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버리기엔

세상이 너무 아름답다.

by 프록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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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나는 오래전 도쿄 스카이트리 꼭대기에서 바라보았던 야경을 떠올리곤 한다. 예상을 못해서였을까. 당시 스마트폰으로 담은 사진엔 노이즈로 가득하지만, 직접 본 그 아름다움과 도시의 광활함에서 오는 경이로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상은 보기에 따라선 환멸로 가득 찬 곳이기도,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곳이기도 하다. 현자들의 가르침을 듣고 있노라면, 번뇌와 욕망을 내려놓고 세상과 나의 존재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살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내가 본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하고 마천루위에 올라가야만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나의 경우는 평안 대신 욕심을 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산 정상에 올라가거나 공원을 거닐며 누릴 수 있는 대가 없는 아름다움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누구나 무료로 누릴 수 있는 것들에는 한계가 있다. 범위의 한계뿐만 아니라 반복에서 오는 한계. 그리고 그것들만 감상하기엔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로, 소비하기 좋은 것들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우리는 그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지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지 '간접적으로' 너무 잘 느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쉽지가 않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지만, 모든 것을 경험하고 싶다. 아마도 우주의 한 점으로 태어나 작은 선으로 살다가는 이 작은 존재가 계속해서 욕망과 싸우는 이유가 이 때문이리라. 언제나 그렇듯, 답은 모르겠다. 누군가는 반드시 비용을 치르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들로도 충분한 만족과 평안을 얻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대체로 '구매 가능한' 것들로부터만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를 포함한 우리는 공기의 소중함을 깨닫기 어려운 것처럼, 후자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꼭 어느 쪽이 바람직한가를 따져보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최대한 많은 사람이 세상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한계가 안타까울 뿐.


그래도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방에서 해외를 가보고, 콘서트를 즐기고, 사소한 것들까지도 전부 '맛볼 수는 있으니까.' 아니다. 괴로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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