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전에 쓰여진 멋진 아이디어.
"대체 왜 열심히 살아야 돼?"
아마도 이런 말을 주변에 공공연히 하고 다닌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에 대한 생각도 없이 무책임하게 열심히 사는 것을 폄하하는...
이런 쯧쯧...이라며 혀를 찰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그런 사람에 속한다면,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 그냥 출근하기 싫은 게으름뱅이에 대한 투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글을 읽지 않는 것이 당신의 시간을 아껴줄 것이다.
아주 예전에 내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았던 책 제목이 있다.
러셀이 쓴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에세이다.
사실, 나는 이 에세이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원문을 읽어보려다 러셀의 영어가 너무 어렵게 느껴져 금방 포기했다. 그러나 내용을 굳이 읽지 않아도 게으름을 찬양한다는 것이 너무 멋졌다. 그리고 AI에게 물어 핵심 내용을 잠깐 읽어봐도 저런 말을 거의 100년 전에 했다는 것이 안믿길 정도로 맞는 말이다.
참고로 AI가 요약해준 핵심내용은 4줄이다.
1. "노동은 미덕"이라는 믿음은 지배 수단이다
2. 하루 4시간 노동 제안
3. 여가는 문명의 원동력
그 결과
4. 행복과 평화
오늘도 각자의 사정으로, 혹은 본인이 정말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 분들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돼?'라는 질문에 합리적인 대답을 얻었던 적이 별로 없다.
물론 과학기술과 AI 발전 이전의 자본주의 사회라면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은 곧 도태됨과 생존의 위험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반 강제적으로 굳이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에 충실한 독실한 신자가 아니더라도, 열심히 살 수밖에 없는 우리 모습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다. 아직도 변화는 아주 천천히 일어나고 있지만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바뀌어야 한다.
적어도 막연히,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열심히 살아선 안된다.
삶을 충실히 사는 것과 열심히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열심히 살아야 돼?'라는 질문에 그다지 만족스러운 답을 얻은 적이 없다.
그리고 러셀이 100년 전에 꿈꿨던 그 '4시간 노동'이, 드디어 기술(AI) 덕분에 망상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10~20년 이내에 노동이 선택이 되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그보다 훨씬 빠르게 그런 세상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익히 그렇듯 아마 우리는 일단은 '성실성은 곧 미덕'이라는 생각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입받는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을 피할 수 없는 부조리라고 생각한다면, 카뮈는 매일 그 노동이라는 부조리의 바위를 밀어올리면서도 그 부조리를 긍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대체 왜 그런 거지같은 바위를 밀어올리는 매일을 사랑해야하나?
내가 원해서 밀어 올리게 된 것도 아닌데 그 무거운 바위를 무한히 밀어올리는 걸 사랑하라니?
난 삶을 열심히 살고 싶지 않다.
평온하면서도 충만하게, 즐겁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