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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Sep 06. 2020

오전에 있었던 일이 기억 안 나요

말도 많고 일도 많은 작은 교실 속, 내 머릿속의 지우개

아침에 뭐했었지?


아이들 하교시키고 잠시 숨 돌리다 학급일지를 적으려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뭔갈 적으려던 내 손은 멈췄다. 내가 뭘 쓰려고 했더라?


아침에 내가 뭘 했었지? 무슨 일이 있긴 있었는데 그게 무슨 일이었지?


집중에 집중을 해야 겨우 생각이 날 정도라니(그것도 디테일하지도 못한 기억만 간신히).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동료 선생님께 웃음기 가득 담아 이야기했더니 격하게 공감하신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안심이 되면서도 씁쓸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데 걱정도 됐다. 이러다 하루긴 통째로 기억에서 사라지면 어쩌나 싶어서.


교사가 되고 나서 알았다. 교사에게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이다. 특히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는 더더욱. 그리고 그런 날은 매일 일어나니 그냥 뭐든 무조건 적어두는 게 내 신상에도 이롭다는 걸 교사 생활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틈틈이 기록하겠노라, 오후에는 오전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니 오전에 있었던 일은 오전에 쓰겠노라 결심했다. 하지만 결심은 결심으로 끝이 났다.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었다. 우리 2학년 꼬꼬맹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선생님, 쟤가요.

선생님, 제가 어제요.

선생님, 저는요.

선생님 저 여기가 아파요.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얘들아! 선생님은 한 명이란다. 이렇게 여럿이 동시에 말하면 선생님이 알아듣겠니? 한 사람씩!


이렇게 매 쉬는 시간, 한꺼번에 내게 쏟아진 정보와 사건들 덕에 나는 어제의 이야기가 오늘 이야기처럼, 오늘 이야기가 어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특히 오늘 일이 일주일 전 일처럼 느껴지는 날엔 내가 몇 년은 폭삭 늙은 것만 같았다. 아... 투머치다.


그래도 솔직하게든 과장해서든 자기 얘기를 해줘서 감사하긴 했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선생님에게 말을 아낀다던데. 우리 꼬꼬맹이들이 T.M.I이긴 지만 조금만 관찰을 하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아이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1학기 학부모 상담을 하는 도중, 어머! 우리 애에 대해 많이 아시네요, 어깨가 올라오는 말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일은 터지지 않는 편이 좋았다. 아이들은 나만큼이나 경험한 일을 곧잘 잊어버렸다. 원인뿐만 아니라 결과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소리하기 바빴으니. 그럴 땐  찝찝하게 결론을 내리고는 했다.


내 머릿속에 지우개를 만드는 건 아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오전 출근 전부터 날아오는 메신저 쪽지들. 이들은 정말 나를 괴롭게 했다.

수업 중에도 수시로 날아오는 쪽지들은 오늘까지, 혹은 언제까지 무얼 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지만 난 그 친절한 안내도 따라잡지 못해 많은 일을 놓치곤 했다. 폐 끼치기 싫어하는 내겐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스무 명이 훌쩍 넘는 아이들 챙기랴, 업무 챙기랴, 수시로 날아오는 쪽지 챙기랴 내 정신은 더 아득해져 갔다. 어느 것 하나 몰입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자꾸만 놓치는 일이 생기자 이 일에 회의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을 타박하는 날이 늘어갔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애써 말하기도 힘든 날도 생겼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조급하게 하지 말자 다시 다짐하고, 더 쉽고 편하게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닥치는 대로 활용했다. 사진도 찍고, 녹음도 하고. 기억 장치를 하나씩 발견하고, 활용법을 배워가며 새어나가는 기억의 틈을 메우려 노력했다.

그래도 여전히 놓치는 것들이 많다. 오후에 아이들 보내고 오전의 일을 더듬어보다 또 잊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내 탓만 할 수도 없고. 그저 더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머리를 돌려보는 수밖에. 연차가 쌓이면 해결되는 부분도 생기리라 낙관하며 기다릴 수밖에.


그런데 정말 좋아지는 거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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