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니까 괜찮아

거친 미스트랄이 불어올지라도

by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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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분. 아비뇽 TGV 역에 도착했다. 파리에서도 3일이나 머물렀지만 매일 에펠탑 을 보고 바게트를 사먹으며 감탄한것 말고는 딱히 한일이 없다. 그저 빨리 프로방스 로 가고싶은 마음뿐. 다시 프로방스에 간다는 설렘으로 기차에서의 두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어디를 가고싶고 뭘 먹고싶고 같은 계획같은건 없었다. 그저 프로방스. 프로방스에 온것만으로도 난 충분하니까.


출구로 나오는데 저 먼 발치에 도미니크 일것만 같은 할아버지 한분이 서계신다.덩 치도 좋고 우락부락한 인상, 내가 제멋대로 상상하던 백발의 포근하고 동그라운 프 로방스 노인의 느낌과는 조금 달라서 살짝 긴장했지만 뭐 나도 그저 부드러운 인상 은 아니니까. 하고는 살짝 주춤거리며 다가가니 그 주위에 혼자 있는 동양여자는 나 뿐이어서인지 그도 바로 다가왔다. 그리곤 ‘tu es eunhye?’ 하고 물었다.


‘oui’


하고 대답하니 프로방스에 온걸 환영한다며 반갑게 볼 키스를 하고는 자신의 차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짐을 실어주었다. 우린 차를 타고 도미니크의 집이 있는 까바이 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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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키가 큰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산들산들 바람에 흔들리고 낮은 키 의 연녹색 올리브 나무들이 즐비한 프로방스의 도로. 호리호리하게 날씬한 나무들이 바람에 살랑 거리는게 예쁘다고 말하는 내게 ‘너 가 아직 프로방스의 미스트랄을 모르는구나. 사자같이 강한 미스트랄을 만나면 저 나무들도 힘없는 동물처럼 푹 꺾어져 주저앉아 버리고 말지.’ 하고 장난어린 눈으로 겁을주고는 이런 미스트랄 바람이 불어오면 강할땐 정말 무서우니 집에서 나오지 말라는 당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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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랄은 남프랑스의 론강을 따라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고 건조한 바람으로 이 지역 에서 부는 특유의 바람인데 불어오기시작하면 100여일이 계속되기도 한단다. 난 피터메일의 나의프로방스란 책에서 미리 접해 이 바람의 존재에 대해 알고있었는데 여기 써있는 글을 보면 이 미스트랄을 견디기 위해 집의 벽을 1미터가까이 두껍게 세운 다고 했다.


‘그 바람이 그렇게 쎄요?’ 아무리 그래도 이 할아버지 난 오늘 여행 첫날이라 막 설레일 참인데 미스트랄가지고 너무 극단적이네. “바람이 쎄봤자 바람이잖아요.” 했더니 ‘그럼 허리케인이 그냥 바람이냐’ 하고 한술 더 뜨는 도미니크의 대답에 난 뭐라 달리 할말이 없어 ‘여긴 평화로운 프로방스니까 괜찮아 요’ 라고 해버렸다.


‘여긴 평화로운 프로방스니까 괜찮아 요’


내 대답이 재밌었는지 껄껄하고 웃어버리곤 덧붙여 “아무리 시골이라고 해도 혼자 다니 면 위험하니 꼭 남자들을 조심하고 외진 곳으로는 다니지 마”하며 계속 프로방스에서 마주 칠 수 있는 위험한 상황들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데도 난 아랑곳하지않고 마냥 신이났다.

한국이었다면 지레 겁을 먹고도 남았겠지만, 2년동안 그리워하던 이곳과 마주한 지금 나에게 걱정과 두려움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여긴 프로방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