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돼지의 왕>을 중심으로 -
서론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2021년 구글 뉴스/사회 분야 검색어에서 3위를 차지했다.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높은 검색 순위를 차지한 이유는 ‘학교폭력’이 이제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은 지금까지 많은 사건 사고를 보여줬다. ‘2011년 대구 중학생 집단 괴롭힘 자살사건’,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 ‘장난감 화살 실명 사건’ 등의 수많은 학교폭력이 우리 사회를 강타했고, 이제는 사회가 신경 쓸 정도의 큰 문제가 됐다.
필자 또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물론 당시를 되돌아보면 이유가 없진 않았지만, 힘든 학교생활을 했고, 그때를 기억하면 불안하고 초조해져 아직도 나에게는 힘든 시절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영화 <돼지의 왕>(연상호 (감독). (2011). 돼지의 왕[영화]. 돼지의 왕 제작위원회•STUDIO DADASHOW.)을 보게 됐다.
영화는 ‘죽은 경민의 아내’, ‘빨간 딱지’, ‘경민’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러자 경민의 아내가 있던 공간이 다른 공간으로 바뀌어 그림자 속 인간이 경민에게 이야기한다. “놀고 먹어도 잘 먹고 잘사는 그놈들은 애완견같은 놈들이야, 개같은 놈들이라고 그놈들 먹이가 되는 우리는 돼지들이고, 우리는 죽어서 팔다리가 찢겨져야 가치가 생긴단 말이야. 경민아, 돼지가 그 정도 가치밖에 안 되는 동물이냐? ”라고 하며 돼지의 얼굴을 한 인간과 경민이 서로 대우한다. 그리고 경민은 흥신소를 통해 종석의 연락처를 알게 됐고, 전화를 걸어 종석과 15년 만에 만나게 됐다. 경민은 ‘15년 전’ 자신의 중학교 시절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철이’의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영화 대사 중 “놀고먹어도 잘 먹고 잘사는 그놈들은 애완견 같은 놈들이야, 개같은 놈들이라고 그놈들 먹이가 되는 우리는 돼지들이고, 우리는 죽어서 팔다리가 찢겨져야 가치가 생긴단 말이야.”, “힘을 가지려면 악해져야 돼 계속 병신처럼 당하지 않으려면 괴물이 돼야 돼 알겠냐?”, “한 가지 확실한 건 말이야, 그때 이후로 게네들이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 그 시절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몰라도 우리는 지금 그때를 절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거야.” 등의 대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공감됐다.
어쩌면 <돼지의 왕>을 통해 학교폭력의 상처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을 통해 “계급사회에서 하부구조에 놓인 사람들의 절망을 그대로 체험하게끔 하고 싶었어요. 너도 열심히 살면 되잖아 하고 말하지만, 직접 그 안으로 들어가 벽을 느껴보지 않으면 그들이 느끼는 절망감을 절대 알 수 없죠.”(정형모. (2012-04-28). [EDITOR'S LETTER]돼지의 왕.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8027211.)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이 말했듯이 <돼지의 왕>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반(反)하는 또 다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줬듯이 <돼지의 왕> 또한 인간의 허무와 잔혹성 속에서 교훈을 준다.
이번 글에서는 작품 속 주요 인물 4명 ‘황경민’•‘정종석’•‘김철’•‘박찬영’의 시각에서 서술하겠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대사를 해석함으로써 인문학적 의미와 학교폭력의 영향을 파헤쳐보고자 한다.
2. ‘김철’과 만남 – ‘황경민’•‘정종석’의 시각에서
2-1 ‘황경민’의 시각에서
경민은 중학교 시절 작고 왜소한 아이였다. 만만하게 보이니 학우들에게 괴롭힘을 자주 당한 학교폭력 피해자였다.
어느 날 3학년 학생회장 후보가 경민의 교실로 들어와 유세했는데, 그때 경민은 미처 못한 영어 숙제를 급히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선배의 친구가 유세가 끝난 뒤 1학년 아이들에게 경민을 가리키며 “야 쟤 집중 못하더라 관리 좀 해라.”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그리고 1학년 학생회장 ‘송석응’은 경민의 반 강민과 패거리에게 “아이 씨 관리 좀 해”하고 떠났다. 강민과 패거리는 그 말을 듣고 나서 경민에게 뺨을 때리고 숙제를 찢어버리는 행위를 했다. 그러자 ‘김철’이라는 친구가 와서 강민과 패거리를 두들겨 패고 경민을 도와줬다.
정신분석학적 모습으로 보았을 때 이는 ‘전치’의 모습이다. 전치란 “어떤 이를 향한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의 분노는 자신에게 반격하지 않거나 상처를 줄 것 같지 않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로이스 타이슨. (2012). 비평이론의 모든 것: 신비평부터 퀴어비평까지 (윤동구, 역). 앨피. (원본 출판 2006년). p. 47.)이처럼 3학년 학생회장 후보의 친구가 석응에게 주의를 시키고, 석응은 강민과 패거리에게 자신의 분노를 전했고, 강민과 패거리는 폭력을 행사하며 경민에게 자신들의 분노를 옮겼다.
