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연기 책임은 배우에게만 있지 않다
소위 드라마가 잘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삼박자가 고루 맞아야 한다고 말한다. 감독의 연출, 배우의 연기, 작가의 대본. 개인적으로 위 문장에 완벽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만약 세 가지 요소 중에 가장 핵심인 걸 딱 하나만 뽑으라고 한다면, 고민 없이 ‘연기’를 택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두 가지 요소가 아무리 뛰어나도 완벽하게 망칠 수 있고, 반대로 대본과 연출이 그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이다. 심폐소생이 불가능한 대본은 배우 송강호 씨가 와도 살리지 못할 것이다) 배우의 연기는 적나라하게 시각적으로 드러나므로, 시청자들 반응 역시 빨리 나타나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시청자들에게 가장 화제의 인물이 된 배우(?)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MBC <신입사관 구해령>에서 ‘이림 대군’ 역을 맡은 차은우 씨다. 현재 네이버 포털사이트에 ‘차은우’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연관검색어가 ‘차은우 발연기’이니, 얼마나 뜨거운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직접 <신입사관 구해령>을 보고, 그의 연기에 대해 수식어를 붙여 보자면 ‘활자 연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차은우 씨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대본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을지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10살짜리 꼬마 친구에게 “행복한 표정 지어 봐, 놀란 표정 한 번 해볼래?”라고 주문하면 그에 맞는 표정을 짓는 것과 같다. 즉, 단 한 번도 ‘이림 대군’으로 보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언제나 영상 속엔 한복 입은 ‘차은우’만 존재할 뿐이다. 놀라는 차은우, 웃는 차은우, 우는 차은우, 화난 차은우 등등… 그가 출연했던 전작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그나마 나았던 이유는 그가 연기했던 캐릭터가 ‘도경석’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도경석이란 인물은 늘 까칠한, 표현을 할 줄 모르는 얼굴 천재이다. 그러므로 시종일관 비슷한 표정을 지어도 상관없었다. 게다가 외모에서 싱크로율이 꽤나 잘 맞으니 그럭저럭 괜찮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신입사관 구해령>은 다르다. ‘이림’은 꽤나 입체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왕자이지만 익명의 연애 소설가이고, 왕인 아버지에게 미움을 받고 있지만 그는 사랑받길 원한다. 이렇게 나름 복잡한 사연을 가진 인물이라면, 어떤 순간에는 능구렁이 같다가도 진지할 땐 진지해야 하며, 허허실실 웃음으로 때우다가도 낯빛에 슬픔이 일렁일 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발연기의 책임을 오롯이 배우 한 사람에게 전가할 수 있을까’ 우선 차은우 씨처럼 본업이 아이돌인 경우 소속사부터 시작하는 게 맞을 것이다. 차은우 씨는 자신이 배우가 되는 것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을까. 본인 스스로 욕심냈을지 아니면 인기와 소속사 등쌀에 떠밀려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배우로 인정받고 있는 배수지 씨 역시 데뷔작인 드라마 <드림하이>를 하기 싫어 울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자, 그렇다면 소속사만 탓하면 되는가. 그 또한 아니다. 과정이야 어쨌든 차은우 씨 캐스팅을 받아들인 건 방송국과 제작사이다. 하물며 차은우 씨 같은 경우에는 이번 작품이 첫 번째가 아니므로, 그의 연기력이 어떤지 몰라서 캐스팅했다는 핑계를 대기도 어렵다. 마지막으로 감독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기는 힘들다. 우리가 안방에서 보는 장면은 감독이 현장에서 디렉팅을 하고, ‘오케이’를 외친 컷이다. 물론 ‘더 나은 연기가 나오지 않겠거니’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어느 현장이든 시간은 곧 돈이니까. 그러나 연출이란 역할 자체가 작품과 관련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리인 만큼 비난 역시 함께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연기력 논란이 있던 아이돌은 한둘이 아니다. 또한 차은우 씨가 마지막일 리도 없다. 분명히 그 후에도 연기력 논란 아이돌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소속사와 방송국, 제작사 등 여러 회사가 추구한 잇속이 맞아떨어진 결과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배우 개인이 홀로 몰매 맞는 상황은 어쩐지 퍽 안타깝다. (물론 발연기의 근원은 배우가 맞다. 연기를 잘했다면 애초에 이런 논란이 생기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가 카메라 앞에 오기까지, 또 TV에 나오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승인’이 있었고, 그렇다면 공평하게 비난도 나눠 갖는 게 맞지 않나. 앞으로 연출은 현장에서 더욱 확실한 디렉션으로 최상의 ‘오케이’ 컷을 만들어내길, 방송사와 제작사는 실력 좋은 배우를 캐스팅하길, 소속사는 연기할 준비가 된 친구에게 정당한 기회를 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비겁하게 특정 인물의 인기에 묻어가기 위해 요령 피우지 말고 모두가 제대로 일했으면 좋겠다. 그런 뚝심이 모여 완성도 높은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믿고 있는 시청자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열심히 지켜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