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가속주의 VS 감속주의
나는 스스로를 특이점 가속주의자라고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왜 가속주의를 지지하는가'에 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이 글은 논리적 완결성을 갖춘 학술적 주장이 아니다. 그럴거면 끝까지 쓰지도 못했을 것 같다. 오히려 나를 소개하는 글에 가깝다.)
AI의 정의를 간단히 빌려 가속주의와 감속주의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AI 가속주의(accelerationism)
AI 기술 발전(연구·개발·배포)을 가능한 한 빠르게 추진해, 그 속도 자체가 사회적 문제 해결과 번영을 앞당긴다고 보는 입장
감속주의(decelerationism): 위험(오작동, 오남용, 권력 집중, 대형 사고 등)을 줄이기 위해 개발·배포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추자는 입장
나는 왜 가속주의를 지지할까에 대해 나름 이유를 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나는 지금 세계가 '비정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부조리나 불합리가 '0'인 사회가 '정상'인 사회인가?에 관해서는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하루 빨리 지금 세계가 붕괴하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나는 현재 세계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브런치에 처음 쓴 글에서도 이야기 했던 바이다.
기존 세계의 프레임에서 카뮈와 니체는 부조리에 저항하거나 부조리마저도 사랑하라고 개인의 극복 방안을 말했다면, 나는 그것 보다는 왜 그 부조리 자체를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가? 하루라도 빨리 그 부조리를 고쳐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쪽의 주장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언제나 급진적으로 이뤄져 왔다. 점진적으로 안전하게, 부작용 없이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자는 주장은 솔직히 말해 탁상공론이라고 생각한다.
2. 세계만 비정상이 아니라 인간도 결함이 심각하다.
레이 커즈와일은 최근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에서 말한 것처럼 결국엔 인간은 AI와 하나가 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포스트휴먼)
나는 세계가 만들어낸 부조리의 꽤 많은 부분은 사실 인간이 나약하고 결함 투성이기 때문에 비롯되는 부분이 있어서 인간도 핫픽스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가 결점이 많고 나약한 인간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인간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에 그다지 적합하게 진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인간 뇌 구조는 호모 사피엔스 초창기 시절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하고, 시간상으로 가장 나중에 발전한 전두엽의 이성적인 사고 능력보다는 원시시대부터 발달한 변연계의 감정이나 본능에 아주 잘 휘둘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인간의 결함이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뇌구조의 결함뿐만 아니라 죽음이 있기에 삶이 아름답다, 늙어가기에 젊음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 역시 극복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혹자는 그런 변화를 겪은 인간도 인간이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인간답다'는 것에 대한 정답은 각자 다르다고 생각한다.
현재도 물리적으로 붙어 있지만 않지, 스마트폰은 사실상 인간 신체의 일부이고 LLM은 인간 지식의 보조 기억 장치로 활용되고 있지 않은가? 반드시 인간이 원래 갖고 태어난 것만 인간다운 것일까?
3. 그렇다면 왜 굳이 그 변화가 '가속'해서 일어나야 하는가?
감속주의는 안전한 AI 정렬을 바탕으로 디스토피아 발생가능성을 최대한 억제하고 인류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AI가 발전할 수 있도록한다는 점에서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AI가 만약 인간을 뛰어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면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양극화를 부추기는 수단의 하나가 될 것이고, 노동대체가 점진적으로 일어난다면 소위 말하는 과도기(전환기)의 문제로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오랫 동안 고통받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현재도 AI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식으로 공포 마케팅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그리고 대체하기 쉬운 작업이나 직업부터 천천히 대체된다면, 마치 대체되지 않은 사람들이 더 우월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만 살아남는 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주장을 펼칠까봐 걱정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누구나 AI의 급진적 발전의 수혜를 누릴 수 있도록 가속해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AI 발전의 물리적 제약이라고 여겨지는 전력인프라나 연산력 확보 문제 조차도 가능하면 빠르게 해결되어 소위 말하는 빠른 이륙(fast take off) 시나리오가 현실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대체를 예시로 들면 광범위한 대체가 아주 빠르게 이뤄져야 기본소득이나 로봇세와 같은 대응책이 사회적으로 논의되기 수월할 것이고 현재와 같이 '고용없는 성장'이 장기화 되어서 생산성은 증가하는데 개인의 삶은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폭발적인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희소성의 의미가 퇴색된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반박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부조리의 안경으로만 바라보기에는 충분히 아름다운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고, 정렬 문제를 등한시 하기에는 잘못된 AI 발전은 비가역적으로 인류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을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속주의를 지지한다. 정렬 문제도 중요시하면서, 모든 것을 변화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하면서 가속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치열한 레이스 도중에도 안전 문제를 걱정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그 문제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며, 어디에 우선 순위를 두드냐의 문제이지 한 쪽을 완전히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니까.
그리고 사실 AI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내가
가속주의를 지지하든 감속주의를 지지하든
현재 AI 업계의 자본지출(CAPEX)과 인재 경쟁, 그리고 미중 간 경쟁의 핵심으로 AI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이미 레이스는 멈출 수 없이 가속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현실의 발전 양상이 어떻게 일어나는 것과 별개로 어떻게, 어디로 가야하는 것이 정답인가 생각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AI는 부조리로 가득 찬, 때로는 너무 화가나는 이 세상을 구원해 줄 구원자이기에 나는 가속주의를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