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영업배상 책임보험

by 천동원


비가 흩뿌리던 어느 날, 아파트 정문 입구의 장애인 휠체어 출입 경사로에서 한 어르신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비에 젖은 바닥은 눈에 띄게 번들거렸고, 경사로 특유의 기울기는 발을 내딛는 순간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어르신은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엉덩이에 심한 멍이 들었고, 며칠 동안 앉고 일어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 사고가 개인의 부주의만으로 치부되기보다는, 아파트 공용 공간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라는 점에 주목했다. 주변에서 “아파트에는 영업배상 책임보험이 들어 있어서 이런 인사 사고는 보험 처리가 된다”는 말을 들은 것도 그 이유였다.



어르신은 아파트대표자회의의 동대표자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동대표자는 관리사무소에 보험 적용 여부를 문의하도록 안내했다.



관리사무소의 답변은 명확했다. 아파트에 가입된 영업배상 책임보험은 놀이터, 노인회관 등 특정 공용시설물에서 해당 시설을 이용하다가 발생한 사고에 한해서만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입구의 장애인 휠체어 출입 경사로는 공용 공간이기는 하지만, 보험 약관상 보장 대상으로 명시된 시설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결국 이번 사고는 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어르신은 더 이상의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다면 비 오는 날 미끄러운 경사로에서 넘어져도 개인 책임이냐”는 말만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디까지가 공동의 책임이고 어디부터가 개인의 책임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장애인 휠체어 출입 경사로는 이름 그대로,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노인과 장애인, 유모차를 끄는 보호자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장소에서 발생한 사고가 보험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이었다.



보험이란 원래 예기치 못한 위험을 공동으로 분담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치다. 그러나 현실 속 보험은 약관이라는 촘촘한 문장들 속에서 사고를 걸러낸다. 놀이터에서는 되고, 경사로에서는 안 되는 기준은 행정적으로는 명확할지 모르지만, 생활의 감각으로는 어딘가 어색하다. 넘어져 멍이 든 어르신의 몸에는 ‘공용시설물 여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르신이 더 따지지 않고 번거로운 절차와 모호한 책임의 경계 앞에서, 개인은 결국 조용히 물러났다.



이 사건은 단순한 미끄럼 사고가 아니라, 공동주택이라는 공간이 가진 책임의 구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아파트는 수백, 수천 명이 함께 사는 작은 사회다. 그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 대표자회의와 관리사무소가 있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보험도 가입한다. 그러나 그 모든 장치가 실제 생활과 밀접하게 감싸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장애인 휠체어 출입 경사로는 ‘있어야 할 시설’이 아니라 ‘반드시 안전해야 할 시설’이다. 특히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미끄럼 방지 조치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관리와 점검이 충분했는지 되묻게 된다. 보험 적용 여부와 별개로, 사고를 예방하려는 관리 주체의 책임은 여전히 남는다.



또한 이 일은 보험이 해결책이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망일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공동체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례를 계기로 약관의 범위를 재검토하고, 실제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공간을 보장 대상에 포함시키려는 논의가 필요하다.



언젠가 나 역시 비 오는 날 그 경사로를 지나가면서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공동주택의 안전은 특정 조항에 적힌 문장보다,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작은 행위가 쌓일 때, 아파트는 ‘공동의 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가 생각난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단면을 그린 영화였다. 지금의 아파트 생활과 30여 년 전의 아파트 생활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파트는 단순히 벽과 벽이 맞닿아 있는 공간이 아니라, 선택과 책임이 겹쳐 있는 삶의 장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기 좋은 선택은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회피한다.



닭장 같이 획일화된 구조 안에서 사람들의 생각이 정형화되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사라졌다. 아파트 생활의 폐단이다.



‘동네’, ‘마을’이라는 풍경 속에 있었던 골목길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