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열정대학에서 진로수업을 할 때 빙고게임을 자주 했습니다. 대신 숫자가 아닌 직업을 적게 했어요.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문제가 생기는 날이 많았습니다. 25개 칸을 다 채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아는 직업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렇다면, “대한민국에는 과연 몇 개의 직업이 있을까요?”
2020년 한국직업사전 기준, 우리나라 직업 수는 12,823개, 직업명은 16,891개에 달합니다.
인생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찾는 과정’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세상에는 1만 6천 가지 음식이 있는데 우리는 먹어본 음식이 아닌 아는 음식조차 25개가 안되는 상황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찾고 있는 셈입니다. 이 상황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어려운 건 당연합니다. 다양한 선택지를 알고 경험해 볼 기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는 말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경험 안에는 답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고등학생 때 문과나 이과를 선택하며 선택할 수 있는 분야가 반으로 줄고, 취업과 동시에 특정 분야와 직무에 갇히게 됩니다. 3년 정도 지나 경력자가 되면 분야와 직무를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집니다.
어느 순간부터 낯선 분야는 “나랑 안 맞을 것 같고”, 새로운 일은 “지금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됩니다. 어릴적 하고 싶은 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은 희미해지고, ‘진짜 인생은 퇴근 후부터’라고 타협하게 됩니다.
그나마 소수의 사람들은 제한된 정보와 경험 안에서 답을 찾지만 대부분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첫째, 손님의 기억으로 하고 싶은 일을 정합니다.
보통은 취미를 하고 싶은 일로 확장하려 합니다. “서핑과 캠핑을 좋아해 일로 삼고 싶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은 ‘생산’ 개념으로 ‘소비’ 경험으로만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하고 싶은 일은 ‘소비 경험’이 아닌 ‘생산하는 과정’이 의미있고 즐거워야합니다.
가장 흔한 착각이 ‘카페 창업’입니다. 햇살이 환하게 비추는 일요일 오후, 테라스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여유 있게 책을 읽는 카페 사장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이는 ‘손님’의 경험입니다. 카페를 하고 싶다면 하루 종일 좁은 바 안에서 수백 잔의 커피를 내리고, 여러 손님을 상대해야 합니다. 이 과정이 즐거울 때, 카페 창업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됩니다.
둘째,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하고 싶은 일을 정합니다.
많은 분들이 창업, 유튜버, 작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어느 정도는 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일의 방식인 ‘수단’에 가깝습니다.
핵심은 ‘어떤 분야에서,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라는 목적입니다. 목적이 분명해지면 수단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수단보다 먼저, 평생을 걸쳐 해결하고 싶은 ‘나만의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셋째, 다수가 하는 것, 유명한 것에서만 하고 싶은 일을 정합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처럼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영역은 진입 장벽이 낮습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성공을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쉽게 찾은 아이템은 남들도 쉽게 흉내냅니다.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어렵게 발견한 ‘나만의 틈새’가 장기적으로는 훨씬 안전한 기회가 됩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직장 생활에 치여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하고 은퇴를 맞이합니다. 내 것이 없으니 남이 만든 시스템인 프랜차이즈에 기대게 됩니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다양한 경험, 그 중에서도 생산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대체로 새로운 경험을 향한 의지는 줄어들고, 전문성을 쌓을 시간적 여유도 부족해집니다. 사람은 본 적 없는 세계를 욕망할 수 없고,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다양한 생산 경험이 쌓일 때, 진정한 하고 싶은 일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