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는 일본대사관에서 열리는 일본 문부성 장학생 초청 간친회에 물류센터 직원이 왜 가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는 유학생 모임과는 상관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H는 대사관 앞에서 눈에 띄지 않게 J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J는 모든 손님이 가고 난 후 1시간여 있다가 나왔다. 봐 두었던 자동차 번호판이 J의 차임을 알고 뒤따랐다.
J는 물류 센터로 향했다. H는 물류 센터 안까지 들어갈 수는 없었다. 자동차를 물류 센터 담장에 두고 담을 넘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도면에서 봤었던 물류센터 사무실로 잠입했다.
조심스레 복도를 지나다 사무실로 접근하는데 갑자기 J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어이! 친구, 그냥 당당하게 여기로 오시게”
H는 흠칫 놀랐다. 그러나 그는 물류센터에 설치된 동작감지센서에 의해서 침입자가 있음을 J가 인지했고 CCTV의 화면으로 H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것을 J의 사무실로 가서야 알았다.
H와 J는 물류센터 사무실에서 대면했다. 사무실은 단순했다. 서너 개의 책상과 그 위에 컴퓨터가 있는 일반 사무실이었다. 두 사람은 사무실 한 켠에 있는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았다. J는 일본차를 우려내어 H에게 권했다.
“나는 일본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N의류회사에 스카우트되어 한국지점으로 왔어.”
H는 J의 인사 같은 자기소개에 신사적으로 대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너의 뒷조사를 위해서 고용된 심부름센터 직원이다.”
“그래?”
J는 H에게 복싱용 글러브를 던졌다. 그러면서 J는 사무실 책상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자신의 글러브를 꼈다.
J는 글러브를 끼고 있는 H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주먹을 날렸다. H는 피할 새도 없이 뒤로 넘어졌다. H는 일어나서 맞받아 응수했다. 그렇게 J와 H는 10여 분을 치고받고 싸웠다. 두 사람은 지쳤다. 서로 몇 발자국 떨어져 바닥에 앉은 채로 J는 H를 보고 싱긋 웃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일본의 정보 수집은 이스라엘에 견준다. 너의 정체도 알고 있어. 입구에 들어섰을 때 안면 인식으로 컴퓨터로 조회해서 너의 신분과 대략적인 신상을 파악했어.”
J의 말에서 H는 싸움보다 같은 업종에서 가질 수 있는 서로 간의 우애가 느껴졌다.
그러면서 J는 나보고 조용히 나가라는 몸짓으로 그리고 두 손으로 문을 가리켰다.
H는 일어서서 나가면서 옆에 있던 책상 위의 서류 파일을 하나 집어서 옷 속에 구겨 넣었다. J는 글러브를 벗는 중이어서 H의 동작을 보지 못했다.
J는 걸어 나가는 H를 물류센터 문 밖까지 뒤따르며 말했다.
“한국이 독립한 줄 알지. 그러나 정치와 사회는 일본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인들만 모르고 있지. 마치 동남아시아의 경제가 일본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처럼 말이야.”
아무리 디지털 세상이지만 아날로그 없이 세상이 돌아가리라는 것은 착각이고 오판이다.
서비스 산업에서 고급이 될수록 직접 사람이 한다. 일본식 식당의 오마카세가 그렇고 영국 왕실의 근위대가 말을 타고 보초를 서는 것이 그렇다. 오마카세에서 로봇이 서빙을 한다면 비싼 돈을 지불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영국 왕실 정문에서 로봇이 보초를 서고 출입객들을 맞이한다면 뭔가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아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것이다.
컴퓨터나 인공위성, 소형 탐지 로봇은 첩보 활동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하는데 꼭 필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사람이 직접 현장을 답습하고 부딪히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첩보전이다.
결국 H는 J와 서로 맞닥뜨림으로써 서로의 실체를 파악한 셈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