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마음을 알아채고 바꿔보려 시도하죠. 하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때가 더 많아요. 그럴 때면 더 많이 가라앉습니다. 저는 이걸 두고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고 표현하는데요. 가끔은 땅 속으로 파고들다 못해 맨틀 외핵 내핵까지 파고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나는 왜 이러는가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남자들 동굴에 들어간다고 하잖아요?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다 어떤 해석을 하나 이끌어냈지요.
그건 '감정을 표현할 줄 몰라서'였습니다.
특히, 마음이 힘들거나 슬플 때 그런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힘겨움을 표출하기보다 최대한 드러내지 않게끔 길러지잖아요? 감정을 표현하는 건 미성숙한 사람처럼 느껴지게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 되어야만 잘 살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 있는 거죠.
그렇게 표현해내지 못한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터뜨리지 못하는 거예요. 그건 정말 외롭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이걸 터뜨려도 공감받지 못할 거라는, 오히려 우스운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깔린 거거든요.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들어갑니다. 동굴에.
혼자 땅 파고 굴 파고 지내다 나아져서 나오면 좋으련만. 굳어버린 감정의 살만 더 두꺼워져서 나옵니다. 그렇다고 내 마음이 더 단단해지는 것도 아니예요. 힘듦의 수위가 경고단계에 올라오면 또 들어갑니다. 평상시엔 그 수위가 차오를 때까지 그저 버팁니다. 평상시엔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있다가 갑자기 동굴로 들어가는 꼴이죠. 그러니 주변 사람들은 벙쪄요. 대체 얘가 왜 이러나 싶은 거죠. 그 사이사이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아서 그래요. 주변인들은 내가 힘들었는지 어땠는지 알 턱이 없지요. 아주 민감한 사람은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요.
아무튼 이런 식으로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또 묻어요. 아, 물론 동굴에 들어가고 나서야 사람들은 압니다. 얘 기분이 안 좋구나 하고요. 그럼 도와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저입니다. 동굴에서, 땅 속에서 빨리 나가고 싶어하지 않아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나가기가 창피해요. 내가 못난이 같이 느껴지거든요. 그럴 땐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지기도 해요. 그런데 그게 어렵거든요. 감정을 표출하려는 제가 유치해보이고... 복잡해요. 그래서 더 가라앉습니다. 마음이 더 가라앉아요. 이런 제가 싫어지는 지경에 이르니까요.
결국 이 문제의 해결점은 오롯이 나에게 달려있더군요. 감정을 표현하게 만드는 것도, 땅 속에서 나오는 것도 그러겠다는 내 의지가 작동하지 않으면 어찌할 방도가 없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계발했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할 줄 아는 능력을요.
지금 네 감정은 어때?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어?
뭘 하면 내 기분이 풀릴까?
내 하루가 이렇게 끝나도 괜찮아?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더군요. 그 누구보다 가장 내 편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내가 나에게 신경쓰고 있다고 말해주니까요. 타인에 의해 촉발된 가라앉은 마음이라고 해도 결국 내 마음을 회복시킬 수 있는 이는 '나'밖에 없더라고요.
질문하며 산 덕분에 감정을 조금씩이라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정표현을 조금이라도 할 줄 알게 된 덕분에 저는 더 사람답게 살게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울고 싶으면 엉엉 울고, 화내고 싶으면 소리도 지르고. 그래도 기분이 안 풀리면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기도 하면서요.
하루의 기분이지만 이 하루도 여러 날이 되면 내 인생인데 땅만 파다 끝나면 너무 아깝잖아요.
수도 없이 반복되는 감정의 파도를 타고 오늘도 살겠지만 이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의 마음이 내 몫임을 잊지 않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