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과 통계, 그리고 징크스를 믿고 싶은 우리의 심리에 대하여
살다 보면 참 억울한 순간이 많다. 왜 하필 그날 우산을 안 챙겼는지, 왜 내가 탄 줄만 유독 늦게 가는지, 복권은 왜 매번 꽝인지.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나한테만 꼭 이런 일이 생긴다니까?”
하지만 정말 그럴까?
혹시 우리가 ‘운’을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 이상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 대수의 법칙 이야기
먼저, 우리가 징크스를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확률에 대한 직관이 꽤 엉망이라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로또 당첨 확률은 약 814만 분의 1이다.
이 수치를 보면 누구나 “와, 이건 안 되겠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뉴스에서 누가 로또에 당첨됐다는 소식이 들리면,
“어떻게 저런 행운이… 저 사람은 뭔가 다르다니까”
라고 반응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대수의 법칙이다.
시도가 충분히 많아지면, 아무리 희박한 일도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일어나게 된다는 원칙이다.
즉, 이상한 일은 ‘운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샘플이 많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당신에게 일어난 그 황당한 사건도, 사실은 전체 흐름 속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통계적 일상’ 일 수 있다.
# "다음엔 다르겠지"라는 착각 – 도박사의 오류
다음은 우리가 흔히 빠지는 심리적 착각, 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다.
예를 들어, 동전을 다섯 번 던졌는데 계속 앞면만 나왔다고 하자. 그러면 대부분 사람은 여섯 번째는 뒷면이 나올 것 같다고 느낀다.
“이쯤이면 뒷면이 나올 때도 됐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동전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여섯 번째도 앞면이 나올 확률은 여전히 50%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이전의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을 예측하고 싶어 한다.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워서, 패턴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 착각이 징크스와 만날 때 이렇게 흘러간다.
“지난 세 번 면접에서 다 떨어졌어. 나 면접운이 없어.”
“발표 때마다 노란 셔츠 입으면 일이 꼬이더라.”
어떤 특정한 결과와 사건을 연결 짓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것을 징크스라고 부르며 믿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렇게 믿으면, 그 믿음이 실제 행동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점이다.
# 운은 결국 평균으로 돌아간다 – 회귀의 법칙
또 하나 흥미로운 개념이 있다. 바로 회귀 평균의 법칙(Regression to the Mean)이다.
한 번 정말 운이 좋았거나, 반대로 무척 안 좋았던 경험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다음에도 똑같이 좋거나 나쁠 확률은 생각보다 낮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결과는 대부분 ‘평균’으로 회귀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첫 시험에서 엄청나게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해서, 다음 시험도 계속 그렇게 나오진 않는다.
그 성적은 여러 운과 변수가 겹친 결과일 수 있으니, 이후에는 다시 평균으로 가까워지는 흐름이 나타난다.
안 좋은 일도 마찬가지다. 정말 지독한 하루를 보냈다면, 다음 날은 그보다 나을 가능성이 높다.
즉, 운이 나빠 보이는 구간도 결국 평균값을 향해 가고 있는 과정일 수 있다.
# 징크스를 믿고 싶은 마음 – 통제감과 심리적 위안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굳이 ‘징크스’를 만들고, 그걸 믿는 걸까?
심리학에서는 패턴 인식 욕구와 통제감 상실이 주요 원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작위성을 잘 견디지 못한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반복되면, 뇌는 그 안에서 억지로라도 ‘의미’를 찾아낸다.
그게 인간이 불안을 견디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빨간 넥타이를 매면 일이 잘 풀려"라고 믿는다. 어떤 사람은 "왼발부터 신발을 신으면 일이 꼬여"라고 말한다.
그게 실제로 영향을 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믿음이 마음의 안정감과 통제감을 준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런 믿음이 과도해지면, 문제는 생기기 시작한다. 불안할 때마다 ‘징크스’를 점검하고, 우연한 패턴을 과신하며 스스로를 제약하게 된다.
그건 이제 ‘위안’이 아니라 ‘감옥’이 된다.
# 결론: 당신이 불운한 게 아니라, 당신의 뇌가 착각한 것이다
다음에 또다시 이상한 일이 반복되었을 때, 너무 빨리 ‘내 운이 나빠서 그래’라고 단정 짓지 말자. 그건 정말 운이 나쁜 게 아니라, 인간의 뇌가 확률과 통계를 직관적으로 처리하지 못해서 생긴 착각일 수 있다.
말하자면, 징크스는 실제보다 심리적이다.
그리고 운이라는 건 패턴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오르락내리락하는 확률의 파도일 뿐이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도 괜찮다.
“오늘 일이 꼬였다고 해서, 내 운이 나쁜 건 아니야. 그냥 지금은 평균으로 돌아가는 중이겠지.”
이렇게만 생각해도, 하루는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다.
그리고 내일은 조금 더 유쾌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