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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sh 직장인 Jan 17. 2023

回歸否定

대학 문화상 소설부문 가작 수상작품.


(학교 홈페이지에 원본이 올라오면 글 내리겠습니다.)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KTX는 예전 무궁화호처럼 덜컹덜컹 소리를 내지 않고  ‘무소음’의 소음 내며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은 입 말고 스마트폰을 가진 손으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말 하는 사람은 스피커 속 안내양뿐이었다. “이번 역은 OO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시간이 꽤 된 것 같았는데도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은 닿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타닥타닥’ 소리를 냈고, 사람들은 두 귀를 막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내 뒤에 앉은 대학생 커플이 속닥속닥하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내리는 곳이 똑같았다.

“어휴 이놈의 촌구석은 다니기 너무 불편해 학교만 아니었어도...”

“자기가 참아 그래도 같이 있으니까 재미있게 학교 다닐 수 있잖아.”

“맞아 진짜 사랑해”

 내 뒤에서는 낯 뜨거운 사랑의 공세가 이어져갔다. 정말 풋풋한 청춘이다. 하지만 ‘진짜 사랑해’라는 말은 과연 ‘영원한 사랑일까?’, ‘순간의 사랑일까?’ 그런 재미있는 고민을 하며 나는 가방 속에 가지고 온 책을 꺼내 읽었다.

책에 집중하고 있던 와중 뒤에 두 커플은 마스크를 살짝 벗었는지 모르겠지만 “쪽” 소리가 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증명해 보인 셈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지독한 무언가이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래서 다들 첫사랑은 못 잊는다고 하지 않는가. 나도 ‘고향’이라는 첫사랑을 못 잊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왔다. 기차의 창 풍경은 순간적인 하나의 장면처럼 휙휙 지나갔다. 그걸 보니 지난 15년의 세월이 장면처럼 휙휙 지나간 것 같다.

 내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는 ‘김’형의 교수 임용 소식 때문이다. ‘김’형은 나에게

“야 너 고향이 여기라며 나 여기 대학교수 됐다. 언제 한번 놀러 와라. 이번에 일이 그렇게 됐어도 너무 집에서 꿍하게 박혀있지 말고, 고향 온다는 생각으로 와라.”

이번 일에 대한 언급으로 내 속이 울렁울렁했지만, 오랜만에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교수가 된 ‘김’형을 만날 생각을 하니 늘 입었던 정장을 입고 내려갔다. 여분의 옷은 챙기지 않았다. 필요 없기 때문이다.

 뒷좌석의 커플은 좀 더 소곤소곤하면서 자신들의 욕망을 표출하고 있었다. 얼핏 듣기로는 뜨거운 사랑 이야기였지만, 나에게는 그저 흘러가는 말에 불과했다. 흘러가는 말을 들었을 때, 안개와 안개가 없는 경계의 찰나를 목격한 순간 기차는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안개 속으로 뚫고 들어가자, 그곳은 안지(安地)였다.


그때 내 손에는 <무진기행>이 들려있었다.     


 안지역에 도착하자 ‘김’형을 만났다. 김형은 여섯 척(尺) 정도 돼 보이는 키와 누가 봐도 푸근한 인상을 주는 풍채가 있다. 그는 이번에 국립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된 남자였다. 그의 손에는 휴대전화와 안지의 특산품을 들고 나를 맞이하러 왔다. 나는 그의 손을 보고 “아휴 뭘 이런 걸 다 사 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김’형은 “야! 그래도 후배가 왔는데 이런 거 챙겨줘야지!”

