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5-수
간만에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볼 수 있는 하루였다. 아이들과 부산 여행을 하고 서울에 돌아온 이후, 서울의 날씨는 비 내림, 흐림으로 계속 되었던 것 같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내 마음을 한껏 가볍게 해 주어 기분이 좋았다.
오늘 아침에는 스터디카페 대신에 남편의 작업실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남편이 알려 준 작업실 스마트키의 암호로 문을 열었는데, 열리지가 않았다. 몇 번 더 시도했다. 역시나 작동되지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이 철장문의 아귀가 맞지 않아 안 열릴 수 있으니, 문을 좀 더 밀고, 암호를 눌러 보라고 했다. 몇 번 더 시도했는데, 같은 결과였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문 열렸어요?"
"아니요."
남편은 내가 기계공학과 출신이지만, 자신보다 기계를 잘 못 다루는 것에 대해 농담반, 진담반 나를 놀린다. 오늘도 그런 분위기가 전화기를 통해 느껴졌다.
즐겁게 충실하게 하루살이를 추구하겠다고 다짐한 나는 쉼호흡을 몇 번 했다. 다행히 작업실 밖에도 의자가 있어, 앉아서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최악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심하고, 가장 나쁜 상황을 생각해봤다. 남편이 오기까지 2시간 정도를 작업실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다른 대안들도 많았다. 가까운 커피숍에서 따뜻한 라떼를 한 잔 마시면서, 멍 때리기나 e-book을 읽을 수도 있고, 남편의 작업실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할 수도 있고, 주변의 스터디카페에서 2시간 이용권을 이용해서 본격 하루 루틴을 시작할 수도 있고. 남편 작업실 옆에는 성당이 있다. 그곳에서 조용히 묵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시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살짝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문은 열었어요?"
"아니요."
남편의 멋적은 웃음소리와 침묵이 잠시 흘렀다.
"내가 마지막 특수문자를 잘 못 알려줘네. 흐흐"
다시 알려준 특수문자로 스마트키를 눌렀다. "띠~리~리" 찰칵 문이 열렸다. 아귀가 맞지 않아, 문을 더 밀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오늘의 하루 루틴이 시작 되었다. 아이구야!
남편은 성인대상 취미 미술반을 운영하다 1년 정도 쉬었다. 안식년 겸 작업에 집중하겠다는 마음으로 쉰 것이다. 다시 취미 미술반을 시작하기 위해 작업실을 추석 연휴 전에 몇 일에 걸쳐 정리를 했다. 현재는 작업실이 많이 넓어 보이는 상태이다. 서양화 전업작가이다 보니 작업실에는 항상 오일 냄새가 어느정도 난다. 후각이 민감하면서도 가장 빨리 둔해지다 보니 금방 괜찮아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냄새를 희석 시키기 위해 나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오늘 같이 간만에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까지 볼 수 있는 날씨라서 더욱이나 창문을 열고 싶었다. 차들이 지나가면 조금 시끄럽기는 하지만, 집중하면 들리지 않기도 한다.
오늘 아침의 에피소드 덕분에 점심 때 남편이 도시락 대신에 맛난 점심을 사 주었다. 맛있게 잘 먹었다. 기분 나쁠 뻔한 하루였지만, 즐거운 하루살이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