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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sh 직장인 Feb 21. 2023

누군가에게만 ‘멋진 신세계’ 1

<멋진 신세계> 비평문!


 <멋진 신세계>―이하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2014). <멋진 신세계>(이덕형, 역). ㈜문예출판사. (원본출판 1932년) / 본 책의 소설 속 내용을 인용할 때에는 이텔릭체와 쪽수 표기만 하겠음.)는 올더스 헉슬리(A.L. Huxley, 1894~1963)의 작품이다. <신세계>는 얼핏 보기에는 우리가 꿈꾸는 완벽한 세계를 쓴 작품이다. 반목과 갈등이 없는 세상,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오늘 할당된 일을 끝낸다면 그걸로 충분한 세상, 부작용 없는 알약을 먹으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멋진 신세계>에 그려져 있다. 하지만 변화 없는 세상, 태초부터 정해진 사회 속 계급, 전체주의 체제의 모습,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적 가치가 훼손된 세상 이런 세상이 <신세계> 속에 담겨 있다.

 이번 글에서는 <신세계>의 여러 가지 부분을 파헤칠 것이다. 그중에서 특히 <신세계>와 같은 사회가 우리가 추구하는 유토피아가 아닌 ‘누군가의’ 유토피아임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신세계> 속 사회―전체주의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 사회인지 알려주고, 담화의 중요성을 작성해 보겠다. 이 글을 통해서 유토피아가 정말 ‘우리들의 유토피아’인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마술적 리얼리즘 서술이 강한 몰입력을 산출해냈다.     


“절제된 난소를 산 채로 보관하고 성장시키는 기술을 어느정도 설명했다. (...) 어떤 난자가 수정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다시 한번 그 부화기로 옮겨진다. 알파나 베타 계급은 완전히 봉해지기까지 그곳에 그대로 두지만”(p. 10)     


“보카노프스키 법으로 처리된 알은 싹이 나고 증식해서 분열한다. 8에서 96개의 싹을 틔우며 그 한 개 한 개가 성장하여 완전한 형태를 지닌 태아가 되고 각각의 태아는 완전한 크기의 성인이 된다. 전에는 한 인간이 자라던 곳에서 96명이 자라도록 한다.”(pp. 10~11)     


 이러한 서술은 ‘마술적 리얼리즘’(혹은 판타지+리얼리즘)을 떠올리게 한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마법과 초자연적인 존재들, 상상 속의 동물들을 활용하지만, 실제 일어난 역사나 사실을 교차시키는 작품들을 말한다.”(바로북. (n.d.). 판타지 문학. 네이버 지식백과.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0207&cid=60654&categoryId=60654&anchorTarget=TABLE_OF_CONTENT6#TABLE_OF_CONTENT6) 즉 그것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의 활용과 현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교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예를 들어 영화 <해리포터>에서 마법 사용은 현실에 없지만,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도시에서 사건들이 일어난다.―

 헉슬리가 <신세계> 초장에서 마술적 리얼리즘 즉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해 독자들의 무의식 영역을 정확하게 건드렸다. 왜냐하면 판타지의 세계는 “우리 무의식의 표현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억압하는 영역, 즉 무의식의 영역과 꿈의 세계를 가장 쉽게 반영”(최인규. (n.d.). 판타지.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275316&cid=42219&categoryId=51142)하기 때문이다.

 고도화된 과학기술의 틀 속에서 “절제된 난소를 산 채로 보관하고 성장시키는 기술”과 “한 인간이 자라던 곳에서 96명이 자라도록 한다.”라는 서술로 ―이렇게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불안의―무의식과 꿈―상상―의 영역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 인간이 자라던 곳”, “절제된 난소” 현실적인 요소를 사용해 실재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판타지는 인간 상상의 결정체이자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이다. <신세계> 또한 당시나 현재의 과학 기술로 설명할 수 없는 판타지적 면모가 진하다. 그렇지만 <신세계>는 리얼리즘을 함께 첨가돼 있어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모호함은 독자들에게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모르게 만들어 공상감정과 실재감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강한 몰입력은 마술적 리얼리즘에서 온다.     


2. 담화대화― 없는 진보는 불가능하다.     


 <신세계> 속 사회는 사람들의 계급을 미리 정하고, 어릴 적부터 그 계급에 맞는 조건반사적 습성을 훈련시킨다. 조건반사적 습성은 “자신들의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숙명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일”(p. 24)이다. 이것은 행복과 미덕의 비결이다.

 그리고 <신세계> 속 시민들의 사회 전반적인 이해는 최소화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전문적 지식은 덕과 행복을 증진시키나 전반적인 지식은 지적 견지에서 볼 때 필요악이기 때문”(p. 8)이다.

 작중 사람들은 조건반사적 습성―이 안에 ‘수면시 교육’이 포함돼 있다.―을 훈련받아 “자신들의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숙명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일”을 훈련받았다. 자신들의 사회적 숙명, 더 나아가 인간이 지닌 숙명에 관해서 고민할 수 없다. 고민할 수 없기에 타인과 말할 수 없고, 타인과 말할 수 없기에 담화―대화―는 사라졌다.     

6장에서 이러한 점을 자세히 볼 수 있다.(이런 식의 대사들이 좀 더 있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그만 서술하겠다. 더 자세한 사항을 보고 싶은 독자는 위 책의 pp. 112~118, pp. 224~225, pp. 232~234, 13장~18장을 보길 바란다.)

