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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Sep 08. 2020

나는 더 잘할 줄 알았지

후회와 자책으로 보내던 하루하루

개선장군이라도 된 양 시작했지만 점차 나는 패잔병이 되어갔다.


학창 시절에 만난 선생님들이 싫었다. 직간접적인 폭력 상황에 노출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르침도 형편없는, 그래서 배울 거라곤 1도 없는 미성숙한 어른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나는 참 오만하게도 이런 처참한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구원하겠다는 다짐으로 교사의 꿈을 꾸었다. 아무리 못해도 이 선생님들보단 잘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교직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매일 내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시험하는 나날이었다. 교실도 관계의 공간인지라. 복잡다단한 사람들이 하나 둘도 아닌, 서른 명 가까이 되다 보니 복잡하지만 최선의 선택을 요구하는 문제에 자주 직면했다.


유독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 거리는 여자아이 둘이 있었다. 둘은 친한 친구가 마땅히 없었다. 서로 친구가 되어주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둘은 정말 마음이 1도 맞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번갈아가며 나에게 와 서로를 탓하는 말을 해댔다. 그 탓에 나는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좋게 타이르며 말하기도 하고, 방과 후에 긴 시간 상담도 했다(이 둘과의 상담시간은 유독 길었다). 하지만 서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를 해도 자리로 되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앞으로 튀어나오곤 했다. 조금 과장해서 수업이 아예 진행되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출근 전부터 이 둘이 오늘 또 얼마나 싸워댈까 싶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속된 싸움에 어른 싸움까지 번질 판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수는 생각나지 않았다. 회유와 반협박을 번갈아가며 하루하루 버티 듯이 지냈다.


둘이 눈만 마주쳐도 내 신경이 곤두섰다. 또 서로에 대해 뭐라고 탓하며 내 신경을 긁을까 불안했다. 그래, 불안했다는 말이 딱 맞다. 나는 점점 둘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듣지 않게 되었고, 유독 이 둘에게 신경질적으로 굴었다. 내 인내심은 금세 바닥이 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이런 내 상태를 알아차리고 있었고, 후회와 자책을 떠안고 하루를 마감하곤 했다. 내가 결코 되고 싶지 않았던 교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날 알아차리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잘할 수 있다고, 아이의 마음을 잘 보듬어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하며 시작했건만. 매일 반성하며 찝찝하게 보내다니. 첫 기간제 교사로 지낸 1학기 내내, 나는 성악설과 성선설 사이에서 고민했고 권력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정말 나는 잘할 줄 알았는데. 내 근거 없는 자신감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그래서 나는 내 문제와 직면하게 되었다. 나의 취약점과 그 근원에 대해.


그때 가장 무서웠던 건 아이들이 내 말투와 행동을 닮아가는 것이었다. 신경질적인 말투로 내게 말할 때면 흠칫했는데 그럼에도 신경질적으로 말하지 말라고 충고한 내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곤 했다. 난 정말 미성숙한 어른이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본보기로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자 무서웠다. 이때 내가 아이를 낳아도 될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지금은 이전보다 많이 겸손해졌다. 많이 내려놓고 낮아지려 노력 중이다.

아직도 아이들 사이에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봐주는 건 정말로 어렵다. 많이 기다려야 하고, 기대를 놓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취약점을 들여다보고 관리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전히, 매일 반성하는 삶을 산다. 이런.


그래도 나아지겠지. 시도하고 노력하다 보면 성인군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른다운 나는 되겠지 싶다.


그때 그 두 아이는 지금 어떻게 자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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