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 제주 여행기
현무
검은 땅, 제주. 죄인들의 유배지, 수탈과 약탈의 땅, 전쟁 무기의 격납고, 빨치산의 온상. 제주는 안온히 제 이름을 가지고 살아온 적이 없었다. 흐르는 용암보다도 뜨거운 인간의 욕망에 데이고 녹아내려 왔다. 그 검은 암석만큼 제주를 오롯이 닮은 것이 또 있을까. 무고히 긴 세월 동안 온몸으로 묵묵히 받아 낸, 선명히 아로새겨진 상처와 흉터와 흔적들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암석의 무수한 기공들은 육지 것들이 평화로운 섬에 남긴 아물어지지 않는 상처요 끔찍한 상흔이다. 하지만 모든 빛깔들을 흡수해버리는 그 검은 암석처럼, 그럼에도 우리를 환대하고, 감싸 안고 만다. 수많은 오름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검은 섬의 기백과 인내에 염치없이 기생할 뿐이다. 알량한 죄책감을 품은 채, 이 행운을 슬프게 껴안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비자림
맹렬한 숲의 파도이다. 혼자였으면 얄팍하게 바스락거리고 말았을 그 연약한 소음이, 그 연약한 것들끼리 켜켜이 쌓이고 연대하여 하늘을 물들이고 땅을 적시고선 이내 거대한 파도 소리가 되어 맹렬히 밀려든다.
숲은 제주의 바람에 흔들리고, 우거진 나뭇가지와 잎사귀들 사이사이로 비추는 허연 햇살의 요동은 푸른 파도 위 윤슬처럼 조용히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