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고 있는 청춘에게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결핵 말기 판정을 받고도 명작을 집필했다. 테러사 수녀는 평생 만성 두통을 앓고 있었지만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베토벤은 청각 장애임에도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을 남겼다. 존 밀턴은 시각 장애에 굴하지 않고 <실낙원>을 썼다. 파스퇴르는 반신불수 상태에 놓여 있어도 질병에 저항하는 면역체 개발에 성공했다.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분석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한계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극심한 질병으로 혹은 치명적인 장애를 떠안고 살아야 했다. 평범한 삶을 살기에도 버거운 엄청난 핸디캡이 있음에도 이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남의 이야기로 들으면 멋있게만 들린다. 정작 당신이 절체 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가정해보자. 위의 인물들과 똑같이 명작을 저술하고 남을 위해 헌신할 수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남의 일일 때는 ‘그러려니’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자신에게 위기가 닥치면 급격한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갑자기 실직하게 되거나 감당하지 못할 금액의 빚에 쫓기게 된다면 그야말로 ‘멘털이 붕괴’되기 마련이다.
<10미터만 더 뛰어봐>의 저자인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포기하지 말고 6개월만 딱 옆 뒤 안 보고 뚝심 있게 앞만 보고 걸어가면 성공할 수 있다."
그는 수백 억대의 자산가였다가 한순간에 몰락한 독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서울역 조그만 여인숙에서 소시지 한 개와 소주 한 병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밤새 울었다던 그의 일화는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
부끄럽지만 나에게도 비슷한 시절이 있었다. 20대 열정 하나만 가지고 겁 없이 뛰어들었던 이벤트 사업. 적지 않은 충성 고객들이 있었기에 큰 성공을 맛본 것은 아니지만, 나름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나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하는 법이다.
‘모르는 분야에 손대지 말라.’
선배들이 늘 강조했던 말이다. 그런데도 청개구리 성향이 다분했기에, 선배들의 조언을 대놓고 무시하고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다. 타고난 사업적 감각과 경험이 풍부한 여타의 사람들과는 달리, 경험이 부족하고 시야가 좁았던 터라 결과는 참패였다.
없는 돈 있는 돈을 모두 끌어모아 야심 차게 시작했던 이른바 ‘사업 확장 프로젝트’는 단 6개월 만에 실패로 끝났다. 당연히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기에 난생처음 맛보는 실패의 맛은 너무도 씁쓸했으며, 남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것 같아서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우기 일쑤였다.
TV에서 혹은 책에서 본 인물들은 실패를 겪어도 어찌어찌 잘 헤쳐나가는 것 같았다. 잠깐 잠들고 나면 금방 회복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정말 눈치가 없고 바보 같아서 그런 걸까.
실패의 쓴맛에 울분을 토할 여유도 없었다. 곳곳에서 독촉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카드회사, 캐피털 회사, 은행 등 그동안 ‘우수 고객’이라며 나를 추켜세워주던 그들이 일순간 태도가 돌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엊그제만 해도 카드 한도를 올려주겠다더니 상황이 어려워지니까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20대, 대학을 휴학하고 나서 맛본, 너무도 처절한 실패의 흔적과 상처는 내 가슴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막다른 절벽에 내몰리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승승장구해서 부자가 될 거라고 믿었던 강한 믿음과 자신감은 한순간에 절망감과 열등감으로 변해버렸다.
‘이제 모든 게 끝이구나.’
흔히 하는 말로 ‘죽지 못해 사는 꼴’이 되고 나니,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은커녕 꿈도 희망도 웃음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전부였다. 사업하느라 휴학했던 학교에 복학했지만, 한 학기도 못 버티고 다시 휴학하게 되었다. 결국, 휴학, 복학을 여러 차례 거듭하다가 자퇴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려고 하면 매번 울려대는 빚 독촉 전화 때문에 도저히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또래 친구들은 생활비를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20대에 거액의 빚을 감당해야 한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김상운의 <왓칭>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주에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이 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우주의 모든 가능성을 바라보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 대한 답을 우주에 물으면 되는 걸까. 더 구체적으로 우주는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우주와 통화할 수 있는 번호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부터 희한한 습관이 생겼다. 화장실에서 세수하거나 혼자 길을 걸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이다.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몰랐다. 그냥 모든 게 싫었고 내 처지가 불쌍하고 서럽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다. 우아하고 고상하게 책을 읽고 시를 쓰던 시인 지망생이 한순간에 길바닥에 내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내 처지와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젊은 친구가 참 성실하군."
유통 관련 회사에서 일할 때, 거래처 분들이 나를 보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의 속도 모른 채 겉으로 보이는 성실한 이미지로 본의 아니게 ‘성실한 청년’으로 통했다. 당시 상황을 표현한다면, ‘성실한 청년’이 아니라 ‘상심한 청년’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상심한 채, 우울감과 좌절감에 젖어서 살아갔다. 그저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밥을 먹어도 맛있는 줄을 몰랐고,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재미있는 예능 프로를 봐도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매일 밤, 이불속에서 쓴 울음을 삼키다가 지쳐서 잠이 들곤 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까지 바라지 않겠으니 빚 청산만 하게 해 주시면 사막 끝에 가더라도 행복할 것 같다고.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양자물리 학자 윌리엄 틸러(William Tiller)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도가 반복될수록 그 효과는 점점 강해진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기도가 응답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연히 혹은 운이 좋아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라고.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신은 존재하지도 않고 기도는 단순히 자기 암시 내지는 주문을 외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자꾸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신이 있든 없든 자기 암시든 주문이든 상관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매 순간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웠기 때문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심정에 매달렸다.
과연 시련과 고통의 터널은 언제까지일까? 그 끝을 알 수만 있어도 그나마 위안이 될 텐데. 평생 고생 안 하면서 쉽고 편안한 삶을 살려고 했던 나의 계획은 애당초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게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었던 성격은 단 한 번의 실패로 인해 패배주의에 신음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사치로 느껴졌다.
그냥 아팠다. 많이 아팠다. 정말로 많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