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문화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현대사회의 대중문화는 특정 문화의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독특한 문화를 소비하는 마니아(mania)들이 확산되고 있다. 마니아층으로 대변되는 하위문화는 기존의 권위나 이념으로부터 자유롭고, 소수성과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새롭고 낯선 것, 독특하고 마니아적인 것을 요구하는 하위문화의 갈래에서 뻗어 나온 것이 오타쿠 문화이다.”
‘오타쿠’는 앞서 말했다시피 ‘포스트모던’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아즈마 히로키는 “충분히 근대화되어 있지 않는 이 나라는 거꾸로 가장 쉽게 포스트모던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근대적인 인간관이 충분히 침투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꾸로 포스트모던적인 주체의 붕괴에도 저항감 없이 적응할 수 있다.”1)고 주장했다.
가라타니 고진 또한 “다케우치가 생각하기에 아시아(특히 중국)가 정체된 것은 서양문명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본이 문명개화에 성공한 것은 ‘저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자기’가 없었기 때문이다.”2)라고 서술해 히로키의 의견이 뒷받침된다.
오타쿠는 현재 좋은 취급을 받았지만, 이전까지는 그렇지 못했다. 왜냐하면, 친해지거나 사귀고 싶지 않는 대상으로 거론됐다. 그리고 대중이 오타쿠를 꺼리는 이유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폐쇄적 이미지에 거리감이 들기 때문이라 답했다.
하지만 오타쿠는 자신이 긍정•부정적인 평가를 받아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일본의 사회와 문화적 현상들을 설명하는 요소들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일본 사회에서 오타쿠는 하위문화의 영역을 벗어나 친근하고 보편적인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자리를 잡는 추세이다. (중략) 그들은 현재 일본의 문화현상을 이끌어가는 ‘주체’다. 대중문화는 문화의 소비나 수요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문화는 가치 믿음체계를 통해 성립된다. 오타쿠 문화는 일본 자체에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나라들이 서로 간에 교류를 확대시켜 문화적 유사성이 공존하고 있다.”
이처럼 오타쿠들은 일본 문화를 이끌어가는 주체이다. 그리고 이전에 그들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상관없다. 왜냐하면, 현재 그들이 ‘주체’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볼 때, 일본의 유행 감각은 매우 민감하고, 적극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일본 사회는 유행에 뒤처지고,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시대의 조류에 뒤 떨어지거나 맞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자신들만의 특별하고 소중한 것에 집착하고 열정을 보이는 오타쿠들은 시대에 맞지 않는 범주에 속하는 집단이다.” 이처럼 오타쿠는 당시 일본 사회가 규정한 범주에 맞지 않는 집단이다.
오타쿠는 기존의 팬이나 마니아 등의 개념과 같이 한시적으로 유행을 타다 사라지는 용어와는 확실히 차원이 다르다. 팬은 대상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상태를 의미하고, 마니아는 좋아하는 상태를 넘어서 수집이나 연구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단계이다. 김지룡은 오타쿠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팬, 마니아, 그 다음의 단계가 오타쿠다.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득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말한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점은 같지만 여러 번의 질적인 도약을 거쳤다는 점에서 단순한 팬이나 마니아와는 차원이 좀 틀린 사람들이다.”
이처럼 오타쿠는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한 사람이다. 아즈마 히로키의 오타쿠 정의처럼 그들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등의 일군의 서브컬처에 탐닉하는 사람들의 총칭이다. 오타쿠의 탐닉은 팬이나 마니아와는 다른 차원에서 대상에 관한 몰입과 열중이다.