 그는 대학교수에다가 미인인 아내도 있고 최근에 자신의 집도 구매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타인에게 이런거를 받는 게 싫었다. 타인에게 무엇을 받는다는 것은 ‘의도’를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못하다. 왠지 그 의도 뒤에는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일단 내 손에 선물상자... 아니 의도 상자를 들지 않았다. 그때 안개는 더욱더 진해져 가고 있었다. 안지의 사람들은 안개를 싫어하고 회피의 대상으로 보았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안지의 안개는 욕망의 결정체다. 그래서 나는 안지의 안개를 긍정한다. 오랜만에 안지에 와서 그런가 안개를 보니 이런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안지에 안개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안지댐 때문이다. 안지댐은 특별한 것이다. 안지댐이 존재하기 전 그곳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사람들은 다 쫓겨나고 지금은 물과 인간 외 다른 생명만 살 수 있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시설이 됐다. 하지만 경제개발이란 그 욕망, 그 욕망으로 만들어진 결정체가 안지의 ‘안개’다. 안지 사람들은 안개를 부정하고 싫어하는 언행을 일삼지만, 실은 다들 속으로 어딘가에 자신의 욕망의 결정체인 동상을 세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다들 겉모습을 성자처럼 꾸며야 하는 불문율이 있어 욕망을 부정하는 척한다. 나는 안지 사람들을 고고한 대가람(大伽藍)을 소유하고, 자신의 대가람에 한구석에 동상을 세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안지사람들이 싫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어리숙한 미가 있다. 서울 사람들은 같으면 ‘눈 뜨고 코가 베이면’ 엄청나게 화를 내지만, 안지의 경우 코를 베는 사람도·베이는 사람도 둘 다 쭈뼛쭈뼛하는 어리숙하고 희한한 모습들... 서울에서 볼 수 없는 그 모습이 나에게 아름다움 그 자체로 느껴졌다. 나는 ‘김’형의 차를 타고 근처 식당으로 가고 있었다. ‘김’형의 차는 대학교수와 어울리는 이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차. 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와. 형 진짜 죽이네요. 이런 차도 타고.”

“야! 이게 뭐라고 죽네 마네 하냐 너도 살 수 있잖아.”

“형 저는 이런 차 절대 못 사요.”

“맞냐? 참 너 담배 피지? 나 담배 한 대만 빌리자.”

나는 ‘김’형에게 ‘한라산’ 한 대를 빌려줬다. 그러자 ‘김’형은 “야! 한라산을 왜 샀어!? 니가 할아버지냐?”

“아뇨 형 오랜만에 고향에 왔으니까 한번 사봤어요. 서울에서는 이제 구할라 그래도 못 구하거든요”

 우리는 달리는 차 속에서 긴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에 있는 ‘김’형 아내의 임신 소식, ‘김’형이 몇 년 지나면 정교수가 될 것 같다는 소식, ‘김’형이 서울에 또 다른 집을 구매했다는 소식, ‘김’형의 기러기 아빠의 고충 등의 ‘김’형에게 일어난 재미난 소식을 들었다. 그때 ‘김’형은 “너는 어떻게 지냈어?”라는 말에 “그냥 뭐 공부하면서 살고 있었고...”

 나는 아직도 공부하면서 살고 있다. 대학생 때와 대학원생 때와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김’형과 나는 대학생 시절 만난 사이이다. 내가 학부 1학년 때, ‘김’형은 3학년이었다. 당시 ‘김’형은 불어불문학을 전공했고, 나는 서양철학을 전공했다. 철학을 공부했을 때 당시 ‘실존주의’를 너무 좋아해서, 전공 공부라도 실존주의와 관련이 없었으면 공부하지 않을 정도로 미쳐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아리에서 ‘알베르 카뮈’를 좋아하는 ‘김’형을 만났다. ‘김’형과 나는 ‘허무’와 ‘실존’을 동아리 방에서 밤새 이야기할 정도로 장단이 잘 맞았다.

