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는 내게 쓰레기였다.

by 프록시마

(시작에 앞서, 순수하게 아래의 내용은 개인적인 감상평에 가까운 주관적 의견이며 글쓴이는 철학이나 과학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부조리를 느꼈기에 카뮈를 읽었지만, 카뮈는 내게 쓰레기였다.

사회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평범한 사람이 누리고 있는 생활 수준도 비약적으로 상승하였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한없이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세상이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부조리'에 주목하여 이를 바탕으로 『시지프 신화』와 『이방인』을 쓴 카뮈에게 오래전부터 흥미가 있었다.


먼저 『이방인』을 읽고 든 생각은 '뭐 이런 개떡 같은 스토리가 다 있나'는 것이었다. 물론 『이방인』이라는 소설이 사실주의 소설이 아님을 감안하더라도, 태양 빛 때문에 사람을 죽여놓고 이걸 부조리에 저항하는 개인이라고 생각하라니.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일종의 철학적 소설이라고 간주하더라도 반드시 뫼르소의 그 사이코패스 같은 면모들을 통해서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게 최선이었을까 싶다.


누군가는 뫼르소의 살인 동기보다 그 이후 재판 과정에서 사회가 강요하는 '도덕적 언어'에 협조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주제'를 위해 인간성과 개연성을 삭제해 버린 작위적인 설정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했다. 카뮈가 극단적이고 황당한 내용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애초에 소설의 목표였다면 성공했다고 인정해야겠지만, 나에게 그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기계'일지는 몰라도 진정한 인간의 드라마는 아니었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뫼르소를 통해서는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시지프 신화』를 읽어보기로 했다. 이쪽은 문제가 더 심각했다. 문장이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철학이라고 해서 어렵거나 복잡한 문장, 수사학적 표현으로 도배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카뮈의 글은 정확히 그런 식이었다.


게다가 그는 본인이 정확히 어떤 의미로 부조리를 사용하고 있는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모호한 표현으로 부조리를 논한다고 느껴졌다. 카뮈는 인간은 세상을 이해하고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우주(세계)는 어떠한 답도 주지 않고 침묵한다며 이 관계를 '부조리'라고 표현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과학(이성)도 세계에 대한 명확한 의미를 줄 수 없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한다.


당시 시대상을 감안해야겠지만, 이미 상대성 이론도 나온 이후의 시대에 살던 사람이 본인의 인지적 한계는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는 과학이 '어떻게(How)'는 설명해도 '왜(Why)'는 설명하지 못한다고 카뮈를 변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 끊임없이 이 세계를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과 그 진전이 '부조리'의 영역을 좁혀가고 있다고 믿는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으로 인해 우리는 우주와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지금도 많은 학자가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카뮈가 말한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의존(철학적 자살)'을 비판하면서도, 본인 역시 본인의 무지를 '세계의 본질적 침묵'으로 단정 지은 것은 오만해 보이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동의할 수 없었던 지점은 이것이다. 애초에 왜 세계가 인간에게 도덕적·실존적 의미까지 알려줘야 하는가? 세계가 나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부조리'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우주가 인간에게 대답할 의무가 있다는 거대한 착각 혹은 인간 중심적인 오만함에서 비롯된 투정 아닐까? 자연은 원래 가치를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다. 우주는 그저 물리 법칙에 따라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인간이 거기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고 해서 그 관계를 '말이 안 되는 상황(부조리)'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수사학적 과장일 뿐이다.


결국 내가 느낀 세상의 부조리와 카뮈가 말하는 형이상학적 부조리는 거리가 멀었다. 사회 공통적 기준을 개인에게 강요하는 현실적인 부조리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가도, 결국엔 우주의 침묵이라는 모호한 결론으로 도망가는 글의 전개 방식은 끔찍했다. 나 같은 범인에게는 그저 공허한 수사학의 잔치로 보였고, 결국 나는 『시지프 신화』를 절반도 읽지 못한 채 하차했다.


개인적으로 철학자들의 원문이 전부 이런 식이라면 나는 다시는 원문을 읽고 싶지 않다. 그의 부조리 철학을 요약한 내용을 보아도 그 극복 방법이 전혀 와닿지 않는다. 우주는 우리에게 의미를 답해줄 의무가 없고, 우리는 그 무의미한 물리 법칙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으면 그만이다. 굳이 바위를 굴리며 '행복하다'라고 자기 최면을 걸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현실의 부조리는 카뮈와 다르게 AI와 기술 발전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글은 카뮈의 논리를 잘 모르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가 설계한 '부조리'라는 게임의 규칙 자체를 거부한다는 의미로 작성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욕심을 버리기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