기본적으로 오타쿠들은 인간관계가 발전되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의 정열과 흥미를 충족 시켜주는 것들로 가득한 집에 칩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일반 사람들이 단순히 アニメ와 게임을 좋아한다고 해도 오타쿠가 될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연구를 뛰어 넘은 다른 차원에서 대상에 관한 몰입과 열중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이목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소신대로 살아가는 오타쿠는 일본 사회의 ‘이단아’이자 ‘trendsetter’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같은 작품은 전혀 일반인들의 흥미도 주목도 끌지 못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오타쿠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며, 그들의 바이블과 같은 대접을 받는 작품이다. 그리고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라는 작품의 총체적 이해를 위해서는 성서, 양자, 물리학, 생물학, 철학, 심리학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분야를 섭렵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만 제대로 접근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오타쿠들의 관심 분야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전문가 수준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인간의 생체 메카니즘을 지닌 로봇인 ‘에바’와 그것을 조종해야 했던 내성적인 14세 소년인 신지의 내면세계와 정신세계를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으로서 오타쿠들은 늘 혼자 세상과 맞서야 했던 고독한 주인공의 삶 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고, 난해한 작품에 대한 정보욕구를 강하게 느끼면서 작품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처럼 에반게리온 속 ‘신지’의 세계와 ‘오타쿠’의 고독의 세계는 이처럼 잘 맞아떨어진다.
오타쿠가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는 대상은 그들에게는 삶이자 현실이다. 하지만 동일한 대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오타쿠 내에서도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에 있어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80년대 접어들면서 오타쿠들은 초기 오타쿠 세대와 후기 오타쿠 세대로 나뉘면서 다양한 차이를 지닌 방식으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가 3세대에 걸쳐서 변화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50년대 전후 출생을 중심으로 <우주전함 야마토>나 <기동전사 건담>을 십대에 본 제1세대, 70년대 전후 출생을 중심으로 앞 세대가 만들어낸 발전되고 세분화된 오타쿠계 문화를 십대에 누린 제2세대, 80년대 전후 출생으로 <에반게리온>붐 때 중고생이었던 제 3세대로 나뉘는 것으로, 이 세 그룹의 취미 지향은 각각 미묘하게 다르다. 예를 들면 만화나 애니메이션, 컴퓨터는 세대를 넘어 큰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제1세대에서 SF나 B급 영화에 향해 있던 관심은 제3세대에서는 대개 미스터리나 컴퓨터 게임에 대한 관심으로 바뀐다. 또 제3세대는 십대 중반에 인터넷의 보급을 맞이해 동인활동의 중심이 웹 사이트로, 일러스트의 중심이 컴퓨터그래픽으로 바뀌며 앞 세대와는 유통경로도 표현 형식도 크게 달라졌다.”
이처럼 오타쿠도 기술 발전과 함께 변화하는 존재다. 앞서 말했다시피 1세대와 달리 3세대는 동인활동을 웹 사이트로하고, 일러스트의 중심이 컴퓨터그래픽으로 바뀌면서 시대가 변화하면서 그들에게도 시대와 같이 변화했다. 어찌 보면 오타쿠는 다른 의미에서 유행을 잘 따라간다.
3세대 오타쿠들의 변화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모에’이다. “이것(모에)을 개념화하는 건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것은 특정한 캐릭터에 대한 연애 감정이나 동경의 감정을 품고있는 것을 의미한다.” 2000년대 들어서 나타나고 있는 오타쿠 문화의 변화는 특정 캐릭터에 연애 감정이나 동경을 품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이 기존 오타쿠 문화상품에 대한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기존의 서사과정을 통해서 수용자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이고, 2차적인 창작은 제작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수용자의 강한 애정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최근 제작자가 작품의 제작단계부터 서사나 설정에 공백을 줘 2차 창작을 염두했다. 어떤 경우는 원작이 시중에 나오기도 전에 2차적인 창작이 먼저 나오면서 그것이 기획에 영향을 미치게 됐고, 결국 원작의 내용을 바뀌어버리는 경우도 발생했다. 오타쿠가 지니고 있는 작품에 대한 실천문화는 원작과 2차 창작의 경계가 허물어지거나 모호해지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했다. 이제 미래 사회는 모든 사람이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인 프로슈머(prosumer)의 문화가 태동하게 될 것이다.”
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사례가 만화 <니세코이>의 ‘치바현의 Y씨’이다. ‘치바현의 Y씨’는 실존 인물로 만화 속 인물 ‘타치바나 마리카’의 열성 팬이다. 제작사는 그의 열성을 의식해 마지막 화에서 ‘타치바나 마리카’와 ‘치바현의 Y씨’의 맞선을 보는 장면을 그렸다. 이는 실존 인물이 만화 속으로 들어가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이뤄준 사례이다. 이러한 모습은 2차 창작적인 형태다. 이것으로 우리는 원작과 2차 창작의 경계가 허물어진 모습을 알 수 있다.