 김형은 불문학으로 석•박사를 했다. 당연히 ‘카뮈’를 통해서 학위를 받았고, 나는 서양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철학을 계속하기에는 재능이 부족하고 뭔가 안 맞는 느낌이 들어서 박사 과정을 밟지 않고, 로스쿨에 진학했다. 철학을 공부해서 그런지 로스쿨 동기들보다 사고 유창성이 좋고, 기발한 답을 잘 내서 교수들도 “내가 자네랑 학교를 같이 다녔다면 매일매일을 좌절했을 것 같네”라며 항상 나를 칭찬해줬다. 하지만... 아니다. 그만 말하고 싶다.

 아무튼, 우리는 근처 풍경 좋은 초밥집에서 밥을 먹게 됐다. 그곳의 초밥은 서울보다 훨씬 더 싸고 맛도 좋았다. 밥알을 씹을 때마다 밥알이 더 씹어달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래서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이 씹어먹었다. 안지의 초밥은 서울과 다르다. 서울은 북적북적해 대기해야 하고, 주문해도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이곳에서 기다림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손님도 많지 않은 도시이다 보니 주문을 넣으면 바로바로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 있었을 때처럼 빨리 먹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넓은 공간―서울보다는 조금 더 좁지만―에서 먹는 사람은 당시에 ‘김’형과 나밖에 없어서 그런 건지 주방장은 초밥을 편안하게 자신의 템포로 만들려다 보니 빨리 먹으면 그들은 헛기침하거나 자신들의 타이밍에 맞지 않게 먹어서 곤란한 내색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초밥을 서울에 있었을 때 보다 천천히 씹어먹었다.―초밥이 맛있어서 더 오래 씹어먹은 이유도 있다.― 씹어먹으면서 타지에 온 듯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초밥을 천천히 씹어먹게 될 때 밖의 풍경을 보니 안개가 조금 진하게 있었다.     

 밥을 먹고 저녁이 돼서 ‘김’형이 잘 알고 있는 선술집으로 들어가 술을 마시러 갔다. 김형은 “야! 나 교수 되고 나서 너랑 술 마시는 건 처음이네! 형이 학부 때보다 지금 돈을 훨씬 많이 벌고 있으니까 맘껏 먹어라!”

“고마워요. 형 잘 마실게요.”

우리 테이블 옆에는 따듯한 난로가 있었고, 문밖은 안개가 자욱했다. 나는 ‘김’형과 이야기하면서 술집을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들 선술집에 들어올 때는 제정신으로 들어왔고, 선술집 안에서 과음을 해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욕 하는 ‘안하무인’의 상태가 됐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안하무인의 상태가 된 사람도 이상하게 가게 밖으로 나가면 조용해졌다. 당시 우리 테이블로 와서 시비를 건 손님이 있었는데, 우리가 담배를 피우러 나갔을 때, 그 손님도 따라나와 밖에서는 조용히 담배를 피웠다. 흡연하고 있었을 때 김형은 나에게 담배를 빌리며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고, 나는 그 표정에 딱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그는 자신의 테이블 동료에게 쑥덕거리며 우리를 힐난하고 있었다. 나는 힐난한 대화 내용을 들었음에도 굳이 대응하지 않았다.

“김형 저 사람들 밖으로 나가면 조용해지겠죠?”라고 물었다.

“아마 그럴걸? 요새 경찰들 단속도 많이 돌고 그러니까 함부로는 못할 거야.”

“김형은 안지의 안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개? 답답해 죽겠어~ 운전도 제대로 못 하고, 진짜 심한 날에는 내 옆에 와이프가 있는지 양아치가 있는지 모를 정도야. 항상 조심해서 다녀야 해.”

“만약에 김형이 걷고 있을 때 사모님이 옆에 계시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러면 손을 꼭 잡고 와이프랑 함께 앞으로 가는 거야 그러던 도중에 주변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면 엉큼한 짓도 하는 거지.”

“그럼 곁에 양아치가 있으면요?”

“그럼 그냥 밀치고 뛰면 돼 날 좇아와도 못 잡아 안개 덕분에, 이야~ 근데 요즘 애들 무서워 얼마 전에 알게 된 우리 학교 동료 교수는 지나가다가 젊은 애들 좀 쳐다봤다고 시비가 걸려서 맞을 뻔했데. 참 무서운 세상이야 너도 조심해.”

