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민족 정책과 고려인
# 1. 역사적 기원: 강제이주에서 시작된 디아스포라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정착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소련 국가 폭력의 산물이었다. 1937년에서 1939년 사이, 스탈린은 일본군의 스파이 행동을 두려워하며 연해주에 살던 172,000명의 고려인들을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우즈베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한 달여가 지나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여러 지역에 도착했다. 연해주에서 발간하던 신문 《선봉》과 고려극장, 조선사범대학 등 거의 모든 문화기구들도 함께 이주했다.
강제이주의 충격 속에서도 고려인 공동체는 놀라운 복원력을 발휘했다. 강제이주 세대 선배들은 연해주에서 기차에 실려와 척박한 중앙아시아 땅에 버려졌을 때 집보다도 학교를 먼저 지었다. 그들은 강제이주 첫 해 겨울을 토굴에서 지낸 다음 이른 봄이 되자 자식들을 가르치려는 일념으로 가장 먼저 학교를 지었고, 그 다음에야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집을 지었다. 이 교육열이 훗날 고려인 공동체의 사회적 자산이 되었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중앙아시아 각국의 독립 물결 속에서 고려인의 처지는 다시 한 번 근본적으로 흔들렸다. 소련이 해체되고 각 연방 구성국이 독립하면서 더 이상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쓰지 않게 되자, 소련 시절 관공서에 종사하던 고려인 상당수가 소련 해체 이후 쫓겨나는 등 불이익을 당했다. 러시아어를 모어로 삼아 소련 시민으로 살아온 고려인들에게 독립 이후의 민족주의 물결은 새로운 소외의 시작이었다.
# 2. 카자흐스탄의 카자흐화 정책과 고려인
- 인구 구성과 제도적 맥락
2025년 기준 카자흐스탄의 민족 구성은 카자흐인(71.3%), 러시아인(14.6%), 우즈벡인(3.3%), 우크라이나인(1.8%), 위구르인(1.5%), 독일인(1.1%), 타타르인(1.07%), 아제리인(0.76%), 고려인(0.6%), 기타(5.3%)이다. 고려인은 전체 인구의 0.6%로 약 10만 명 규모다.
제도적으로 카자흐스탄은 표면적으로 소수민족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하원인 마질리스는 107석 정원 중 9명은 소수민족을 위한 헌법기관인 카자흐스탄 민족회의의 의석으로 할당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형식적 대표성이 실질적 권리 보호로 이어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 언어 정책과 비공식 장벽
카자흐화 정책의 핵심은 언어다. 1997년에 공식 발표된 언어법 제4조에는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국어는 카자흐어이며, 모든 국민들은 국어를 배워야 할 의무가 있다고 쓰여 있다. 제8조에는 모든 관공서 및 국가 기관에서 카자흐어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현재 정부는 카자흐어를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며, 정부의 모든 공공 문서를 카자흐어로만 작성한다.
문자 개혁도 병행되고 있다. 2018년 2월 27일에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지시로 국무회의에서 러시아어 사용이 금지되고 카자흐어로만 진행되었다. 이처럼 카자흐어가 국가 정체성과 직결된 언어로 격상되면서, 러시아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는 고려인에게는 취업, 공직 진입, 공공서비스 접근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겨났다.
과거 러시아어를 모르는 것이 사회경제적 차별의 주원인이 되었다면, 현재에는 카자흐어를 모르는 것이 불이익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카자흐어가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작용하면서, 카자흐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샬라 카자흐(Shala Kazakh)'나 '만쿠르트(Mankurt)' 등의 오명을 씌우며 비난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고려인이 카자흐어에 능숙하지 않을 경우 이 같은 사회적 낙인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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