앞서 말했다시피 ‘전치’할 때 분노는 ‘자신에게 반격하지 않거나 상처를 줄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내리 갈굼’은 어른들의 세상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직장 상사가 신입사원에게, 군대 장교•부사관들이 병사에게 화풀이하는 모습 등과 같이 자신에게 반격하지 않거나 상처를 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성인의 사회와 학생의 사회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관객들에게 인식시켜 줬다.
학교에서 경민에게 이런 식으로 직접 도와준 사람은 철이가 처음이었다. 경민은 철이가 두들겨 패는 모습을 보고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이때부터 철이에게 ‘경외심’을 가졌다.
2-2 ‘정종석’의 시각에서
종석 또한 경민과 마찬가지로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였다. 경민만큼은 아니더라도 ‘게스 블랙진’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강민과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우선 ‘게스 블랙진’ 사건의 시작은 종석의 누나로부터 시작됐다.
종석은 하교 후 집에서 누나가 엄마에게 ‘게스(GUESS)’ 바지를 사고 싶다고 졸랐다. 엄마가 바지가 얼마냐고 묻자 누나는 ‘10만 원’ 한다고 말했고, 조르고 졸라서 ‘게스 바지’를 구매했다.
종석은 바지를 두고 “그래서 반지하의 방 한 칸 우리 집에 집안의 모든 물건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른 물건이 오게 됐다. 그건 게스 블랙진이었다. ” 라고 말했다.
다음날 종석은 ‘게스 블랙진’을 입고 학교로 등교하는데 산책 중이던 강아지가 종석의 가방을 끈질기게 물어댔다. 그리고 경민과 등굣길에 만나게 되는데, 경민은 종석의 ‘게스 블랙진’을 보고 “종석아, 빨간 삼각형은 여자 거야 남자 거는 초록색이야.”라고 말했고 종석을 얼른 뒷주머니의 게스 로고를 숨긴다.
그리고 체육 시간 옷을 갈아입으면서 강민의 패거리에게 들키게 됐고, 그들은 ‘게스 블랙진’ 엉덩이 부분을 찢어 칠판에 붙여 종석을 ‘호모’라고 칠판에 적어 공개적으로 놀려댔다. 이를 본 종석은 “난 정말 바보였다. 왜 그들처럼 되고 싶었을까? 난 절대 그들처럼 될 수 없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생물이다. 언제나 안전하고 공격적이고 그리고 사랑받는 개들이다.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다.”라고 말한 순간 강민과 패거리의 얼굴이 아침에 등교하면서 종석의 가방을 물었던 개의 얼굴로 바뀌었다.
종석에게 ‘게스 블랙진’은 자신의 계급을 뛰어넘는 상징물이다. 왜냐하면, 종석이 바지를 두고 “그래서 반지하의 방 한 칸 우리 집에 집안의 모든 물건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른 물건이 오게 됐다. 그건 게스 블랙진이었다. ”라고 말했다. 이 대사를 통해 종석은 ‘게스 블랙진’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상징물임을 의식한다.
종석은 경민이 말해주기 전까지 그것이 여성용 바지임을 꿈에도 몰랐고, 모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종석의 가정환경은 ‘게스’와 같은 고가의 브랜드를 자주 접해볼 수 없고, 단순히 ‘게스 블랙진’의 자본적 가치(피상적인 가치)밖에 몰랐기에 당연히 창피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종석이 마주한 ‘개’는 그의 욕망을 만족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다. 이는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 <외투>의 ‘아카키’의 모습과 비슷하다.
“아카키는 새 외투를 욕망하면서 ‘충동의 인간’에서 ‘욕망의 인간’으로 바뀝니다. (중략) 그는 미래의 행복(외투 구매)을 위해서 현재의 만족(저녁을 굶음)을 기꺼이 포기합니다. 그 대신 미래의 외투에 대한 끝없는 이상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정신적인 포만감을 얻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결여된 상태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욕망은 근원적으로 충족될 수 없습니다. (중략) 욕망은 궁극적으로 만족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새 외투를 산 아카키는 불량배들에게 자신의 외투를 강탈당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의 메커니즘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중략) 아카키는 외투를 찾으려고 파출소장, 고위급 인사도 찾아가지만 계속 문전 박대를 당하고 앓아누웠다가 결국 세상을 떠납니다.”(이현우. (2014).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현암사. p. 137.)
‘종석’과 ‘아카키’는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둘 다 각자의 욕망을 충족하려 했지만, 근원적으로 충족될 수 없다. 아카키의 ‘새 외투’는 강탈당했고, 종석의 ‘게스 블랙진’은 찢겨 입지도 못하게 됐다. 아카키의 새 외투가 불량배들에게 강탈당한 모습을 통해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의 메커니즘을 보여준 것처럼 종석의 ‘게스 블랙진’이 찢긴 것은 계급을 뛰어넘고 싶어한 욕망이 좌절되는 모습이다.