“요즘 애들이 그렇게 무섭군요...”

나는 ‘요즘 애들’보다 ‘요즘’이 더 무섭다. 갑자기 ‘요즘’을 생각하니 머리가 핑 돌고 테이블 옆에 난로의 열이 용암처럼 느껴졌고, 나는 용암에 빠질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미지의 세계에 혼자 있는 사람 같았다. 순간 ‘이곳은 나의 고향인데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가? 서울에서 있었던 일이 ‘김’형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나의 존재는 이곳에서 ‘이방인’이 된 것인가? 나는 왜 나의 고향에 돌아왔음에도 이방인이 된 것인가? 나는 왜 이렇게 된 것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됐다. 그러자 밖을 보았는데 안개 연기는 걷힐 줄 모르고 자욱하게 있었다.

사실 나는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변호사 시험을 ‘4번’ 떨어졌고, 이번에 마지막 변호사 시험을 보고 안지로 내려왔다. 나는 변호사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을 위해 지난 3년을 바쳐왔다. 그리고 4번의 낙방은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3번째 응시할 때도 ‘그래 유명한 사법고시 출신들도 낙방한 사람들이 많았어. 여태까지 때가 아니었던 거야. 이번에 때가 온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유명한 사법고시 출신들과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들은 그들이었고, 나는 나였다. 어리석은 생각으로 나를 자위하기 바빴다. 그래서 이제는 이러한 자위를 금해보려 한다. 만약 이번에도 변호사 시험에 떨어진다면, 이번에 김형이 주선해준 일자리에서 일할 생각이다. 생각해보면 서울에서의 삶보다 더 편하다. 부모님과 함께 오순도순 살고, 월급도 나름 나쁘지 않게 받고,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도 하고... 생각하던 와중 내 속이 또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해 구토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질어질하던 와중 나는 김형에게 “형 진짜 부러워요. 저는 벌써 4번 떨어지고 올해가 마지막인데, 형은 형이 원한 교수도 되고, 이쁜 사모님도 계시고, 좋은 차도 있고, 자기 집도 있고 진짜 너무 부러워요.”

“야! 그래도 나는 이제 여기서 평생 살아야 해.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살지 못해. 너처럼 자유의 몸은 못 돼. 하지만 너는 그렇지 않아. 너도 너만의 장점이 있으니까 시험 떨어졌다고, 계획대로 안 된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지 마. 나는 오히려 네가 부럽다 임마.”라고 ‘김’형이 말했다.

‘김’형이 ‘좌절’ 즉 내 밖에 있는 것들이 나를 괴롭힌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좌절은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르트르’는 ‘모든 선택은 자유지만 선택의 결과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이 좌절에 대해서 왈가왈부해선 안 된다. 그렇지만 너무 힘들다. 참고 버티기 힘들다. 어느 곳에서든 내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에는 부적절하지만, 이곳에선 도저히 말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여태까지 있었던 ‘자기기만’의 가면이 벗겨져서 알몸이 될 것이며 나는 부끄러워서 이생을 제대로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털어놓을 수 없다. 그래서 쓴웃음만 지어냈다.

“근데 너 <무진기행>은 왜 들고 왔어?”라고 ‘김’형이 물어봤다.

“그냥 기차 안에서 심심하기도 하고, 워낙 재미있게 읽는 소설이기도 하고, 김승옥 작가의 작품은 단편 소설이라서 짧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왠지 안지는 <무진기행>의 무진과 비슷해요.”라고 답했다.

“안개가?”

“아뇨 무진의 ‘안개’와 안지의 ‘안개’는 전혀 다른 의미죠.”

“안지의 안개도 나름 특산품일걸?”

