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9-22-월
남편은 전업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예술가이다.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는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학원을 하고 있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순수? 예술활동 보다는 예술활동을 접목한 일종의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 후, 2~3년이 지난 후, 남편은 전업 작가 활동을 선언하고, 그림만 그리기 시작했다. 우리 두 사람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 한 가정의 출신이라, 우리 스스로 경제적 안정을 만들어가야 했다. 신랑이 전업 작가 활동을 시작한 곳은 사는 집에서 가까운 빌라의 반지하 집이었다. 방 하나, 아주 작은 부엌 공간과 욕실 공간이 있었던 곳이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기까지, 그곳에서 개인 작업과 지금 살고 있는 지역구기반의 미술 협회 활동을 하며 지냈다. 지금의 작업실로 옮긴지는 10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지금의 작업실로 옮긴 후는 일반인 대상의 취미 미술을 가르치는 일도 병행했다.
남편도 전업 작가 활동 선언 이후, 화가로서 자신의 그림 정체성, 시그니처(Signature),을 창조 또는 발전해 오는 시간 동안 시행 착오와 크고 작은 변화들을 겪어 왔다. 그림 주제, 그림 속 물체(object), 배경, 사용하는 색상, 표현 방법 등, 변화를 계속해 온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자신 작품의 대표 주제, '그림은 그리움이다'의 자연과 어우려진 완행버스, 작품들을 꾸준히 그려 오고 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기 전에는 이런 창조, 단순한 정의로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작업, 활동에 대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한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주로 결과물만 보는 나로서는 솔직히 그림 한 작품 그리는 것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다양한 인간 관계속에서 큰 갈등 없이, 결과물을 만들고, 그것으로 평가 받는 회사일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인간은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당연한 생각일 수도 있다.
꾸준히 글을 써 보겠다고 마음먹고 어떻게든 하나씩 길지 않은 글이라도 쓰고 있는 요즘,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떤 수준의 창조이든 쉽지 않기 때문이다. 뭐든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머리로, 말로 이해하는 수준이지, 마음으로 진심으로 공감하기는 한계가 분명 있다.는 것을 직접 느끼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역지사지'를 몸으로 체화했으니, 앞으로 세상 살이의 다른 일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겠지? 나를 믿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