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전기자동차 충전기 설치

by 천동원


아파트에 전기자동차 충전기를 설치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법과 제도는 이미 앞서가 있다. 총세대수의 2% 이상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고, 정부는 설치비의 상당 부분을 보조해 준다. 친환경 정책의 일환이고,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는 현실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주민설명회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하다”, “언젠가는 해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단 하나였다.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였다.



충전기를 자기 동 가까이에 설치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면, 곧바로 반대 의견이 터져 나왔다.



“화재 나면 누가 책임집니까?”


“아이들이 오가는데 위험하지 않나요?”


“전자기파는 검증된 겁니까?”



다른 동에 설치하자는 제안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거나,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동의가 뒤따랐다. 그렇게 논의는 매번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파트대표자회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몇 차례나 안건을 보류했다. 의무 사항이라는 점, 정부 지원이 있다는 점, 설치를 미루면 결국 비용 부담이 더 커진다는 점을 알면서도 누구도 먼저 손을 들지 않았다. 모두가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모두가 자기 앞마당은 피하고 싶어 했다.




회의를 지켜보며 마음이 묘하게 불편해졌다. 누군가의 반대 발언이 특별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화재에 대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는 전자기파에 대한 걱정도 이해가 갔다. ‘혹시 모를 위험’은 언제나 사람을 설득하는 가장 강력한 논리였다.



그러나 그 걱정이 자기 동 앞에서만 유독 커지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필요하다는 말과 반대한다는 말이 동시에 존재하는 풍경은 낯설지 않았지만, 여전히 부끄러웠다.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일인데, 왜 늘 남의 일이 되어야 할까.’



회의실에 흐르는 침묵은 합리적인 토론의 결과라기보다는, 책임을 미루는 공기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나는 찬성하지만, 우리 동은 안 됩니다.”


화재 발생과 함께 전자기파를 위험 요소로 인식하고 모두 반대만 하였다.


이 말이 반복될수록 공동주택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졌다. 각자의 불안은 진심이었지만, 그 진심들이 모여 공동의 결정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또한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문제가 있었다. 현재 아파트 단지 내에 구획 확정된 주차용 구획선을 변경하거나 새로 구획을 정하려면 구청 공동주택관리과에 문의를 하여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관리소장의 말이 있었다.


이상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주차구획선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하는 변경 사항에 대해서 구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공유면적의 이용 변경 문제 때문이라 생각되었지만 더 이상의 물음은 덮어 두기로 하였다.



생각해 보면 전기차 충전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쓰레기 분리수거장, 어린이 놀이터, 경비실, 심지어 소방차 진입로까지. 우리 아파트가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누군가는 불편함을 감수했을 것이다.



님비현상은 이기심이라는 말로 쉽게 재단되지만, 실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변화가 내 삶의 반경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합리보다 감정에 먼저 반응한다. 안전을 말하지만, 그 안전이 공동의 것이 아니라 개인의 울타리 안에서만 정의될 때 문제는 시작된다.



전기차 충전기는 결국 설치될 것이다. 법이 그러하고, 시대가 그러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불안을 이유로 계속 미루는 공동체인지, 정보를 충분히 공유하고 위험을 관리하며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인지를 우리는 선택하게 된다.



대표자회의가 난감해하는 이유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다.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외면하고 있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나는 무엇을 양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전기차 충전기 앞에서 드러난 님비의 민낯은 부끄럽지만, 동시에 우리들을 성찰하게 만든다. 나만 혹은 내 집만 아니면 된다는 아파트는 공동 주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