‘치바현의 Y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오타쿠의 소비패턴은 그들이 특정한 대상에 꽂히게 되면 그것과 관련된 모든 정보와 관련 상품을 축적하는 것이 ‘오타쿠’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소비심리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겠다.
“기존의 대중문화의 흐름은 미디어 메시지의 전달이나 침투로 언급됐고, 수용자인 소비자는 피상적인 존재로만 인식될 뿐이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 오타쿠 문화가 형성되면서 수용자들은 대중문화 상품의 내용과 생산에 관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오타쿠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주체 유형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원작과 그것이 지닌 서사에 특권적 지위를 없애버리고, 문화의 주도권을 병치하고•지속적으로 재편되고 공존하게 했다. 오타쿠 관련 문화상품은 다양한 연령을 대상으로 해 주제의 다양성이 확보된다. 미국의 디즈니사가 겨냥하는 주 고객은 어린이들에게 국한되어 있다고 했을 때, 일본의 오타쿠 관련 문화 상품은 다양한 연령을 대상으로 하고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현재 일본의 오타쿠를 비롯한 대중문화는 아시아를 비롯하여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산이 되고 있다.”
오타쿠들은 어떤 장르를 불문하고 자신들이 심취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해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일본에서 오타쿠 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에는 일본사회가 지니고 있는 다양성이며, 이것이 오타쿠 문화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의 오타쿠 문화는 일본의 미디어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하고,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에 TV가 일본 사회에 보급되면서 오타쿠들은 만화 영화에서 명장면과 스텝들의 명단을 자신들의 노트에 꼼꼼히 기록하고 분석하는 연구를 지속했다. 이제 오타쿠란 단순히 미디어 매체에 집착하는 마니아가 아니라, 누구나 믿고 신뢰감을 가질 수 있는 문화상품의 비평가이자 분석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타쿠가 가진 강점은 그들이 관련 분야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지속적인 열정과 호기심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성우의 목소리를 식별하는 분석력을 가지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세세한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날카로움과 세심함을 갖추고 있는 오타쿠들의 특성은 일본의 전통적인 장인들과 비교할 수 있다. 현대 오타쿠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분야 이외에는 흥미를 갖지 않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분야에 탐구와 열정으로 가득차 있다. 이런 측면이 전통적인 장인들과 비슷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일본 장인들이 가치를 지니는 것은 단순히 가업을 잇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닌, 현재 자신의 분야에서 끊임없는 노력과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정신이다.”
이처럼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 대한 호기심, 분석력, 탐구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경험에서 서술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대상을 스스럼없이 비판한다. 그 이유는 오타쿠는 마니아가 아닌 비평가이자 분석가로서 모습을 보이기에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
장인에 비유하자면 도자기 장인이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도자기를 만들면 깨버리듯이 오타쿠도 대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비판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이러한 행위가 현재 자신의 분야에서 끊임없는 노력과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정신이다. 오타쿠가 점 찍은 대상은 그의 전부이기에, 오타쿠의 기준에서 반짝반짝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
“오늘날과 같은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각 문화 간의 경계 자체가 허물어지면서 오타쿠가 아닌 일반인들도 자신의 기호에 맞게 다양한 취향에 따라 문화를 즐기는 분위기다. (중략) 오타쿠 문화 연상은 국가 간의 경계를 허물고, 국적이나 인종을 초월하는 초월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오타쿠들의 관심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함께 공유하는 것에 있는 것이지 학연, 지연, 민족, 국적 등의 것들에는 관심이 없다. (중략) 일본의 오타쿠적 현상이 전 세계로 확장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도 바로 동일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소통을 이루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포스트모던의 특징 중 하나는 ‘해체’이다. 포스트모던 시대 이전 사회는 학연, 지연, 혈연 등등과 같은 연(緣)의 관계를 중요시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시대가 오면서 연(緣)의 관계가 해체되기 시작됐다.