     

버나드: “나는 그냥 나대로 있고 싶습니다. 울적한 나대로가 좋습니다. 아무리 즐거울지라도 타인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p. 111)

레니나 : ―그녀는 수면시 교육에서 들었던 말로 소마를― “적절한 시간에 일 그램 마시는 것은 구 그램을 절약하는 거예요. (...) 화내진 마세요. 일 세제곱 센티미터가 열 가지 우울증을 치료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구요. (...) 일 그램은 항상 따분한 기분보다 나은 법이에요.”(p. 111)     

버나드: “난 바다를 보고 싶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 마치 나 자신 이상이 된 것 같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훨씬 더 나다워진 것 같다는 말입니다. 다른 어떤 완전한 것의 일부가 아니라 자신이 독립된 존재가 된 것 같다는 이야깁니다. 사회라는 조직체 속의 한 세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기분 말입니다.”(pp. 112~113)


레니나: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무서워요. 무서워요 (...) 사회의 일부가 되기 싫다는 말을 어떻게 하실 수 있지요? 결국 모든 사람은 모든 타인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거예요. 어느 한 사람도 없이는 살 수 없는 거예요. 엡실론 계급조차도…….”(p. 113)

버나드: “엡실론 계급조차도 유용한 존재들입니다. 나도 그렇고요.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겁니다!”(p. 113)

레니나: “버나드! (...)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요?”(p. 113)

버나드: “내가 자유롭다면, 조건반사적 교육으로 노예화되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떤 것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p. 113)

레니나: “버나드, 당신은 지금 가장 끔찍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p. 113)

버나드: “레니나, 당신은 자유로워지고 싶지 않으세요?”(p. 113)

레니나: “무슨 말을 하시는지 난 모르겠군요. 전 자유로워요. 자유롭게 가장 멋진 시간을 즐기고 있어요.”(pp. 113~114)     


레니나: “개인이 감정을 가지면 동요하는 법이에요”(p. 117)

버나드: “사회가 좀 동요하면 어떻습니까?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p. 117)

레니나: “버나드!”(p. 117)


 우리는 ―조건반사적 습성 중 하나인― ‘수면시 교육’은 19~20세기 교육의 변이를 알 수 있게 해준다. 19세기 교육은 민주주의의 보편화를 증진시킬 용도로 보급됐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교육은 정보·지식의 전달은 쉬워졌지만, 프로파간다와 특정 사상주입이 쉽고 편리해졌다. 그리고 프로파간다와 사상주입에 오염된―선동된― 사람들은 진영논리에 빠져 정상적인 담화를 할 수 없게 된다.

 작중 레니나는 ‘수면시 교육’에서 들은 말의 부분들로 버나드에게 소마를 복용하라고 장려했다. 수면시 교육과 맞지 않는 주장과 견해를 들으면 그것들에 논박하지 않고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교육이 개인의 가치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담화는 사라졌다. 하지만 담화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담화를 통해서 발전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흐친(Mikhail Bakhtin)은 담화―대화―의 중요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삶은 본성상 대화적이다. 산다는 것은 대화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묻고 귀를 기울이고 대답하고 동의하고 하는 등등이 그것이다. 이 대화에 인간은 삶 전부를 가지고 참여한다. 눈으로, 입으로, 손으로, 영혼으로, 정신으로, 온몸으로, 행동으로, 그는 이 대화에 참여한다. 그는 자신의 전체를 말속에 집어넣으며 이 말은 인간 삶의 대화적인 직조물속으로, 세계적인 심포지엄속으로 들어간다.”(미하일 바흐찐 (2006). <말의 미학> (박종서 김희숙, 역). 길. (원본출판 n.d.). p.454)

 “대답은 이해에 기초를 마련해 주고, 관심이 있어서 활동을 벌이는 이해의 준비이다. 대답 속에서 비로소 이해가 성숙해진다. (...) 대화적 관계들은 논리적이고 대상적으로 의미에 합당한 관계들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미하일 M 바흐찐 (1988). <바흐찐의 소설미학> (이득재, 역). 도서출판 열린책들)     

 담화는 삶의 본성 즉 ‘삶’ 그 자체이다. 그리고 삶을 통해 우리는 발전한 미래로 갈 수 있다. 실제로 우리의 역사도 담화의 축적을 통해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사단칠정론이나 인성물성론 그리고 심론 등은 다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담화의 축적을 통해 전개되고 발전돼 왔다.

 담화는 우리를 발전한 미래로 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담화가 없는 <신세계>의 세계는 “논리적이고 대상적으로 의미에 합당한 관계”가 없다. 그래서 담화를 전개할 수도 발전시킬 수도 없는 세계다. 그러므로 <신세계>의 세계는 현재의 삶도 발전된 미래도 없는 죽은 세계다.

 작중에서 “인간에겐 무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걸세”(p. 290)라고 말했다. 이는 헉슬리가 <신세계>를 통해서 “모든 진보는 반드시 그 희생의 대가를 동반하는 것이라는 사상이 있다는”(올더스 헉슬리 (2014). 앞의 책. p. 336) 자신의 사고방식을 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희생 또한 세밀한 담화를 통해 나올 수 있다.―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희생들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의미 있는 희생 없이 진보는 불가피하다. 그런 데 의미 있는 희생은 담화 없이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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