그때 부끄러워하던 종석 앞에 ‘김철’이 나타나 칠판에 써진 조롱의 글을 지우는데, 여기서 강민과 패거리와의 마찰이 생겼다. 철이는 패거리에게 밀려 넘어졌지만, 자신의 벨트를 풀어 채찍처럼 사용해 버클 부분으로 패거리를 제압했다.
종석도 경민과 마찬가지로 이런 식으로 직접 도와준 사람은 철이가 처음이었다. 종석은 철이가 두들겨 패는 모습을 보고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이때부터 종석도 철이에게 ‘경외심’을 가졌다.
2-3 ‘惡’으로 入場
‘게스 블랙진’ 사건이 일어난 날 종석과 경민은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철이를 만나게 된다. 철이는 “야 너희들 게네들 싫지? 그지 응? 그럼 나랑 놀자 그럼 게네들이 너네 절대 안 괴롭힐 거야.”라고 말했다. 어른의 경민은 이를 회상하며 “철이가 무언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라고 말한다.
철이는 아이들을 두들겨 팬 죄로 2주간의 징계를 받았다. 경민과 종석은 철이를 만나기 위해 학교 근처 빈집에 갔었다.
빈집의 쇼파에 앉은 철이가 경민과 종석에게 말했다.
“이 칼이란 건 말이야. 짐승과 인간을 구별해주는 거야. 내 몸에 달린 것도 아니면서 나에게 힘을 주는 거지. 그래서 이건 절대로 놓치면 안돼. 그런데 사람들이 칼을 만들었을 때, 생각지도 못한 것이 만들어졌어. 그건 바로 악이다. 저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처럼 몸의 일부가 아닌 이 칼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건 바로 악이란 말이야. 그럼 우리가 힘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착하게 살면 될까? 아니야. 힘을 가지려면 우린 악해져야 돼. 계속 병신처럼 살고 싶지 않으면 우린 괴물이 되어야 해. 알겠냐?”
‘칼’을 의도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인간’과 사용하지 못하는 ‘동물’을 비교했다. 다시 말해 ‘의도적인 악’을 저지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를 말한 것이고, 인간은 의도적인 악을 저지를 수 있다. 이러한 악을 통해 인간은 ‘힘’을 가질 수 있다.
철이가 말하는 ‘악’은 ‘공평함’이다. ‘의도적인 악’은 그들에게 공평함을 준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우월한 유전자와 환경으로 힘도 세고, 외모도 훤칠하고, 좋은 부모를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살지만, 다른 누군가는 왜소하고, 외모도 훤칠하지 못하고, 가난한 부모를 만나 불행한 삶을 산다. 이런 경우에 철이가 말한 ‘악’이 없다면, 우리는 전자의 인간에게 항상 굴복할 것이다. 하지만 철이가 말한 ‘악’이 존재함으로써 약자인 우리를 지킬 힘이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칼을 놓치지 않는다.
타인은 ‘의도적인 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괴물 즉 자신을 함부로 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볼 것이다. 그래서 철이는 ‘괴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철이는 자신이 데리고 온 고양이를 칼로 찔러 죽인다. 그 후에 종석과 경민에게 칼을 넘겨주며 찌르라고 시킨다. 종석이도 고양이를 칼로 찔렀다. 하지만 경민은 자신은 못 할 것 같다고 도망쳐버렸다. 종석은 도망가는 경민을 불렀지만, 철이는 곧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자 경민은 다시 돌아왔고, 칼로 고양이를 찔렀다.
고양이를 칼로 찌른 행위는 ‘악의 세계로 들어가는 의식’이다. 철이의 친구가 되려면 ‘의도적인 악’을 행할 수 있어야 하고, 의도적인 악을 갖고 있어야 그들은 철이와 동조할 수 있다. 그래서 종석과 경민은 의도적인 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칼로 고양이를 찌른 것이다.
3. 부르디외의 장(場)이론으로 본 ‘박찬영’
철이가 정학 받은 3일 후 ‘박찬영’이라는 전학생이 왔다. 원래 강민만 할 수 있었던 것을 찬영이 은연중 뺏어 버릴 정도로 ‘박찬영’은 머리가 좋고 적극적인 학생이었다. 수학 시간 중 어려운 문제를 풀어 선생에게 칭찬도 받고, 담임선생에게 전국 글쓰기 대회 권유도 받았다.
찬영의 모습을 본 경민은 방과 후 종석에게 “종석아 저기 찬영이 멋있더라 (중략) 강민이나 그쪽 애들도 찬영이는 함부로 못 건드리더라. 종석아! 저기 철이가 게네들을 이기려면 악해져야 한다는 말 틀린 것 같아.”라고 말했다. 경민은 찬영과 친해지길 원했고, 종석에게 친해지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종석을 화를 내며 집으로 갔다.
