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의 마음을 데우던 잡채
2017년 가을, 먼 나라 프랑스에서 온 마농(Manon)과 함께 살게 되었다.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살기 시작한 마농은, 내가 하우스메이트를 구하고 있던 차에 운명같이 나타났다. 우리는 신기할 정도로 잘 맞아서, 나는 명절이나 휴가를 맞아 본가에 갈 때마다 마농과 함께였고, 엄마와 마농은 모녀지간이 되었다.
마농은 솜씨 좋은 한국 엄마를 통해 잡채, 갈비찜, 김밥, 전, 삼겹살, 된장찌개, 만두를 포함한 무수히 많은 한식을 경험했다. 그 중 마농은 색감이 아름답고, 자극적이지 않은 맛에,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먹음직스러운 엄마표 잡채에 홀딱 반했다.
잡채. 나도 참 좋아하는 음식이다. 누구에게나 으레 살아가며 마음 한 편을 따스하게 지켜주는 그런 한 끼의 음식이 있다. 잡채가 내게 그런 음식이었다.
어릴 적 생일 아침이면, 늘 고소한 들기름 냄새를 맡으며 잠에서 깨곤 했다. 엄마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잡채를 무치는 냄새였다. 버섯, 고기, 당근, 시금치, 맛살, 양파까지.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탓에 손이 많이 가는 잡채는 엄마가 들인 정성에 버금가는 맛이었다. 엄마는 당면을 채반에 담아 물기만 빼고, 찬물에 헹구지 않고 그대로 무치셨다. 면 표면의 녹말이 물에 씻겨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양념이 더 잘 붙어, 엄마 방식으로 만든 잡채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그 맛이 얼마나 행복한지 잘 알던 나는 옆에서 간을 본다는 핑계로, 상을 차리기도 전부터 ‘엄마, 한 입만.’하며 엄마를 보챘다. 엄마는 ‘그러면 이따가 맛있게 못 먹어.’하면서도 잡채를 한 움큼씩 집어 내 입으로 나르기 바빴다.
그런 사랑이 담긴 잡채에 마농도 마음을 빼앗긴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울에 올라와서도 꽤 자주 잡채를 요리해서 먹었다.
약 10개월간의 한국 생활을 끝으로 마농은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별을 몇 주 앞둔 시점부터 갑작스레 아프기 시작한 엄마는 마지막으로 마농을 초대해서 삼계탕과 잡채를 요리하셨다. 그리고 ‘마농아, 우리 꼭 다시 만나자.’라는 인사를 끝으로 그 해 겨울 먼 여행을 떠나셨다.
이듬해 프랑스에 있는 마농에게 당면과 함께 한국 식재료를 부쳤다. 마농은 혼자서도 멋지게 잡채를 요리해냈다. 마농은 잡채를 요리하며, 나는 사진 속 마농의 잡채를 보며, 우리는 엄마가 곁에 있던 그 날로 함께 되돌아가서 각각이자 하나인 엄마, 우리 조준희 여사를 떠올렸다.
유난히도 또렷한 한식, 그 한식의 맛과 향으로, 기억하고 싶은 삶의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전혀 다른 문화를 누리고 자란 두 딸이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 그것이 한식이 가진 ‘위로’라는 마법 같은 매력이다. 여전히 엄마를 추억하며 어느덧 나는 소중한 사람과 축하하고픈 날에 늘 잡채를 만든다. 마농과 나의 한식에는, 엄마의 사랑이 가득하다.
돌아오는 설, 마농에게 또 당면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