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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일 Apr 01. 2020

아이러니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

 우리를 아우르고 있는 거시세계의 모든 운동들은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기술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그 법칙에 따르면, 우리의 삶은 언제나 예측 가능하고 정확한 답을 도출해낼 수 있다. 즉, 우리에게 자유의지란 없다. 하지만 우리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만물들은 가장 기본 단위인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란 것의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돌고 있(다고 표현하)는 전자의 움직임은 고전역학으론 절대 기술될 수 없다. 그렇다면 원자는 자유의지를 지닌 것일까? 그렇다면 원자들의 합으로 이루어진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모든 것들은, 고전역학으로 설명되는 거시세계에 존재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같은 방식으론 기술될 수 없는 미시세계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정말이지 극도로 모호한 경계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서,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아이러니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많은 이들이 곧 당도할 미래 사회를 우려 섞인 기대감으로 바라본다. 머지 않아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 낸 알고리즘에 매몰당할 수도, 우리가 발전시킨 AI의 통제를 받을 수도, 내 자녀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유전자 편집을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애통해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가장 크게 느꼈던 아이러니는, 화성 이주 계획을 세우고, 유전자 편집을 통해 신인류를 창조해 내고, 웜홀을 이용해 우주를 여행하는 것에는 익숙해 하면서 비혼모인  여성이   살림을 하는 것에 대해선 어찌하여 생경하게 여기는 것인가에 대한 마음이었다. 여성, 장애인, 난민과 같은 사회문화적 약자가 겪고 있는 여러 부조리와 만성적인 불합리에 대한 이해와 그에 맞는 개선과 해결이 있지 않는 이상,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인류가 번성한다 한들 그것은 여전히 고름같은 아이러니로 남게 될 뿐이다.


 책에서 다룬 인공지능, 테라포밍, 유사과학, 유전자 편집, 냉동인간 등의 문제들처럼. 현재 우리 인류의 과학 발전 속도는 정말 사건의 지평선을 향해 아찔하게 돌진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 경계에 다가서기 전에, 우리가 놓쳐왔던 것들은 무엇이며 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빛이 지닌 그 따스함을 품은 채 우리의 속도로 세상을 찬찬히 물들여 보자.



2.

 모든 차별과 몰이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사유하는 방식이다, 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도.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걸 알고,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은 지구의 공전 때문이라는 걸 알며, 세상의 모든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또한 알면서도, 이 엄청나고도 위대한 발견들과 지성들을 너무나 당연스럽게 여기면서도 여전히 화학조미료를 사용하는 식당을 기피하고, 비싼 돈을 주고 천연 비누를 구매하며, 양파에게 따뜻한 칭찬의 말을 건넨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볼 때마다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부단히 애쓰시던 어떤 과학자분께서 하신 말이 떠오른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을 때, 그 시기는 인류에게 엄청난 도약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대단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은, 상대성 이론을 대다수의 인류가 이해하게 됐을 때, 모든 사람 대부분이 그 이론을 이해할 수 있게 됐을 때, 그때야말로 인류가 한층 더 진일보할 수 있는, 그런 시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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