다음날 강민과 패거리는 찬영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규칙을 깨트리는 것 같아 그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찬영은 오히려 기죽지 않고 “글쎄 내가 무슨 분위기를 망친지 모르겠네, 나중에 내가 어떻게 분위기를 망치고 있나 정리를 해서 얘기를 하면 한번 고쳐볼 게 그때까진 함부로 내 어깨 손대지 마라.”라고 했고, 그 모습을 본 경민은 점심시간에 자신의 고기반찬을 찬영에게 주며 친해지려 했다.
그런데 고기를 먹은 찬영을 배가 아프게 돼 화장실로 가게 됐다. 찬영이 변기 칸에서 볼일을 보던 중 강민과 패거리에게 놀림을 받고, 강민은 냄새를 덜 나게 해주겠다면서 고무대야에 자신의 오줌을 눠 볼일 보고 있는 찬영에게 퍼부었다. 오물을 맞은 찬영은 분노해 교실에서 커터칼을 쥐고 날뛰다가 석응에게 두들겨 맞고, 전국 글쓰기 대회를 강민에게 넘겼다. 그 이후로 찬영은 강민에게 굴복했고, 그들의 규칙에 순응했다.
이러한 모습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장(場)내 투쟁을 잘 보여줬다. “모든 장은 투쟁의 공간이다. 이 투쟁은 기존의 ‘지배자’와 새롭게 진입하는 ‘신참자들’ 사이에서 장의 구조를 ‘보전’하거나 ‘전복’하기 위한 투쟁이다.”(김동일. (2016). 피에르 부르디외. 커뮤니케이션북스. p. 22.)라고 말한 것처럼 찬영(신참자)과 강민과 패거리(기존의 지배자) 사이에 투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교실의 장은 전복되지 못했고, 보전됐다.
찬영은 학교의 계급 사회에 저항하려 했지만, 오히려 굴복했다. 왜냐하면, 기존의 학교체제는 찬영 혼자서 무너트릴 수 없는 구조다. 만약 찬영 손의 칼로 강민을 찔렀어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강민을 찔러 죽인다고 해도 새로운 사람이 강민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찬영은 소년원에 갔을 것이다. 그래서 찬영은 저항을 포기하고 굴복했다.
이러한 모습을 본 경민은 그날 방과 후 “종석아! 같이 가!”라고 말하며 종석과 함께 귀가한다.
4. ‘돼지의 왕’이 된 김철
정학이 풀린 철이는 강민과 패거리가 경민을 또다시 괴롭히는 것을 보고 구타했으나, 강민의 패거리 중 한 명이 선생님을 데려와 철이는 매를 맞게 된다. 그러나 매를 맞고 돌아온 김철은 다시 강민을 구타했다. 그 순간 석응이 급습해 무서운 게 없냐고 철이를 발로 찼지만, 얼마못가 석응마저 역으로 패서 쓰러뜨린다.
그리고서 석응에게 “무서운 거, 나 무서운 거 있다. 그게 뭔지 아냐? 너네가 10년이나 20년이 지나 어른이 됐을 때 지금을 생각하면서 ”이야, 그 때 참 좋았었지 않냐? 그 때가 그립다.“ 이 딴소리를 할 게 너무 무서워. 석응아, 잘 들어. 아마 너한테 그런 미래는 없을 거다. 내가 나중에 이때를 생각하기도 싫을 만한 중학교 시절로 만들어 줄게. 어?”
이 대사를 듣고 엄청나게 공감했다. 학교폭력을 당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가해자가 10년 20년이 지나서 “그때 참 좋았지~”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 그때를 떠올리지 못하길 바란다. 가해자들이 불행하고, 떳떳하지 못하길 바라며, 자신의 행동을 평생 뉘우치길 바란다. 이러한 피해자들의 마음을 철이가 대변해줬다.
하지만 가해자의 뉘우침은 불가능하다. 뉘우침이 있으려면 피해자와 똑같은 상황에 부닥쳐봐야 알 수 있다. 그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가해자는 피해자를 생각하고 가해하지 않는다.
“그렇게 철이는 돼지들의 왕이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돼지는 앞서 말한 ‘팔다리가 찢겨야 가치가 생기는 존재’ 즉 학교폭력을 당하거나 방관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돼지’를 계급 투쟁의 기미가 있는 하층민의 존재다. 하지만 ‘개’들에게 직접 나설 수 없는 존재다.
여태까지 종석, 경민은 계급 투쟁을 마음속으로만 했던 존재였고, 찬영은 투쟁에 실패했다. 반면에 철이는 ‘개’들을 구타해서 계급 투쟁을 통해 전복시킬 수 있는 기미를 보였고, 돼지들의 상상과 복수를 실재계로 만들었다. 그래서 철이는 ‘돼지들의 왕’이 됐다.
5. 김철의 자살 전후
이후 철이가 활개 친다는 소문을 듣고 3학년 학생회장 후보와 패거리들이 보복하기 위해 찾아와 종석과 경민을 학교 끝나고 옥상으로 오라고 협박한다. 하필 이때 김철은 자기 아버지가 사망하자 시신 확인을 위해 온 경찰들, 어머니와 함께 시신을 확인하러 갔다.
