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가 멈추지 않아도 괜찮아.

현실이든, 시뮬레이션이든

by 프록시마

영화 인셉션에서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이 현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팽이를 사용한다.

여러분은 지금 사는 현실이 만약 시뮬레이션이라면 어떨 거 같은가?

나는 현실이 시뮬레이션이어도 상관없다는 쪽이다.

아니, 차라리 가끔은 버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오히려 킥으로 깨어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현실이란 그런 곳이다. 찬란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하루 두 끼 내지는 세끼 굶지 않으면서 적당히 잘 살고 있으면서도, 무언가 결핍된 느낌이 종종 들었다. 멜이 림보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와서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멜이 현실 대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림보가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나도 가상현실이라도 괜찮으니 내가 살고 싶은 세계에서 살아보고 싶다. 너무 유치한 망상 아니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세계를 인간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기 위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전자 가위로 질병을 치료하고, 인공육을 배양해서 고기를 만들고, 3D 프린터로 원하는 모양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이런 것들이 코브와 멜이 림보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과 나는 매우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삶은 살아내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내가 삶을 살아내는 이유는 시뮬레이션 혹은 시뮬레이션 같은 현실 속에서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도망자라고 하든, 도피라고 부르든 괜찮다. 그게 나니까.)


시뮬레이션 우주 가설이 성립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우리는 어디까지나 신체 기관을 통해 재구성해서 인지하기 때문에, 나는 현실이 정말 현실인지 시뮬레이션인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저 행복하게, 충만하게 삶을 살 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코브가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재회하기 전, 테이블 위에 팽이를 돌려놓고 확인하지 않은 채 아이들에게 달려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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