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억을 더 끄집어내려고 해 봤다. 상처를 다 꺼내 펼쳐놓고 하나씩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눈을 뜨고 있으면 주변 사물에 정신을 빼앗길까 눈도 감은 차였다.
그러자 먼저, 항상 떠오르던 것들만 떠올랐다. 일곱 살 이후에 겪었던 일들. 베란다 창문 창살에 매달려 엄마를 부르며 울었던 일곱 살의 기억이 가장 어린 시절의, 남아있는 기억이었다. 그 이후에 겪은 일들은 수시로 떠올려본 것들이어서 조금은 담담하게(?) 꺼내놓았다. 그러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사건들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기억이 너무 조각나서 연결되지 않았던 지점들을 연결시켜보기로 한 것.
그러자 묻혀 있던 장면이 드러났다. 나에겐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나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감춰두었구나 싶은 기억들. 그 장면을 떠올리자마자 나는 순식간에 수치심과 분노를느끼게 되었다.
왜 엄마는 그렇게 조그만 아이였던, 내 머리채를 잡고 머리를 벽에 찧었을까.
내가 그런 벌을 받을 만큼 잘못했던 걸까.
한참을 분노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던 나는 기어이 눈물샘을 터트렸다. 울어도 울어도 속은 시원해지지 않았다.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아 결국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 3주간 다른 기억들을 떠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마음의 저항감이 커서인지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아마 불안감을 느낀 것도 같다. 지금, 엄마와의 사이도 그리 나쁘지 않은데. 지난번 새로운 상처를 들춰내고 난 뒤 엄마와의 소통이 쉽지 않았는데. 더 들춰도 괜찮을까. 그런 생각들 때문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7살 이전의 기억은 통째로 사라져 있었고,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도 일부분만 남은 채였다. 나머지 기억은 더듬거릴 지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다는 것은 슬프지만 기억이 아예 나지 않는다는 것은 참 당혹스러운 일이다. 슬퍼할 것도, 기뻐할 것도 없는, 어떤 한 기간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듯 떠올릴 만한 사건이 좀처럼 없는 것만큼 당황스러운 일이 있을까. 내 삶의 절반이 흔적도 남지 않은 듯한 느낌은 유쾌하지 않다. 일기라도 적었더라면. 기록으로 남아있는 기억이 내 삶을 증명해줄 텐데. 그것이 비록 괴로운 일일지라도 말이다.
지금은 남아 있는 기억들을 닳도록 꺼내보아 그런지 많이 편안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상처가 나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약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줄 수 있고, 내가 이 상처를 다룰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사라진 기억이 되돌아올는지는 모르겠다. 내 삶을 더 찾고 싶은 욕구가 채워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에서 만족하련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삶을 놓치지 않고 챙기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떠오르면 떠오른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너무 얽매여 지금을 살지 못하면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