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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베이지 Feb 02. 2018

[서평]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에밀 시오랑

나의 아이돌 입덕기; 절망의 끝에서


 


▲ Emil M. Cioran  (1911 - 1995)







1.


내게도 아이돌이 있다. 그 이름하여 '에밀 시오랑!'


랑스 계 유명 보이그룹의 리드보컬..은 물론 아니고 루마니아 출신의 철학자다. 사실, 아이돌(idol)의 어원은 '우상'을 의미하는 영어다. 그런 의미에서 20대의 절반을 절망으로 보내던 내게 '에밀 시오랑'은 기꺼이 나의 '아이돌'이 되어주었다.



소녀가 아니라서 미안해요 시오랑 씨!







2.


힘이 필요한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처럼 파괴적인 게 있을까. 힘을 내라는 말들은 어느 아웃복서가 링 주위를 돌며 던져대는 잽처럼, 내 체력을 빼놓았다. 지칠대로 지친 내가 항복의 의미로  흰 수건을 던지려던 그 때, 나는 나의 아이돌을 만났다.


시오랑은 내게 힘을 내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스러워 하라고, 절망하라고 얘기해주었다. 나는 긍정을 얘기하는 수많은 문장들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을 도리어 시오랑의 참담한 문장들에서 느꼈다.








3.


에밀 시오랑은 잠시 철학 교사직을 맡았던 것 외에 평생 한번도 직업을 가져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당시의 프랑스 대통령 관저와 직통 전화로 연결되었던 유일한 철학자였다. 그는 이미 스물 두 살 때 이렇게 얘기했다. "인생은 나를 짓밟고 억눌렀으며, 내가 누릴 수도 있었을 기쁨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슬플 때, 신나는 음악이나 코미디 영화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론, 슬플 땐 라디오의 슬픈 사연이, 혹은 슬픈 영화나 음악이, 나의 슬픔과 같은 진동수로 공명하며 우리를 달래주기도 한다. 내가 절망의 심연 속으로 침잠해갈 때, 나를 건져 올릴 것은 긍정의 힘이 아니었다. 오히려 폭발하고, 침몰하고, 분해되고 싶다던 에밀 시오랑의 문장들이었다.









4.


세상은 얘기했다. 모든 고통과 시련은 의미가 있다고. 거기에 대고 에밀 시오랑은 시원하게 일갈한다. 인간들은 어떻게 '고통의 목적'과 같은 허튼 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마지막으로 나와 같이 절망이라는 터널 속에서 헤매는 이들을 위해, 그의 말을 덧붙인다.


"내 뒤에 태어날 사람들을 위해 여기서 선언한다. 지상에서 믿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구원은 망각 속에 있다. 기댈 곳도 필요없고 격려도 동정도 필요없다. 아무것도 알고싶지 않다. 모른다는 사실조차 알고싶지 않다. 그 많은 문제, 토론, 격앙은 무엇 때문인가. 철학과 사고를 멈추라!"







▲ <절망의 끝에서>,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 에밀 시오랑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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