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잔인하면서도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말은 다음과 같다.
결국, 우리를 구원해 줄 사람은 우리 자신뿐이다.
나는 예전부터 주로 혼자 지내거나 소수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선호하는 성격이었다. 그렇다고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말한 것처럼 대단히 사회적인 사람은 아니었고, 결국엔 지나고 보면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쪽이 마음이 편하기도 했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남을 굳이 설득해서 같이 하는 것보다는 그냥 혼자 해버리는 게 편한 사람이었다.
고독이나 고립감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분업과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기에 충분하고, 온라인을 통해 모두와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우리는 어느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고독보다 좀 더 부정적 뉘앙스를 담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으로만 말하면, 담배나 술 보다도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 그래서 나 자신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서라도 고독을 어떻게 다룰까는 내가 꽤 자주 생각하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자주 생각한다고 해서 더 빠르게 깨달음이나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다. 인생은 혼자라는 건 결국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 가깝다. 부정하고 싶은데, 딱히 부정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대단한 깨달음이나 번뜩이는 방법론이 있어서 글을 쓰게 된 것은 아니다. 그저 자다가 추위에 잠이 깨었는데, 막상 감각적 추위만큼이나 정서적 고독도 차갑게 느껴져 그 감정에 대해 쓰고 있을 뿐이다. 애초에 이 문제를 놓고 씨름하던 그 수많은 위대한 철학자와 사상가들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범인인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우습지 않은가.
그리고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는 것 자체가 일종의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사회에서, 혹은 주변에 나 너무 외롭다고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개인적인 공간에 백번이고 천 번이고 외로움이나 고독에 관해 다룬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겠는가.
또한, 불필요하게 타인과 강하게 연결되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에 비해 글을 쓰는 것은 타자가 나의 글을 몇 줄이라도 읽을 '가능성'을 상상하며 쓰는 것이기에 나에게 있어서는 고독을 즐기고 이를 활용하기에 아주 좋은 행위이다.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내가 글을 쓰는 이유로 빠져버렸다. 사실 긍정적 의미로 고독은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칫하면 고독이 끊임없는 외로움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에 고독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고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고독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관한 생각을 넘어서, 사실 나는 홀로 있을 때 종종 올라오는 이 이상한 정체 모를 부정적 감정은 일종의 버그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버그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에서 강한 괴로움을 느껴야 할 이유도 없다. 또 타인과의 연결에서 구원을 찾으려다 오히려 상처 입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라도 인간의 이 아리송한 고독과 연결감의 문제는 미래에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극복해야 할 하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