답도 보여주지 않으리라. 시대가 희도에게 꿈을 빼앗고 이제 시대가 돕는다고 했지만, 내 눈엔 꿈을 빼앗은 시대에게 찾아가 희도는 다시 자신의 꿈을, 펜싱을 뺏아온 것 같다. 그녀는 단순하지만 우직했고 기다리기보다 먼저 움직이는 타입이니, 시대를 기다리기보다 찾아 나선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린다.
희도가 풀어내는 인생이란 문제의 풀이과정은 경쾌한 음을 갖고 있을 것 같다. 이학성과 보람이 원주율을 가지고 멋진 연주를 해낸 것처럼. 우리도 포기하지 않고 풀이과정에 임하다 보면 답을 만나지 않을까. 우리가 적어간 풀이과정도 좋은 연주를 들려주면 좋겠다. 이 또한 꿈이고, 꿈을 꾸는 매일이다. 그러다 보면 시대가 돕는 날도 있겠지. 아니라면, 뺏아오던가 ◡̈
포기하지 말자. 객기에 가까운 무조건 적인 할 수 있다! 보다 ‘오늘은 안 됐지만, 내일 다시 한번 해봐야지’라는 여유를 갖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보자. 이것은 수학자의 용기란다
위로하는 법, 응원하는 법
스물하나스물다섯에서 느끼는 다정함은 두 사람이 쓰는 마음에 있다. 길게 늘어트리지 않은 단정한 문장은 무겁지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 않다. 진심의 늘 이렇다.
희도의 집으로 가는 길목은 여러 개일 텐데 언제부턴가 희도는 이진의 집 앞을 지나간다. 골목길에서조차 온기가 남은 걸까. 두 사람은 자주, 함께 이 길을 걸으며 마음을 나눈다. 다정한 골목들. 말로 그리고 온기로 전하는 두 사람의 다정함은 설렘 이상에 벅참이 있다.
누군가 나를 믿어준다는 것, 나는 보지 못 하는 나를 발견해 선뜻 믿어주는 일, 그 벅찬 응원을 보니 희도가 무척이나 부러워진다.
이진을 걱정하는 아버지, 아버지를 걱정하던 이진. 이진을 걱정하는 희도, 그런 희도를 걱정하는 이진.
걱정하는 마음이 근심이 될 수도 있지만, 애정 하는 마음이 베이스라면 애틋함에 가깝겠지. 나의 걱정이 모두 이런 애틋함이 묻어나면 좋겠다. 근심 말고
널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무서웠어….. 하 ….. 이들은 이런 대사를 참 아무 감정 없이 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더 설레게 만들어 엎어주는 줄 알았지… 나도 참 식상한 사람이었어 진짜 내 겨드랑이 찢어져도 되는데!! 설레는 키 차이 웃다가 또 웃었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