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을 보고나서

약 스포 주의!

by Prosh 사회인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하는데…. 진심을 숨기는 용의자 용의자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 그들의 <헤어질 결심>” - 네이버 영화.


<헤어질 결심>은 나에게 많은 기대를 준 영화다. 평소 작품을 잘 추천해주지 않는 친구가 열광적으로 추천해줬고, 이동진 평론가가 별점 5개를 준 영화였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는지 예상보다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다. 그래도 탕웨이, 박해일의 연기, 컷 씬, 대사 등등은 나에게 많은 여운을 주었다. 여태까지 본 영화 중 제일 딴짓 안 하고 본 영화이긴 했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거야.” - <헤어질 결심> 中


이 대사는 나에게 많이 와닿았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 서서히 물드는 사람. 최근 나는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눈물을 펑펑 흘린 적 있다.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들었던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 어떤 문장으로 나의 슬픔을 표현할지 몰랐다. 영화를 본 후 깨달았다. 나의 슬픔은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들었다. 그래서 감정 표출을 잘하지 못하고, 오히려 끙끙 잘 앓는 나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로맨스’ 추리극인 이유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잠복수사는 대상을 감시하고, 지켜보는 수사의 의미이고, 대상은 추악한 용의자이기에 긍정적인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헤어질 결심>에서 잠복수사는 기존 잠복수사와 의미가 다르다. 예컨대 장해준(박해일)이 잠복수사 할 때 그의 상상으로 송서래(탕웨이)를 지켜보고, 그녀의 내음을 맡는 행위를 보인다. 그리고 송서래가 출근하며 차 안의 장해준을 깨워주는 모습은 <헤어질 결심>이 ‘‘로맨스’ 추리극’의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를 취조할 때 수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수사의 형태가 아니었다. 말과 행동들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취조실은 더 이상 취조실이 아닌 둘의 사랑을 진전시키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의 수사(搜査)는 둘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수사(修辭)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증거인멸을 형사가 독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기존 추리극―혹은 수사극―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렇기에 <헤어질 결심>을 추리극을 활용한 로맨스물 즉, 로맨스 추리극이라 할 수 있다.


해준이 해준에게.


해준이 홍산오(박정민)을 검거하려던 찰나 홍산오는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자 해준은 산오에게 “사실 나도 좋아하는 여자가 있거든? 근데 남편이 여자를 때려 그래서 그 남편 새끼 죽이고 싶다! (중략) 아니 니가 왜 쓰레기야! (중략) 너 가인이 때문에 다 포기한거 아니야? ” 이 대사는 사실 해준이 해준에게 하는 말이다. 홍산오와 장해준은 닮아있다. 둘 다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사족을 못 쓴 사람이다.

어찌 보면 홍산오의 전체 모습은 장해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홍산오의 짧을 컷 씬을 넣을 필요가 없다. 홍산오의 장면을 보여준 이유는 해준의 고백과 후일의 암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불행의 암시 말이다.


미결과 영원 ― 평론가 이동진의 시각을 도움받아.


이 영화는 미결된 사건과 사랑으로 끝이 난다.―남 주인공 입장에서는― ‘미결’이란 “아직 결정하거나 해결하지 아니함.”이란 의미가 있다. 아마도 이러한 미결된 사건과 사랑을 암시하기 위한 장면으로 해준과 서래가 있을 때 흐릿한 장면이라던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여주는 씬이 있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여주는 씬’이 미결과 같은 이유는 흐릿한 장면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흐릿한 장면과 거울에 비친 모습 둘 다 직접적인 모습―일차적인 모습―이 아닌 왜곡되거나 상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직접적인 모습이 아니고 왜곡되고 상대적인 불안한 상(想)은 미결을 암시한다.―왜냐하면, 이러한 씬은 거의 해준과 서래가 단둘이 있을 때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헤어질 결심>을 “파란색으로도 보이고 녹색으로도 보이는 그 옷처럼, 미결과 영원 사이에서 사무치도록.”이라 평했다. 여기서 “파란색으로도 보이고 녹색으로 보이는 그 옷”은 상대적인 색이기에 미결의 상징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완료된 일, 끝난 일은 잊혀질 수 있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러나 파란색과 녹색의 상대적인 색처럼 결국 미결된 사건과 사랑으로 마무리됐기에 해준에게는 ―싫든 말든― 영원한 것들로 남아 있게 된다.



헤어질 결심.jpg 이 포스터에서도 탕웨이의 손가락 하나만 박해일의 손 위에 얹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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