“안지의 안개는 특산품이 아니라 명물(名物)이죠.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다른 곳에서 흉내조차 낼 수도 없는 명물이죠. 무진의 안개도 이러진 못 할걸요?”

“그럼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글쎄요. 그렇지만 때로는 안개가 걷어져야 하겠죠. 걷어져야 뭐 하는지 볼 수 있잖아요. 나쁜 짓인지 아닌지 제대로 보는 건 분명하게 보일 때 말고는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해서 안개가 걷어져야 우리는 주변을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겁니다. 걷어져야 볼꼴 못 볼 꼴 다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어디서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말지 배우는 거죠. 근데 안지의 안개는 위선을 다 가려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선을 어리숙하게 표현합니다.”
 “내가 와이프랑 엉큼한 짓 할 때도 주변에 보여져야 하나?”

“걷어져야 합니다. 그런 것만큼 재미있는 구경거리도 없죠.” 그러자 ‘김’형은 크게 웃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 순간 나는 카뮈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김’형은 카뮈의 <이방인>이 왜 노벨상을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방인은 두 가지 사유 때문입니다.” 그러자 ‘김’형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카뮈의 <이방인>은 ‘뫼르소의 매력’과 ‘실존주의적 사유’라고 생각합니다.”

“‘뫼르소’의 어떤 부분이?”

“참 흥미롭습니다. 여자친구와 강아지를 동등하게 바라본 표현이나, 어머니의 죽음 이후 여자친구와 희극 영화를 봤다는 불쾌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매력에 속은 것입니다. 그리고 실존주의적 사유는 당시 시대상을 보았을 때 알제리인은 프랑스 식민지였는데, 그러한 것을 다 제쳐놓고 사람을 죽였다는 정당한 사유로 사형을 받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불쾌한 유쾌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을 읽을 때 저는 유쾌해집니다. 니코틴이 내 뱃속을 스밀지 않아도 <이방인>을 읽으면 몸이 흐느적흐느적할 정도로 힘들어도 정신이 음식 놓기 전 반짝반짝한 ‘은접시’마냥 맑아집니다. 이러한 매력을 당시 노벨상 심사위원들도 느꼈기 때문에 카뮈가 당선된 겁니다.”

“나는 이제 그런 생각 안 한다. 넌 참... 아직도 열심히 공부하는구나.”

