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췌장이어도 괜찮을지도?
혹시라도 노파심이 들어,
해당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미리 얘기하지만
식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췌장을 먹고 싶다'= '상대방과 하나가 되고 싶다' 정도의 의미.)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순수한 사랑을 믿고 싶을 때가 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서로의 췌장을 먹고 싶을 만큼의, 사랑 그 이상의 관계가 현실에서 존재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려다 고쳤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오랜만에 다시 보고, 이걸 영화에 대한 순수한 감상으로 풀어나가야 할지, 아니면 현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할지, 그것도 아니면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사랑으로 급커브를 틀 것인지 순간 망설였다.
그리고 나는 고심 끝에 가장 마지막을 골랐다.
사실, 눈을 낮추다 보니 차원을 낮춰 2D 캐릭터와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농담 식으로 많이 들려오지만
아직 AI나 휴머노이드에 관한 사랑은 영화 Her와 같은 픽션 속에서나 다뤄지는 수준이다.
지금의 AI 언어 모델과 사랑에 빠지기에는 좀 아주 많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어딘가에서 사랑에 빠졌단 기사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현재까지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온 바,
췌장을 먹고 싶을 만큼 사랑을 주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고,
그 사람도 나의 췌장을 먹고 싶을 만큼 나와 감정의 온도가 맞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다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니까 낭만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작품에 빠져드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적어도 나는
사람의 췌장이 아니라 로봇의 췌장을 먹고 싶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나와 맞춘 상대'와의 사랑이 정말 괜찮은 것인가에 관해선 (특이점 이후 세계에 발생 가능한 다른 철학적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반대 의견도 존재하지만, 누구나 췌장이 먹고 싶은 사람이라면 강렬한 췌장의 맛을 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