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바라던 교사가 되었다
기간제 교사였지만, 그래도
확실치는 않았지만 내 등수로 예측해 보건대 나는 빨라도 1년 뒤에 정식 발령을 받을 터였다.
1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기간제 교사를 하거나 아니면 1년 간 여행 다니며 준비 기간을 가지거나. 이제 곧 가정을 이룬다고 생각하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빚지고 시작하게 되었으니 나에게 고민거리도 되지 않았다. 무조건 기간제 교사가 되어야 했다.
2월, 매일 도교육청 사이트 새로고침을 눌러 대며 인력풀을 눈이 빠지게 쳐다봤다. 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기껏 올라온 구인공고는 차로 1~2시간 걸리는 거리의 학교에서 올라온 것이었다. 대중교통이 편리한 수도권과는 달리 버스 밖에 이용할 수 없는 이 지역에 있는 한 지원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진주 지역 내 구인공고가 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옆동네 사천까지는 가보리라 생각하며 구인광고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지원을 할 수는 없었다. 면접 기간이 딱 임용 합격자, 신규 교원 연수가 예정되어 있는 그 기간이었다. 임용 등수에 따라 연수 일정도 달리 나온 터였다. 시험을 조금만 더 잘 보았더라면 지원할 수 있었을 텐데! 입 안이 썼다. 에라이.
3월부터 근무하는 기간제 교사가 되려면 하루라도 빨리 계약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월 말이 가까워오는 만큼 기간제 자리를 구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에 초조해졌다. 마침 3월에 입주하는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의 구인광고를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면접날이 딱 연수기간 중에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력서를 준비해 직접 교무실로 찾아가 보았지만 면접날 참석할 수 없다면 서류 합격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만 듣고 나와야 했다. 시험 조금만 더 잘 볼 걸. 에라이. 결국 이력서를 고스란히 들고 터덜터덜 되돌아왔다.
그렇게 불안, 초조하게 하루하루 보내다(합격자의 여유라든지, 기쁨은 느껴보지도 못하고ㅜㅜ) 연수를 받으러 창원으로 갔다.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찝찝함을 안고.
연수 기간 내내 도교육청 사이트를 들락날락했다. 지원서 내러 갈 수도 없으면서 그렇게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러다 연수가 끝날 즈음, 한 초등학교 구인광고를 보게 되었다. 위치도 딱이고, 계약 기간도 딱이었다. 1년은 아니지만 6개월이라도 어디냐!
지원서는 연수 끝나고 제출하면 되었고, 면접은 없었다.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학교였다. 반드시 이 학교 기간제 교사가 되리라! 생각했다.
연수 마치고 지원서를 다시 정성스레 써서(구구절절 내 이야기도 풀으며) 학교에 제출했다. 교문을 들어서고 나서며 얼마나 설레던지. 매일 이곳을 지나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학교로부터 문자가 왔다. 합격했으니 서류 챙겨서 학교에 방문하라는 문자였다. 구구절절 지원서를 쓴 게 통한 걸까. 두근두근 대는 가슴을 전정시키며, 예비 시아버지의 차를 얻어 타고(기분이 좋으셨는지 데려다주신다고 하셨다) 학교로 갔다. 따스한 교무실에 앉아 그보다 더 따스해 보이는 교감선생님의 환영 인사를 들으며 계약을 확정 지었다. 2학년이나 5학년 담임을 맡게 될 거라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뭐든 좋다는 생각을 하며 그저 감사하다고 답했다.
며칠 뒤 2학년 담임을 맡아주면 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3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식 출근 전, 학교에 들러 반과 업무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교실을 보니 이제 정말 교사로서의 삶이 시작되는구나 실감이 됐다. 그런데 2학년은 뭘 배우더라?
미리 뭐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지도서를 집에 챙겨 왔다. 그리고 유독 휑하게 보이던 뒷 게시판을 채우고 싶어 온갖 만들기 재료를 사 왔다. 꽃도 만들고(예비 시아버지와 예비 신랑의 손도 빌려 가며) 아이들 이름표, 시간표도 만들었다. 지도서 보며 어떻게 수업할지 고민하고, 게시판 꾸밀 준비도 하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설렘 반, 긴장 반으로 며칠을 보내다 드디어 아이들과 대면하는 날이 되었다. 그 전날, 밤을 꼬박 새웠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이제 막 운전을 시작한 초보 운전자인지라 학교 주차장에서 차 주차하는 데에도 애먹었지만 그런 것쯤은 상관없었다. 내가 그토록 기대하고 바랐던 교사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날이었으니까.
아직도 그 첫날의 기억, 느꼈던 감정들이 또렷이 기억난다.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있어 공기는 차가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던 그 기억. 긴장과 설렘으로 얼굴마저 달아올랐던, 그 벅찬 감정.
그렇게 나는 (기간제) 교사가 되었다. 간절했던 만큼 크나큰 행복을 느끼며. 나는 교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