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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베이지 Dec 21. 2016

이십대의 취업난과 구급일지.

'짠'하고 사라진 친구에게.









이 글은 3개월 전에 작성된 글입니다.

시의성이 있는 내용을 포함하므로 당시엔 제보요청 등의 우려가 있어,

시간이 적당히 지난 후에 글을 퇴고하여 올립니다.







1.

  실종자 수색 출동을 다녀왔다. 최초 신고자는 해안가에서 신발 한짝과 숄더백을 발견하고 신고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요구조자가 바다로 뛰어들어가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건 아니라고 했다. 신고내용을 접수받을 당시만 해도 워낙 근거가 부실했기에, 대부분은 허탕만 치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렇게 여느 실종자 수색처럼 어영부영 마무리 될 줄 알았으나 소지품에서 심상쩍은 단서들이 발견된다.







2.

  프로파일링이라기엔 소지품이 가리키는 지침이 너무도 명확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성분명이나 처방내역이 기재되지 않은 전형적인 우울증 제제, 얼마 읽혀지지 못하고 덮인 자기계발서 한 권 (제목은 '짠 하고 싶은 날에' 라고 합니다 저는 읽지 못한 책입니다), 그리고 유서 대신 발견된 종이 한 장과 휴대전화에 저장된 단 하나의 연락처. 아, 자살이다.






3.

  유서 대신 발견된 노트에는 제빵 요리사 자격증을 비롯해, 취업 관련 정보가 손글씨로 빼곡히 쓰여 있었다. (대형 포털에서 '취업'이란 키워드를 검색한 모양입니다.) 2년 동안 수많은 사체들을 봐왔지만 유서 대신 발견된 종이 한장이 오히려 더 섬뜩하게 다가왔던 건 왜일까.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는 단 하나 뿐이었다. 놀라운 건 이 역시 애인이나 엑스보이프렌드가 아니라, 취업문제로 얘기를 나누던 보호자였던 것. 이걸로 대략적인 아웃라인이 나왔다. 분류는 자살 사건. 원인은 취업난으로 인한 개인의 우울.






4.

  백일이라는 기간이 작금의 내겐 자주 활용되는 단위가 되었다. 꼭 희망고문처럼, 백일만 지나면, 또 백일만 지나면, 그렇게 허들을 하나 둘 넘다보니 전역도 백일이 남았다. 백일이라는 시간은 쓰는 사람에 따라, 혹은 함께 쓰는 사람에 따라, 놓여진 상황에 따라 그 속도가 천차만별이다. 연애의 단위로도 종종 사용되는 백일은 누군가에겐 결혼을 다짐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결혼을 단념하게 만드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언갈 손꼽아 기다리고 애써 견디며 소일하는 백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었다.
  




  
5.

  끝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끝'같은 건 항상 개운치 못한 부분이 있군요. 졸업도, 헤어짐도, 입시도, 100여일을 앞둔 전역도 마찬가지다. 기다려지는 끝도, 끝나기만을 바라게 되는 끝도 있지만, 어디서 오게 된 끝이건, 정작 닥쳐오면 철썩거리는 겨울바다 앞에 선 기분이 된다.


  오늘은 다른 곳에서 절실했던 누군가의 끝 앞에 가만히 선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달라진 것도 하나 없는 이 세상에 내가 대신 야속해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마지막까지 사회의 지침을 읽어보려 최선을 다했던, 제빵요리 자격증같은 걸 끄적거렸던 마음 앞에서 우린 얼마나 더 무너져야 했던가.


  동년배였다. 하루를 간격으로 같은 곳을 찾아온 내 또래 친구는, 여기서 끝을 앞두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가 어쩌면, 어딘가에서 잠깐이라도 이 야속한 세상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더라면.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단 한사람만 내 편이 있으면 그걸로 우리는 버티고 마니까. 하지만 하루 늦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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