한편 종석과 경민은 옥상에서 마구 폭행당하다가 그 와중에 경민이 사실 김철이 자신들을 선동했고 자신들은 잘못 없다며 철이를 배신한다. 이후 경민에 의해 철이가 불려와 혼자 패거리들과 싸우다가 흉기를 사용한다. 하필 이때 찬영이 데리고 온 선생에게 들켜 1학년 1학기가 지나기도 전에 철이는 퇴학당하게 된다.
퇴학당한 철이는 자신의 아지트에서 경민과 종석에게 ‘국민 조회’를 할 때 자신이 투신자살하여 평생 패거리들을 저주하며 이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행복하지 못한 흑역사 과거로 남게 해서 그들이 이 일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없도록 계획을 밝힌다.
“나 공개 자살할 거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을 영원히 저주하면서 자살할 거야. 그럼 아마 그들도 이 일을 웃으면서 얘기할 순 없을걸?” 어른이 된 경민은 이를 회상하며 종석에게 “‘공개 자살’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라고 말하며 웃었다.
철이가 계획한 공개 자살은 일반적인 복수와 전혀 다른 ‘복수’다. 보통 복수를 떠올리면 복수의 대상은 해를 입거나 무릎 꿇고, 복수한 사람은 이를 통해 대상의 위에 올라가 있는 형태이다. 간단히 말하면 대상을 아프게 만들고, 아프게 만든 결과로 복수를 완성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작품 속 세상은 돼지의 편이 아니라 ‘개’의 편이다. 법과 같이 사회를 보호하는 시스템은 돼지들의 편이 아니다. 일반적인 복수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철이는 ‘저주’라는 복수를 계획했다. 이런 자살을 생각한 철이가 경민에게는 아름다웠다.
그들은 고깃집에서 밥과 술을 마신 뒤 자신들의 아지트를 갔는데 이미 없어진 상태라서 아쉬워했다. 경민은 종석에게 여기까지 온 김에 자신들이 다녔던 학교로 가자고 말했고, 그들은 중학교 옥상으로 올라갔다.
5-1 ‘김철’의 관점에서(김철에 대한 해석을 ‘5-2’문단에서 하겠다.)
철이의 자살 전후 관점은 경민과 경민의 아버지가 대화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경민의 아버지는 건전하지 못한 노래방의 사장이다. 경민이 학교에서 패거리에게 괴롭힘당한 이유도 아버지가 가라오케 사장이기 때문이다.
철이의 엄마는 그 노래방에서 일하는 도우미다. 철이와 집에서 죽을까 말까 하는 다툼을 벌인 뒤 자신의 언니에게 “요즘 철이 이상하다”, “걔까지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며” 울며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근무시간에 가게 전화기를 사용해 사장에게 얻어맞았다.
엄마와 함께 죽으려고 했던 철이는 칼을 들고 노래방으로 갔다. 그곳에서 경민의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고 다 죽이려고 했지만, 엄마의 통화 내용을 들은 데다가 때마침 경민이 나타나 칼을 버리고 도망갔다.
다음 날 국민 조회 시간, 학생들이 모인 운동장에서 경민은 불안해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그리고 경민의 시선은 옥상을 향했다. 그곳에는 철이가 서 있었고, 철이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경민이 철이가 자살한 과거 이야기를 중학교 옥상에서 하자 종석은 그 이후로 우리는 말한 적도 없고, 졸업 이후 만나려고 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왜 만나자고 했냐고 발끈하며 물었다. 그러자 경민은 “아까 얘기했잖아 철이 얘기하고 싶었다고 (중략) 아니 아직 철이 얘기 하지도 않았어... 지금부터가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야.”라고 말하며 경민의 관점에서 철이의 자살 전후를 보였다.
5-2 ‘황경민’의 관점에서
노래방에서 일이 있던 다음날 경민은 학교에 갔다. 그날 경민은 학교에 갔을 때, 왠지 모르는 설렘이 생겼고, 발이 자동으로 학교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교실에 앉은 경민은 ‘국민 조회’ 시간이 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메스꺼움과 흥분감이 자신을 덮쳤다. 그러다가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자는 생각이 들어 걷는 중 철이를 만났다.
철이는 경민에게 “경민아, 작전을 좀 바꿔야겠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아까 올라갔다 내려왔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씨발 그냥 자살하는 척만 할 테니까 니가 소리 좀 질러줘라. (중략) 그 정도 해줄 수 있지? 어? 어?”라고 말하며 상당히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민은 이를 떠올리며 옥상에서 크게 웃었다.
이는 계급의 전위를 보여줬다. 경민은 학교에서 돼지이고, 철이는 돼지의 왕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회는 학교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경민은 노래방 사장의 아들이었고, 철이는 노래방 도우미의 아들이었다. 철이가 칼을 들고 경민과 마주했을 때는 서로가 자신의 현실을 확인한 순간이다. 그 순간 그들의 계급은 바뀌었다.
