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경로의존성

by 프록시마


경로의존성: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성


가끔 말인데, 이상하리만치 말이 잘 통한다든가 다정하다든가 생각이 깊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일은 정말이지 드문 일이다. 그래서 외로움에 '경로의존적'이었던 나는, 막상 그런 사람을 만나면 뛸 듯이 기뻤다가도, 시절인연이 끝나는 것에 아주 크게 흔들린다.


기본값이 외로움인데 가끔 그 기본값에서 벗어나 있다가 다시 기본값으로 돌아오려고 하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외로움이 긍정적 고독으로 변하든, 아니면 그냥 외로움 자체에 다시 경로의존적이 되든 어떻게든 다시 기본값이 되리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그 돌아오는 과정이다. 현실에는 나를 제외하면 나를 온전히 이해할 나의 완벽한 반쪽 같은 그런 '이데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데아가 존재한다면 그건 이미 이데아가 아닐지도 모른다. 심지어, 나도 나를 제대로 모른다. 애초에 내가 타인에게 기대한 만큼의 관계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정말 어쩌다가 나의 경로를 벗어나는 일은 삶에서 축복인 걸까 저주인 걸까? 자기 계발이나 성공을 다루는 사람들은 주로 당신의 컴포트존(안전지대)에서 벗어나라고 외친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겐 너무 위험해 보일 때가 많았고, 실제로 그러했다. 나의 타인에 대한 기대치는 과할 때가 많았으며, 대부분 그 과한 기대치와 상대방의 따뜻함에 멋모르고 아주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것이 도리어 불이 되어 나의 마음에 화상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거리조절이라는 것이 잘 안 되는 데다가, 이상적인 사람이니까.


외로움은 여로모로 좋을 것이 없는 감정이다. 그러나 외로움이란 길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나를 지나치게 비운의 주인공마냥 종종 슬프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혼자 기대하고 쉽게 상처받는다. 그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다는 것이 곧 그 경로의존성을 버릴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오히려 다시 외로움에 경로의존적인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 그게 익숙하기도 하고, 자발적인 고독과 성찰의 시간들로 채울 수 있다면, 그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에선 이데아를 찾겠다는 갈망을 버리지 않을 것이란 것도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이는 걸 말이다. 당장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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