 아직도? 순간 내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아직’이 아니다. 내가 말한 이 느낌은 대학교 1학년 때 받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멈춰있는 사람이다. 멈춰있기에 변호사 시험도 4번이나 떨어졌고, 지금은 고향으로 내려왔다. 만약 이번에도 변호사 시험에 떨어지면, 나는 이제 ‘김’형에게 평생 고마워해야 할 존재가 된다.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동아리 내에서 손가락질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손가락질하지 말라고 부원들에게 경고했던 형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서 상을 타왔을 때도 나에게 항상 밥이나 술을 사준 형이었다. 15년이 지나서도 우리의 관계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거짓말을 했다. 이젠 <이방인>을 읽어도 맑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책을 찢은 다음 불구덩이 속으로 넣고 싶을 정도로 혐오의 감정이 든다. 나는 ‘뫼르소’보다 못한 놈이다. 그저 시대를 잘 타고나서 사형을 안 당한 사람이다. 그래서 대학생 때와 달리 이제는 정신이 ‘흐느적흐느적’하고 내 뱃속은 멀쩡하다. 밥을 먹지 않았을 때도 멀쩡했다. 한때 일주일간 밥을 먹지 않아서 10kg이나 빠졌다. 그래서 ‘김’형은 나에게 욕을 하며 밥을 억지로 먹였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배가 고프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 대학생 때 <이방인>을 읽으며 받은 그 느낌을 받고 싶어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담배를 태운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지금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갑자기 갈증이 나기 시작해 내 앞의 진토닉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진토닉 속의 토닉워터와 진의 맛. ‘진’은 값이 싼데 도수가 높은 술이다. 160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감기약 대신에 진을, 아이티 및 서인도 제도를 프랑스에 빼앗겨 럼을 만들지 못한 영국 사람들이 그 대체재로써 진을 만들었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진에 중독된 부모들이 진을 마시기 위해 자신의 자식을 어두운 곳으로 팔아넘긴 사례도 있을 정도이고, 네덜란드에서도 진을 먹기 위해서 감기에 걸린 척하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나에게 ‘진’은 욕망의 술 그 자체였다. 하지만 토닉워터와 섞였기에 진은 어디론가 숨겨진다. 그리고 라임이 얹어져서 한층 더 진을 알 수 없게 된다. 안지의 진토닉은 서울에서 진토닉과 다르다. 보통 진과 토닉워터를 3:7로 섞는데, 여기서는 2:8로 섞는다. 이러한 특이하고, 독특하고, 엉성한 안지의 진토닉은 ‘안지’와 잘 맞는 구석이 있다. 우리 테이블 말고도 다른 테이블의 젊은이들을 보면 진토닉을 시킨 젊은이들이 많은데 물론 진이 많이 섞여 있지 않지만, 그들은 원액의 위력을 모르고 맛이 좋다며 너스레 떨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훅 가버렸다. 아까 우리 테이블에 와서 시비를 건 손님도 진토닉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마셨고 인사불성이 됐다. 하지만 나는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멀쩡했다. 숨어있는 존재의 위력을 알고 있었기에 맨정신이었다. 그리고서 그다음 잔은 진토닉을 시키지 않고 다른 양주를 시켰다. 원래 나는 진토닉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여기서는 다른 양주가 먹고 싶었다. 내가 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진 속에는 역사적으로 깊이 있는 욕망이 있다. 앞서 말한 ‘진을 마시기 위해 자신을 판 부모들’, ‘감기가 안 났지만 진을 마시고 싶어 한 사람들’, ‘멋도 모르고 진토닉의 무언가에 빠져 취한 사람들’처럼 과거와 현재까지 쭉 이어진 ‘숨겨지지 않는 욕망’ 그 욕망 때문에 나는 진을 좋아한다. 이곳 술집에서는 진을 샷으로 팔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납득 할 수 있었다.

진토닉을 다 마신 뒤에 다음으로 무엇을 마실지 고민하고 있었던 찰나에 ‘김’형이 나에게 전통주를 기반으로 한 칵테일을 추천해줬지만, 나는 거절했다. 전통주를 기반으로 한 술을 마신다면, 여태까지의 ‘나’를 부정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자주 마셨던 ‘글렌피딕 12년 산’을 온더록스(On the rocks)로 시켰다. 글렌피딕을 마셨을 때는 나를 긍정할 수 있는 느낌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짧게나마 정신이 음식 놓기 전 반짝반짝한 ‘은접시’마냥 맑아졌다.

그때 옆에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 하나는 검은색 고양이, 다른 하나는 하얀색 고양이었다. 이 가게 주인장이 키우는 애완묘였다. 고양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주거니 받거니 했었다. 고양이들이 말을 이렇게 하는 것은 처음 봐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들에게로 가서 그들과 둥글게 앉았다.

“야옹” 흰 고양이가 말했다.

“야옹” 검정색 고양이가 말했다.

“야옹” 나도 말했다.

“미야옹” 흰 고양이가 말했다.

“미야옹” 흰 고양이가 말했다.

“야옹야옹” 내가 말했다.

그러자 고양이 두 마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냈었다. 그래서 나는 “너희는 뭘 그렇게 이야기하니?”라고 말하자 “키하악!”거리며 고양이 두 마리가 나에게 화를 냈다. 나는 부끄러워서인지 취기가 올라와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얼굴이 확 달아올라 테이블로 도망쳤다. 나는 고양이들에게 추방됐다. 하지만 내 발로 뚜벅뚜벅 걸어간―혹은 도망친― 인간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를 보고 웃었지만, 나는 고양이들의 어리숙하고 귀여운 얼굴 이면의 무언가를 보아서 자리를 피했다. 당시에 고양이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던 사람은 나 말곤 없었다.