이러한 모습은 상당히 근대적이다. 학교에서는 강한 철이지만, 엄마가 노동자이기에 철이는 노동자의 아들이다. 근대의 세계에서 노동자는 자본가를 넘어설 수 없기에 철이는 경민을 넘어설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철이는 경민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철이의 그림자가 옥상에 있었을 때 경민은 소리를 질러야 한다고 고민하던 찰나에 철이가 옥상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경민은 “그때 진짜 괴물을 봤어”라고 말했다.
경민은 “정종석 너도 봤냐? 그때 어디있었냐? 철이 니가 죽였냐? 괴물...”이라 말한다. 그 뒤 종석은 갑자기 욕을 하며 경민의 목을 조른다.
5-3 ‘정종석’의 관점에서
1) ‘철이’의 자살 계획 이전
우선 종석의 관점은 전체적인 모습에서 볼 필요가 있다.
종석이 고양이를 칼로 찔러 죽였을 때, 그 이후로 자신이 찔러 죽인 고양이의 환영이 보였다. 종석이 고양이를 죽인 첫날 ‘이대로 끌려서 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철이의 말대로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들보다 더 악해지는 방법밖에 없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 죽은 고양이의 환영이 나타나 “결국에 니가 내린 결론이 그거냐? 악해져서 게네들을 이길 거라고? 한번 잘해봐!”라고 말하며 비웃는다.
철이가 퇴학당한 뒤 찬영은 종석을 불러내 철이가 너네들 친구였지만 퇴학 당한게 오히려 다행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종석은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찬영은 “내가 뭐 바꿀 수 있겠나? 야이 개시끼들아 하면서 저주라도 하면서 디져뿌든가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금마들 이길 방법 없다. (중략) 어차피 난중에 어른돼면 그런 아들이랑 만날라해도 만날 수도 없잖아.”라고 말한다. 종석은 그날 철이를 만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 어쩌면 찬영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게네들이 뭐라든 안 보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할 때 죽은 고양이가 나타나 “드디어 분수에 맞게 행동하네, 그래 잘 생각했다. 병신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살아야지 잘 생각했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찬영은 빈 깡통을 찬다.
빈 깡통이 굴러간 지점에서 자신의 누나가 전자기기 판매점에서 ‘워크맨’을 훔치다가 적발된 것을 보았다. 그러다 주인이 경찰에 신고하려던 사이에 누나는 워크맨을 들고 도망쳤고, 종석은 그 뒤를 쫓아갔다. 놀이터에서 종석은 누나에게 왜 그따위 것을 훔쳤는지 물어봤자.
그러자 누나는“짜증나, 짜증난다고! 누구는 부모 잘 만나서 하고 싶은 거 다 즐기고 왜 나는 하고 싶은 거 다 참으면서 워크맨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르구 남들 다 입는 옷도 못 입구 나중엔 어떻게 할 건데? 대학도 안 가구 남들 다 가는 대학도 못가구 그냥 대강 비슷하게 맞는 사람 만나서 시집이나 가서 애 낳구 그래서 그 애는 또 어떻게 자라게 할 건데? 그럴 바에는 왜 계속 애새끼는 낳아서 이러냐구. 씨발. 난 안 그럴 거야. 진짜 정 안되겠다 싶으면 그 개 같은 년들한테 침이나 뱉어주구 죽어버리든지.”라고 말할 때, 종석은 누나의 뺨을 때렸다.
그러자 누나는“병신새끼. 넌 평생 그렇게 살아라, 병신으로. 말 한마디도 못하구. 난 워크맨 훔쳐서라도 배워야겠어. 씨발, 이거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뭐가 얼마나 좋은 건지 배워야겠다구!”말하면서 먼저 돌아간다.
누나가 워크맨을 훔친 장면을 본 종석은 자신의 위치를 깨달았다. 자신은 ‘개’들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투쟁하거나 복종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종석은 투쟁을 선택했고, 자신들의 아지트로 돌아가 경민과 철이를 만난다.
마지막으로 철이가 공개 자살을 계획하고 같이 본드를 했을 때 “항상 사랑받는 개새끼들하고 싸우는 거야!”라고 말할 때 죽은 고양이가 나타나 “뭐가 헤헤헤냐 병신들 그래 봐야 병신들이지 징그러운 괴물이 되는 거야 힘도 하나도 못 가지는 그런 징그러운 괴물 니들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는 그런 징그러운 괴물! (중략) 이제 나도 무섭냐? 무서워 죽겠지? 괴물이 된다면서 진짜 괴물이 될까 봐 무섭지? 너 사실은 뭐가 되고 싶은 건데?”라고 말했지만, 이후 검은색 괴물이 된 철이에게 잡아 먹힌다.
죽은 고양이의 환영은 종석의 ‘초자아’다. 초자아의 역할은 “자아가 원시적 욕구를 억제하고 도덕이나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정신 요소. 정신 분석학에서, 이드(id) 및 자아와 더불어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로, 도덕 원칙에 따른다.” 환영인 고양이는 종석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원시적 욕구로 미쳐 날뛰지 못하게 막는다. 하지만 철이에 의해 고양이(초자아)는 먹혀서 사라지고 종석의 본능(자아)만 남게 됐다.
