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들은 흐릿해진다.
선을 이루는 점들마저 모호해진다.
그 순간, 그 존재를 아는 이는 더 이상 없어진다.
때로는 서로 대립하는 것들이 한 줄기 흐름이 되고, 진실은 거짓이 되며,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과거 속에 머물기도 한다.
만약, 한 사람의 인생이 하나의 선으로 표현되고, 그 궤적이 시간 순서대로 이어진다고 상상해 보면, 세상은 그런 무수한 선들로 뒤덮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선들은 얽혀 거대한 그물을 이루고, 한 사람의 이야기는 거대한 이야기 속에 속하게 될 것이다. 개인의 행동들은 그 그물의 영향을 받고, 개개인 역시 그 그물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개개인의 선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도미노처럼, 하나의 조각이 빠지는 것만으로도 전체 이야기는 바뀌어버린다. 한 줄이 사라졌을 때의 영향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세상이 지나치게 복잡해진 지금, 우리의 선이 흐릿해졌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선 자체는 것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형태도 같고, 동일한 속도로, 방향만 바꿔가며 이어질 뿐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변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점’들은 파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서히 그것을 예전과 같은 온전한 선으로 해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삶은 다시 일상처럼 흘러간다.
결국, 정답은 없다. 너무나 많은 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답에 순응하고, 그것을 진리라 믿는다.
사실 그것은 도시화·세계화된 이 시대에,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스스로 경계 짓고자 하는 생존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답'을 따라야 할까? 아무도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우리는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하며, 있는 그대로 살아갈 뿐이다.
삶은 언제나 계속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