술을 많이 마신 ‘김’형이 더 마시면 내일 못 일어날 것 같아서 계산한 후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그때 이상하게도 자욱했던 안개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안개가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도망쳤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때 나는 씨익하고 옅은 웃음을 지어냈다.     

택시를 타고 ‘김’형의 집에 도착했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손발을 씻고 아무런 의미 없이 TV를 켰다.

“야! 정장 입고 어떻게 자려고 너 여벌 옷은 챙겼어?”

“그냥 뭐 이대로 자도 상관없죠. 이젠 익숙해요.”

“우리 집에 늘어진 런닝구하고 트레이닝 반바지 있으니까 그거라도 입어라. 그 옷을 보고 있으니까 내가 답답하다. 여기가 면접장도 아니고 꺼내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네 뭐 알겠습니다.”

나에게 정장은 평상복과 같은 존재다. 과장해서 말하면 피부와도 같다. 그래서 나는 항상 어디론가 갈 때, 사람을 만날 때, 혼자서 외식할 때는 항상 정장을 입는다. 왜냐하면, 서울은 ‘면접장’ 같은 도시이니까. ‘김’형에게 낡은 면티에 트레이닝 재킷과 트레이닝 반바지를 받아서 입었는데, 입은 이유는 왠지 이 도시에서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입었다. 이 옷을 입었을 때 어딘가 가려웠는데, 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몰라서 당황했다.

나는 왠지 산책하러 나가고 싶어 ‘김’형에게 잠시 이 근처를 혼자서 돌고 싶다고 말했고, ‘김’형은 너무 오래 밖에 있지 말라고 말했다.

‘터벅터벅’거리는 소리, 늦은 시간에는 가로등의 불빛과 나만이 존재했다. 서울 같았으면 지금 한참 사람들이 술 마시거나, 어디 재미있는 곳에 놀러 갈 시간인데, 여긴 조용하다. 아무도 없다. 주머니 속 담배를 꺼내 피웠는데, 쓰레기장 근처에 거울이 있었다. ‘여기는 이런 큰 폐기물 쓰레기를 버려도 스티커를 붙이지도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폐기물에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나는 거울을 보면서 담배를 피우고 지나갔는데 눈 깜빡인 순간 정장 입은 남자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김’형의 생각이 전염됐는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정장 입은 남자를 특별한 옷을 입은 남자로 생각했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서 ‘김’형의 집으로 도망치듯이 뛰어갔다.

‘어쩔 수 없어 나는 편하게 살 거야. 편안하게 살 곳이 고향일 뿐이야.’     

다음 날 아침 나는 내 눈을 부비고 일어났는데, ‘김’형은 환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김’형이 웃었던 이유는 내가 빨리 일자리를 구할 수 있어서 환하게 웃었던 것 같았다.

“좋은 소식이다. 너 원래 다다음주부터 출근해야 되는데, 내일부터 출근하란다. 잘됐다.”

“정말요? 다행이네요.”

“야! 그래도 내 덕분에 합격했는데, 오늘 학교까지 운전 좀 해줄 수 있냐? 어제 술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몸도 찌뿌둥하고, 안개도 많이 껴서 이 상태로는 내가 운전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그럼요.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그리고서 나는 어차피 운전만 하면 되니까 씻지 않고 그냥 눈곱만 떼고 ‘김’형의 차 운전석에 앉았다. ‘김’형도 서류 가방을 챙기고 조수석에 앉았다.

“근데 정장은 왜 들고 왔어? 그리고 너 신발도 잘못 신었다. 트레이닝 복장에 구두가 뭐냐”라며 ‘김’형이 웃어댔다.