그 이후로 강민과 패거리가 자신의 성기를 만지며 호모라고 놀릴 때 “니네 철이 퇴학시켰다고 철이 이겼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그걸 알아야 돼 철이는 니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호락호락한 애가 아니야 알아!”라고 말하며 투쟁하는 용기를 보였다.
2) 목 조를 때
경민의 목을 조를 때 종석의 관점에서 철이의 자살 전후를 보여줬다. 종석이 경민의 목을 조른 이유는 그 순간 ‘퇴행’했기 때문이다.
정신 분석학에서 ‘퇴행’은 “일시적으로 이전의 심리로 귀환한 것인데, 이는 상상을 뛰어넘는 다시 체험하는 과정이다. 이때 고통스럽거나 즐거웠던 경험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수반할 수 있다. 퇴행이 방어적인 이유는 현재 당면한 어려움을 대면하지 못하도록 생각을 다른데로 돌려버리기 때문이다.”(로이스 타이슨. (2012). 앞의 책. p. 56.) 이처럼 목을 조른 이유는 종석이 경민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목을 조르면서 과거로 퇴행한 것이다.
“이 개새끼야. 이 개 같은 새끼. 넌 처음부터 우리 편이 아니었어. 비겁자 새끼. 철이를 퇴학당하게 한 것도 다 너야 이 개새끼야.”라고 말할 때 과거의 종석은 철이가 경민에게 부탁하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눈의 초점이 사라지게 된다.
옥상에서 철이를 만난 종석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철이야? 계획은 그대로 잘되고 있는 거지?”라고 말했고, 철이는 “어? 경민이가 너한테 이야기 안 했냐? 계획 수정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목을 조르며 “수정은 없어! 수정은 없어! 이 개새끼야! 바꿨다가는, 그냥 아예 불이익일 뿐이라고. 그냥 더 비웃을 거야. 이 씨발. 그저 비웃을 거라고. 병신새끼들 꼴값 떤다고 그냥 비웃을 거라고. 이 씨발!”
다시 과거로 돌아와 철이는 종석에게 “야 중학교 퇴학당했다고 인생 쫑나냐? 뭐 간단히 쇼 좀 하고 그러면 퇴학 당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다시 복학시켜주겠지. 아휴 이제 엄마랑 이제 잘살아 볼 생각해야지 (중략) 복학되면 좀 조용히 살아야지 괜히 깝죽 돼 봐야 손해인 것 같다.”
“씨발, 씨발놈아! 너는 왕이 돼야 해. 철이 너는 왕이 돼야 된다고! 진짜야 진짜 괴물이라고!!”라고 말한다. 종석에게 철이는 왕이자 괴물이 돼야 한다. 그래서 옥상 난간에 올라간 철이를 밀어버린다.
“이 개세끼들 니네들 다 죽었어 니네들 철이는 왕이 됐어! 니네들 저주하는 왕이 됐다고!!!”
이는 ‘자살하는 시늉을 하면 원래 병신같은 우리를 병신으로밖에 안 볼 것이다.’라는 뜻이다. 종석은 병신이 되기 싫어 철이를 밀었다. 그리고 철이는 ‘개’들을 저주하는 영원한 상징적인 왕이자 괴물이 됐다.
회상 장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체제 순응을 해 속물적인 인간으로 바뀐 ‘철이’와 영원한 저주의 왕으로서 하나의 상징을 만들려는 ‘종석’을 볼 수 있다.
철이가 ‘공개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이유는 엄마와 잘살아 보고 싶은 희망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기에 ‘자살’을 복학을 위한 쇼로 생각했다. 하지만 종석에게 ‘공개자살’은 쇼가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경건한 의식이다. 왜냐하면, 경민에게는 철이의 심정을 이해해주고 이성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초자아’가 없었고, 자기중심적인 계획대로만 움직이는 ‘자아’(본능)만 남았기에 철이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철이를 밀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종석이 경민의 목을 조른 이유도 ‘자아’만 남았던 시기로 다시 회귀한 것이다.
6. 마치며
경민은 목을 졸리면서 “병신... 그래서, 그래서 뭐가 달라졌냐!”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철이를 왕으로 세워서 우리들의 인생이 뭐가 달라졌냐는 말이다. 경민은 사업을 완전히 말아먹고, 마누라도 죽었고, 남은 게 하나도 없었다. 종석은 대필작가로 간신히 살아갔다. 이렇게 비참히 사는데 철이를 왕으로 세울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경민은 자신이 큰 빚을지고, 사업도 망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씨발! 도대체 뭐가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난 이제 끝이야! 난 이제 끝이라고!”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때 이후로 걔들이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 그 시절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몰라도 우리는 지금 그때를 절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야.”
그리고 종석은 옥상에서 내려왔다. 내려왔는데 경민이 옥상 난간에 올라가 “정종석 잘 봐라! 철이가 못한 거 내가 할게!”라고 말한 뒤 “종석아 넌 반드시 행복져해라”라고 혼잣말을 하며 자살한다.
