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나는 왜 그리도 읽고 썼는가

by 꿈샘

"여보야, 오늘도 미모 했어?"


요즘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미모 했냐고.

미모는 미라클모닝의 줄임말이다. 띄엄띄엄 하긴 했지만 나는 2년간 미모를 해왔다. 그동안은 왜 힘들게 새벽에 일어나냐며, 좀 더 자지 사서 고생한다고 얘기하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최근엔 오늘은 미모 했냐며 나의 미모를 챙겨준다. 내가 미모를 하는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면서. 아마 본인 육아휴직이 길어지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내 시간이 필요해서 그래, 라는 내 말에도 크게 공감하는 것 같진 않았던 남편이다. 그런데 요즘 남편은 피곤할 텐데도 매일 밤늦게까지 내 날카로운 눈초리도 모르는 척하며 꾸역꾸역 자기 시간을 보낸다. 그냥 잠자기 바빴던 사람이 말이다. 육아휴직 한지 6개월이 넘어가니 심경에 변화가 온 모양이었다. 이제는 "여보가 '내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했던 말 이해가 돼" 라며 미모까지 챙겨준다.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아 나는 이내 날카로운 눈초리를 거두고 "그래도 일찍 자야 돼." 한 마디로 잔소리를 멈춘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방을 만들어주기도 하던데. 우리 집에는 아이방이 따로 없다. 내 방을 포기하지 못해 아이방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내겐 분리된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공동의 공간, 거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분리되지 않은, 탁 트인 공간에서 집중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방해 요소가 많은 까닭이다.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거실은 확실히 적당한 공간이 아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엄마들에게 나만의 공간을 꼭 마련하기를 권하고 싶다.


아이가 돌 되기 전에는 내 방에서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아이가 낮잠을 자도 아이의 모습을 수시로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 잠자는 방이 훤히 보이는 부엌 식탁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집중하기가 참 힘든 공간이었다. 그래도 그 식탁에서 참 많은 걸 했다. 책도 읽었고, 글도 썼다. 곧 출간될 책의 대부분은 그 식탁 위에서 쓰였다. 그곳에서 1~2시간 몰입해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엄마로서의 삶으로 돌아갔다.

아이를 낳기 전에 보냈던 나만의 시간에 비하면(최소 3시간에서 최대 5시간까지는 꼭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충분히 만족이 되었다. 아이가 낮잠에서 깨면 깨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한달음에 달려가 사랑한다고 속삭여줄 수 있었다.


아이 낳고 80일 정도까지는 혼자 쓸 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스마트폰 하는 데 보냈다. 쇼핑앱을 들락날락했고, 맘카페 글을 정독했다. 차라리 잠이라도 잤다면 피로가 풀리기라도 하지. 작은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정신을 빼앗기니 피로감은 매일 쌓여만 갔다. 게다가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데 모든 시간을 쏟았다는 생각이 나를 더 지치게 했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면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단단히 붙잡아주는 시간이 필요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허약해지니 이리저리 흔들리기가 쉬웠다. 감정에 휘둘리고,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며 육아에서도, 내 삶에서도 이방인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분명 내 기준과 철학이 필요하건만 나는 쉽게 흔들렸다. 이를 증명하듯 집안은 온갖 물건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난 불안해지면 뭔가를 자꾸 사들이곤 했다.

생각할 여유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지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내 시간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만큼 나도 성장하고 싶었다. 그저 스마트폰이나 붙잡고 있는 내 모습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육아서가 아닌 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책들을 읽었다. 아니타 무르자니, 오프라 윈프리의 책, 그리고 고전문학을 읽었다. 때때로 아기띠를 하고 집안을 걸으며 책을 읽기도 했고,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읽었다. 아이가 낮잠을 자면 글을 썼고, 내가 깨어 있는 순간마다 기록을 하려 노력했다. 에버노트에, 노트에, 심지어는 음성 녹음 앱까지 써가며. 어쩌면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매일이었지만 나는 지치지 않았다. 나와 소통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나는 육아도, 내 삶도 놓치지 않았다. 이전보다 잠자는 시간은 줄었지만 책을 읽고 기록하는 순간들이 행복했다. 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볕에 졸다가도 무릎 위에 놓인 책이 마음에 걸려 금세 잠에서 깨곤 했다.


지금은 복직해서 일도 하고 있다. 확실히 작년보다 해야 할 일이 늘었고 그래서 하루가 아주 바삐 돌아간다.

그래도 나는 나만의 시간을 확보한다. 새벽에, 혹은 잠들기 한 시간 전이라도. 틈새시간은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브런치 글 한 편 쓰기 위해 몇 번을 멈췄다 쓴다. 시간 날 때 틈틈이 쓰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도 이틀 동안 쓰고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래서 성질 급한 내가 참기 어려울 정도로 결과물이 느리게 완성되더라도 내 것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냈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좋다. 글 한편 발행하고, 책을 몇 페이지 읽고,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필사를 하고. 이런 일들을 하며 한 번씩 소름 돋게 행복함을 느낄 때 내 삶이 살아 숨 쉬는 걸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놓을 수 없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나만의 시간. 나는 이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나를 성장시키고, 내 아이를 성장시킬 거라 믿는다. 그걸 확신하기에 더 포기할 수가 없다.


오늘도 글을 썼고, <깊이에의 강요> 몇 페이지를 읽었고,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집 중 글 한 편을 낭독했다. 아, 필사도 했다. 띄엄띄엄이라도 충실히 내 시간을 보냈다.

내일은 오늘 못한 미모를 하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더 오래, 몰입해서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이 글도 여기에서 마쳐야겠다.

내일의 또 다른 나만의 시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