채용으로 예를 들자면 최근 한국의 대기업들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 몇몇 전형을 제외하고는 서류에 출신 학교를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연(緣)이 주는 이점이 해체되기 시작됐고, 능력 위주의 채용이 시작했다. 이는 ‘당신이 누구 부모님의 자식이라도 우리랑 맞지 않으니까 뽑을 수 없습니다.’라는 현상이다.
오타쿠 문화도 그러하다. 오타쿠들의 관심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공유함에 있지 학연, 지연, 혈연에는 관심 없다. 아무리 연줄이 좋은 사람이라도 오타쿠의 관심사에 접점이 없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장(場)에 끼워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세상에 접점 있는 사람들끼리 공유하고, 소통하는 데 신경을 쓰지 그 외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오타쿠 시장이 이제는 소수의 시장이 아닌 문화 전반에 넓게 퍼져있음을 새삼 느낀다. 왜냐하면, 영화 <너의 이름은>이 처음 개봉됐을 때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그 영화 감동적이지 않았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예전의 애니메이션을 대할 때의 반응과 다르다. 경험상 ‘2012년~2016’년도까지만 해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은 배척당하기 쉬웠다. 물론 그들 대다수가 오타쿠라기 보다 마니아나 팬에 가깝지만, 앞서 말한 초기 오타쿠의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너의 이름은>이나 <목소리의 형태>의 주변 반응을 보았을 때, “오타쿠시장이 더 이상 소수의 마니아 시장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에 의한 오타쿠 문화의 상업성은 하위문화에 속해 있던 오타쿠 문화를 대중문화로 편입시키는 토대를 이루게 하였다.” 그리고 현재 대중문화로 올라왔다.
“초기 오타쿠들은 하위문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자신들만의 취향과 유희를 표출시키면서 존재했고, 사회적으로는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니고 있는 전문성이나 독창성은 일본 사회 내에서 문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시켰고 이제는 일본 사회 내에서 무시될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오타쿠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맞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전문성이나 독창성은 일본 사회의 문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따돌림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이제 현대 일본문화의 trendsetter로서 존재한다.
trendsetter가 되기 어려운 것처럼 오타쿠도 아무나 할 수 없다. 사람들 혹은 오타쿠 계에서 인정받는 오타쿠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오타쿠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개발이 요구된다. 둘째, 오타쿠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자체를 넘어서 그것의 장면이나 배경에 등장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다양한 정보와 책들을 통해서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셋째, 오타쿠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아이템들을 구입하기 위해서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외에도 많은 조건들이 선행될 때, 한명의 오타쿠가 탄생할 수 있다.
일본에서 오타쿠 문화가 확산 되고,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일본 문화가 지니고 있는 다양성에서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일본 문화가 지니고 있는 다양성의 속성은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현상과 상품들을 재생산해내면서 일본 문화의 경쟁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오타쿠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위에서 언급한 ‘조건+@’를 갖추어야 할 수 있다. 그들은 학위만 없을 뿐이지 전문가와 같은 위치에 있다. 실제로 베타테스터로 오타쿠를 쓰는 사례도 있으니 말 다 했다.
앞서 말했듯이 최근 ‘애니메이션’, ‘만화책’ 등에 대한 원색적인 거부가 없고, 작품의 진행이나 특정 포인트에 대해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솔직하게 토의•토론하는 모습은 그만큼 서브컬처 문화가 많이 대중화된 증거이다.
오타쿠는 더 이상 하위문화를 즐기는 어두운 존재가 아닌 포스트모던 시대에 잘 어울리는 이상적인 하나의 상(象)이다.
1) 아즈마 히로키, (2007),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은미 역), 문학동네, 41p.
2) 가라타니 고진, (2008), 역사와 반복(조영일 역), 도서출판 b, 79p.
아즈마 히로키, (2007),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은미 역), 문학동네.
가라타니 고진, (2008), 역사와 반복(조영일 역), 도서출판 b.
송영민 외 1명, (2016), 오타쿠 문화에 대한 고찰, 일본근대학연구, Vol.0 No.54 [2016].
각주 1), 2)를 제외한 나머지 ""처리는 송영민 외 1명, (2016), 오타쿠 문화에 대한 고찰, 일본근대학연구, Vol.0 No.54 [2016]. 글에서 직접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