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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Mar 18. 2020

다른 사람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친구들 앞에 서는 게 두려워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니 내가 발표를 하기 위해 손을 든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엄마의 든든한 뒷배경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반장이 되어서도 그랬다. 학부모 공개수업 날, 선생님의 배려 아닌 배려로 발표 기회를 얻었건만 나는 멀뚱히 서있음으로 해서 엄마의 얼굴을 붉어지게 만들었다. 엄마는 아직도 종종 나에게 이 얘기를 하신다.


학창 시절 내내 그렇게 쥐 죽은 듯이 보내다 스무 살에 첫 대학에 입학했다. 친목을 위한 자리에서 자기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떨리도록 긴장을 했던 나는 조별 모임에서 발표자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빌었다. 발표 자료를 달달 외워서 가더라도 앞에만 서면 보고 읽는 것도 제대로 못할 게 자명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았는지 발표 역할을 떠맡은 적은 없었다. 게다가 수강신청을 할 때 신청 여부의 최우선 조건이 '발표 없음'이었기에 조별 모임도, 발표할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매수업 시간, 행여나 발표를 시킬까 교수님 눈에 들지 않기 위해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년 간의 긴 공백기를 보냈다. 이땐 사람들과의 관계도 끊고 숨어있었기 때문에 타인과 대화를 나눌 일이 극히 드물었다. 다른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고, 어쩌다 대화를 할 상황이 되면 겨우 입을 떼곤 했다. 그런, 한껏 움츠러든 내 모습이 너무나 싫어 누군가와 얘기 나눌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최대한 고개는 숙이고, 누구의 눈과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사람의 얼굴 대신 발만 보며 다녔다.


그랬던 내가 교대에 입학했다. 그와 동시에 단절되어 있던 인간관계도 다시 시작되었다. 또래 친구들과의 소통도 힘들어했었는데. 이제는 9살 어린 동기들과 소통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발표수업을 피할 수도 없었다. 모든 수업에서 조별과제가 있었고, 개인적으로 수업실연도 해야 했다. 나는 발표 날짜를 정하는 것뿐인데도 손에 땀이 흥건해질 정도로 긴장하곤 했다. 오랜 기간 사람들과의 대면이 없었던 터라 나에게 발표는 해낼 수 없는 과제처럼 느껴졌다. 간혹 용기를 내어보기로 결심하고 수업시간에 손 들고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단지 것만으로도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니 발표는 얼마나 떨리겠는가.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매일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극복해야 했다.


극복할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역시 자신감을 갖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있어. 잘할 수 있어.'를 수십 번, 수백 번 되뇌어도 자신감은 쉬이 붙지 않았다. 불끈불끈 용기가 생기다가도 다시 불안에 떠는 일이 반복되었다. 발표 날짜는 다가오는데 용기는 나지 않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심정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두 가지 선택지 중에 고르는 것이었다. 포기하고 도망가는 것과 어쨌든 준비해보는 것. 그동안 도망만 치며 살았는데. 그래서 후회를 얼마나 많이 하며 살았는데. 더 이상 포기하고 도망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후자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해낼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최대한 덜 떨리게 하기 위해서는 자료 준비가 탄탄하게 되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나에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주리라, 발표를 잘 못하더라도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시간만 나면 자료를 찾아보고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려 머리를 굴렸다. 다이어리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어보며 발표문을 만들었고,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며 발표 자료를 완성해나갔다. 발표문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도 많은 수정의 과정을 거쳤다. 읽고 또 읽으며 어색한 문장이 없는지, 더 좋은 표현은 없는지를 고민했다. 발표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도 고민해서 기록해두기도 했다.


심혈을 기울여 발표 자료와 발표문을 완성하고 나서는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했다.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발표문을 반복해서 읽었다. 너무 떨려 머릿속이 새하얘지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내뱉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에 가서도 작게 소리 내어 외웠고, 시시때때로 머릿속으로 문장을 떠올렸다. 정말 툭 치면 입에서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준비했다. 그리고 발표하기 하루나 이틀 전에는 강의실을 빌려 실전 연습을 했다. 실제로 수업실연 발표할 때 가장 도움이 많이 된 방법이었다.


나는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와 함께 빌린 강의실에서 실제 발표를 하듯이 연습했다. 먼저, 비어있는 의자에 학생들이 앉아있다고 상상했다. 연습하며 중간중간 동선도 짜 보고, 어디에서 호흡을 할지를 정했다. 어떤 동작을 취할지, 목소리의 크기나 높낮이, 빠르기는 어떤지도 체크했다. 동기와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단점을 보완해나가니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연습 막바지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 줄줄줄 나왔다. 이 정도면 틀림없이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발표 날, 그렇게 연습을 했음에도 앞에 서니 무진장 긴장이 되었다. 손이 달달 떨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뒤에 앉은 사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애써 발표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려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보는 사람들의 얼굴도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그 얼굴들을 보니 더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몇 분 되지도 않는 짧은 발표였다. 하지만 나에겐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연습한 것에 반의 반도 안 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는 생각에 많이 아쉬웠다. 조금만 덜 떨었더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 모든 노력들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교수님과 동기들은 나의 발표 자료나 내용에 대해 인정을 해주었고, 학점도 꽤나 잘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수확은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발표하기 두려워 도망만 치던 내가 부딪혀냈다는 사실이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하면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낸 것 같아 뿌듯했다. 하나의 장애물을 뚫어내었으니 다른 것도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도 생겼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이런저런 도전들을 해내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 앞에만 서면 덜덜 떨던 나는 이렇게 극복해나갔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준비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떨리고 긴장될수록 나는 더 많이 준비했고, 더 많이 연습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과제를 있는 힘껏 해결해보는 것. 조금 더 용기를 내어보는 것. 아주 미약하지만 성공을 맛보기도 하는 것. 또는 실패하더라도 바로 도망치지 않고 버텨보는 것. 이 모든 것이 배움의 과정들이었다. 그 과정들을 거치며 나는 성장해나갔고, 그걸 깨닫는 순간들이 기뻤다. 정말 놀라운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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