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알키비아데스 2>(144d~151c)에서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앎에 대한 이야기와 좋은 기도란 어떤 기도인지, 마지막으로 알지 못한다면 침묵하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를 했다.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앎 즉 가장 좋은 것에 대한 앎이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래야지 우리는 '분별 있는' 행위가 가능하고 행하려는 것을 알고 제대로 행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전쟁하는 것만 알고, 정치적으로 이용만 할 줄 알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알지만, 언제, 어떻게 전쟁을 해야 하는지와 죽여야 하는지, 정치적으로 이용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이러한 사람들은 일정 부분에 대한 앎만 가지고 있을 뿐 정작 가장 좋은 것에 대한 앎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 말했다.
또한 가장 좋은 것에 대한 앎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지성 없이 판단을 신뢰하는"(p.220) 즉 참에 대한 앎은 없고, 그저 다가오는 상황에 따른 판단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실행하는 모든 것들은 지성에 기반하지 않고 행동하기에 이익보다 손해를 얻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옳고, 좋게 살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앎을 생각해야 된다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좋은 기도란 기도인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는 라케다이몬(스파르타) 사람들의 이야기로 예시를 든다.
"라케다이몬 사람들은 (...)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매번 비슷한 기도를 드린다네. 하지만 그들의 경우에는 그들 자신을 위해서 좋은 것들에 더해서 아름다운 것들도 주십사고 신들께 청하지"(pp.225~226)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우 분별없이 그저 신에게 "선물드리면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p.228)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신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제의는 누구든지 할 수 있기에 신은 제물을 욕심내지 않고, 인간의 경건하고 올바른 영혼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라케다이몬 사람들의 기도는 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비는 기도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알지 못한다면 침묵하는 편이 낫다.'는 부분이다. 해당 부분은 앞선 부분의 이야기와 이어진다.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어떤 기도가 좋은 기도인지 설명해 준 다음에 좋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쁜 것을 자신도 모르게 신에게 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는 잘못된 기도를 할 것 같다면, 기도하지 말고 참된 기도를 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는 괜히 기도했다가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괜히 위험수를 던지지 말고 때가 올 때까지 수양하면서 기다리라고 말한다.
해당 부분을 보면서 한 학자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물론 소크라테스와는 다른 의미를 지니겠지만, 필자가 봤을 때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알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알 수 없는데 말한다는 것은 거짓일 뿐이니까.
<알키비아데스 1•2>를 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은 고대 철학이 삶에 지혜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필자가 고대 철학을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철학은 순서대로 공부해야 된다. 무턱대고 근대부터 공부하면 돌고 돌아 결국 다시 고대부터 공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