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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Sep 11. 2020

어쩌다 참교사

신혼여행을 방학에 갔더니 참교사가 되었다

첫 번째 기간제 교사 생활을 하던 도중, 결혼식을 올렸다. 6월 3일. 아직 더위가 완전히 찾아들지 않아 딱 좋은 날이었다. 반 아이들에게는 함구하고 있다가 결혼식 끝나고, 이틀 뒤에 슬쩍 알렸다. 자기 초대해주지 그랬냐며 잉잉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속으로 빙긋 웃었다. 그건 안 될 말이지.


결혼식을 치르고 5일간 특별휴가를 쓸 수 있었다. 이때 보통 신혼여행을 간다. 하지만 나는 결혼식 이틀 뒤, 출근을 했다. 신혼여행을 여름 방학에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요일에 결혼식 마친 뒤, 아쉬운 대로 가까운 여수로 가 1박만 하고 돌아왔다.


학교에 출근한 나를 보며 선생님들은 놀라 똑같은 질문들을 하셨다.


"왜 신혼여행 바로 안 갔어요?"


"6개월만 있을 테고 2학기엔 선생님도 바뀔 텐데 제 휴가 때문에 또 다른 선생님 오시라 하기 좀 그래서요."


대다수 선생님은 "아..." 하며 지나가셨지만 한 선생님은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지셨다.


"혹시 기간제라 눈치 보여서 그래요?"


빙고.


'그래. 특별휴가는 권리니까 괜히 눈치 보지 말자. 그냥 쓰면 되지.'라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으로만 그쳤다. 도저히 입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기간제 계약 직후부터 3월까지 내내 고민했지만 결론은 '여름 방학 때 가자.'였다.


온전히 한 학기를 책임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고작 6개월 기간제인데 특별휴가까지 쓰려니 눈치 보여서 못 쓴 게 더 컸다. 이대로라면 큰 맘먹고 특별휴가 썼더라도 맘 편히 즐기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평생 한 번 갈 신혼여행인데 맘은 편하게 가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 소식도 늦게 알렸다. 어차피 휴가도 안 쓸 건데 굳이 일찍 말할 필요는 없겠지 싶었다.


결혼식 한 달 남았을 때였나. 결혼한다고 언제 장감님께 말씀드리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학년 부장님이 우리 반에 오셔서는  교감 선생님이 나를 엄청 칭찬했다고 전해 주셨다.  


"아니. 내가 교감선생님 하고 이야기하다가 자기 결혼식 얘기를 했는데 교감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는 거야. 자기 결혼하냐면서. 그래서 6월 3일에 결혼한다고 했더니 그럼 강사를 구해야 하냐며 걱정하시더라고. 그래서 신혼여행을 여름 방학 때 가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더니 요즘도 이런 선생님이 있냐고 하시면서 참 괜찮은 선생님이라고 어찌나 칭찬을 하시던지."


이 얘기를 들으니 역시 방학에 가기로 한 결정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바로 갔다면 속 편히 못 갔을 터였다. 내 성격상.

이후 교무실에 찾아가 결혼 소식을 전하며 칭찬을 한 번 더 들었고, 결혼식 후 교장실에 인사차 갔을 때는 '참교사'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방학 기간 비행기 값이 더 비싼 걸 보고 신혼여행 기간도 줄였는데. 짧은 여행이 아쉬워 후회하는 마음도 들었고.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난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게 맘이 더 편했으니까.


권리를 포기한 일로 참교사가 되었지만 그 당시 내가 정교사였다면 나는 고민 한 번 안 하고 결정했을 것이다. 아마 칭찬 일색에도 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건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교사가 된 지금 권리를 잘 찾으며 지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이다. 권리를 잘 찾는 것도 나에겐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권리와 혜택은 누리며 고 싶다. 앞에서 선배가 길 잘 닦아 놓아야 후배들이 자기 권리 찾을 수 있다는 한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요즘 유독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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