어찌 보면 경민의 자살은 당연하다. 학창 시절 경민의 대타자는 ‘철이’였다. 그런데 대타자가 죽음으로서 충격에 빠지고 다른 대타자를 구하지 못했다. 대타자가 부재하니 당연히 자신의 존재를 보증해줄 수 있는 존재도 없다. 그래서 인생이 실패한 것이다.
그렇게 자기 삶을 잃는 것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 때문에 고통과 공포로 가득한 삶을 살아갔고 결국,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가 되는 상황에 이르게 돼 결국 자살에 이른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이명준’의 모습이 ‘경민’의 모습과 비슷하다. 이명준에게 남한과 북한이 대타자로 존재했지만, 결국 둘 다 선택하지 않고 자살했다. 이러한 모습은 대타자의 부재와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기에 자살했다. 그리고 경민도 이처럼 대타자의 부재했고, 자신의 삶이 극도의 두려움 때문에 고통과 공포로 가득해서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가 돼 자살했다.
영화 <돼지의 왕>을 통해 그 속에서 일어난 사건과 대사를 해석함으로써 인문학적 의미와 학교폭력의 영향을 알아보았다. 학교폭력은 큰 정신적 외상을 남긴다. 영화 속 인물 경민•종석•철이•찬영의 모습을 보면 결과적으로 권위에 굴복하는 모습을 하고 ‘나중에는 괜찮아지겠지’라는 자위행위를 하며 상처만 남은 학교생활을 보냈고, ‘김철’처럼 나서봤자 아무것도 바뀌지도 않았다.
나아지지도 바뀌지도 않는 ‘굴복’의 수레바퀴는 우리의 미래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이때 맛본 좌절의 경험이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난 안될 거야’와 같은 무의식에 억압된 상처와 두려움이 오래가게 되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허무의 늪에 빠진다.
필자도 학교폭력을 당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일수로는 3,650일이고, 87,600시간이다. 일만 시간에 법칙에 따르면 8~9개의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기간이다.
이 정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학교폭력을 잊지 못한다.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그때가 좋았지~”라는 듯한 말을 할 것 같아서 너무 분하고 눈물이 난다. 하지만 사과조차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고, 일방적으로 끝난 일이 돼 버렸다.
‘그때 내가 진정으로 저항했다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전혀 그랬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돼지들의 왕>의 인물들처럼 계급에 맞는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이번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한 주제다.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하는 이유는 이제야 실태조사를 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가 됐고, 그전까지는 쉬쉬했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학교폭력이 일어났을 때 교사가 “야! 서로 싸운 거 가지고 뭐 잘했다고 입을 벌리고 있어!”,“결국, 니도 원인 제공을 했잖아? 그럼 니도 잘못한 거 아니야?”라는 말을 했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말이지만, 10년 전에는 이렇게 학교폭력을 대처했다.
요즘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강제전학이나 퇴학과 같은 징계는 아직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징계는 “아무튼 징계했습니다!”와 같은 변명의 수단일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까? 아마 전자라고 생각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한 사립학교에 조언을 부탁받은 적이 있다. 그 일을 회상하며 “그곳은 교사만이 아니라 학부형도 기존의 학교제도를 부정하는 리버럴리스트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악질적인 이지메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요? 학교 측은 학생을 퇴학시키는 결정을 내렸는데, 그것은 이제까지 그들이 고수해온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가라타니 고진. (2018). 윤리21(윤인로 & 조영일, 역). 도서출판 b.(원본 출판 2000년). p. 53~54.)라고 말했다. 이처럼 ‘자유’와 ‘진리’를 표방하는 학교에서 퇴학과 같은 징계는 자신들이 고수한 원칙을 부정하는 행위다.(교육학의 ‘규범적 준거’ 참고바람)
“아이들은 결코 백지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를 아무리 자유롭고 평화주의적으로 키워도 공격성은 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물론 인식한다고 해서 사태가 바뀔지 어떨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잘못된 대처나 환멸이나 좌절은 없어질 것입니다.”(가라타니 고진. (2018). 앞의 책. p. 54.) 우리의 교육은 고진의 말처럼 아이들의 공격성을 인식하고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학교폭력의 위험성을 <돼지의 왕>에서 확인해볼 수 있었고,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고 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1. 연상호 (감독). (2011). 돼지의 왕[영화]. 돼지의 왕 제작위원회•STUDIO DADASHOW.
2. 정형모. (2012-04-28). [EDITOR'S LETTER]돼지의 왕.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8027211.
3. 로이스 타이슨. (2012). 비평이론의 모든 것: 신비평부터 퀴어비평까지 (윤동구, 역). 앨피. (원본 출판 2006년).
4. 이현우. (2014).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현암사.
5. 가라타니 고진. (2018). 윤리21(윤인로 & 조영일, 역). 도서출판 b.(원본 출판 2000년).
6. 김동일. (2016). 피에르 부르디외. 커뮤니케이션북스.
7. 네이버 지식백과.
8. 네이버 어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