“혹시 모르잖아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김’형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저 이번에 어디 취직시켜 주신 겁니까?”

“아 이번에 우리 학과 조교직이 있는데, 너 거기 꼽았다. 계약직이긴 해도 괜찮아. 7급 공무원 대우도 받으니까 좋을 거야. 운 좋은 줄 알어. 요즘 취직 같은 건 아무나 하니? 넌 정말 나 없었으면 큰일 났다니까?” 갑자기 ‘김’형은 나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 말고도 그렇지만, 요즘 암만 좋은 학교 나와봤자 사람들이 취직을 못 해요. 끈기가 없거든, 너도 철학과 쭉 다녔으면, 교수했을 거다. 이게 뭔 일이냐 참...”

이 말은 들은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일이면 ‘김’형은 나의 상사가 된다. 그래서 일단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상당히 불쾌했다.

그러다가 안개가 자욱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상태에서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앞에 있는 차와 접촉사고가 나버렸다. 앞차에서 내린 사람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는데, ‘김’형은 사내의 얼굴을 보자마자 욕을 했다. 나와 ‘김’형은 차에서 내려 사과를 했지만, ‘50대 후반’의 사내는 화를 막 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까 그는 ‘김’형 단과대학 ‘학장’이었다.

“아니 ‘김’ 교수, 자네 운전해주는 친구는 뭐 술 마셨는가? 나이도 좀 있어 보이는데 운전을 왜 이렇게 하는가?!”라며 역정을 냈다.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이번에 저희 학과 조교를 맡게 된 친구인데, 학교 사람들에게 인사드리고 싶다고 떼를 써서 운전대를 맡겼는데, 죄송합니다.”

“에잉! 요즘 젊은것들은 참!”이라 말하고 이번에는 봐주겠다는 말과 함께 떠나가 버렸다.

“야! 운전을 어떻게 하냐?! 발로하냐? 너 저 사람이 누군지 알아?! 저 사람 우리 단과대 학장이야 학장! 너 조교직으로 일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떡하냐! 어휴 학장님 차는 뒤가 조금 들어가서 다행이지만, 내 차는 아에 찌그러졌잖아! 너 돈도 없고 이게 첫 직장이면서 수리비는 낼 수 있냐?!” 김형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 내 눈앞에 “살기 좋은 ‘안지’ 가족 같은 ‘안지 대학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화내는 ‘김’형을 뒤로한 채 차 안으로 들어가 그가 준 옷을 전부 벗고 뒷좌석에 있던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러자 ‘김’형은 뭐 하는 짓이냐고 물어봤다.

“‘김’ 교수님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저 일 못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차량 수리비는 저한테 청구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하룻밤 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설마 올라갈 생각인 거야?”

 나는 말 없이 씩하고 웃으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김’ 교수는 “병신같은 새끼 너 여기 떠나면 누가 널 받아 주겠냐? 너 잘 생각해야 해. 너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야.”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이죠. 마지막.”

나는 ‘김’ 교수에게 묵례하고, 스마트폰으로 기차표를 예매한 뒤 택시를 타고 ‘안지역’으로 갔다. 딱 맞게 기차를 타게 됐다.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맡기며 안지역에서 출발을 했다. 안지의 풍경은 안개에 가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내 몸에는 ‘김’ 교수의 옷을 입었을 때 가려움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안개가 걷히고 다른 도시가 보이자 가려움은 사라졌다. 그때 핸드폰에 ‘OO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 안내’ 문자가 와서 법무부 홈페이지로 들어가 합격조회를 했다. 수험번호를 입력한 후에 화면에 있는 글자를 보고 나는 씩 웃었고, 기차는 서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심사위원 소설평

<회귀부정>은 변호사 시험 결과를 앞두고 고향에 가 선배를 만나 일어난 일을 쓴 글인데 안개를 통한 은밀한 욕망의 감춤과 드러냄이 좋았다. 다만 산만하고 짜임새가 헐거워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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