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미신과 합리성의 기묘한 공존 방식
“징크스 같은 건 안 믿는다.”라고 말해놓고, 중요한 날이면 꼭 같은 셔츠를 입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왼쪽 눈이 떨리면 오늘 일이 꼬일 것 같다고 생각하고, 시험 날 아침엔 평소 좋아하던 미역국 대신 괜히 빵을 고른다. 이처럼 사람들은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상은 그 미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그 말 자체가 또 하나의 징크스처럼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합리성과 미신은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가
21세기는 과학과 기술의 시대라 불린다. 인공지능이 개인 맞춤 식단을 추천하고, 유전자 분석으로 질병을 예측하며, 빅뱅 이론으로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미신을 찾는다.
중요한 시험 전엔 꼭 사용하는 펜이 있고, 면접 전엔 늘 하던 루틴을 반복한다.
마치 과학과 논리로 무장한 삶 속에서, 미신은 조용히 ‘보조 기둥’처럼 존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역설이 아니다. 심리학적으로도 설명 가능한 현상이다.
불안을 다루는 심리적 전략: 미신의 기능
사람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불안을 느낀다. 이때 미신은 그 불안을 줄이는 하나의 ‘심리적 도구’가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이라 설명한다.
결과를 좌우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자신만의 리추얼이나 징크스를 만들어 그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을 통해 안정감을 얻는다.
또한, 이는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과도 연결된다. 징크스를 지켰기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고, 그 안정감이 실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사람은 '믿음'이 아닌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미신을 품는 것이다.
합리적인 미신: 현대인의 위장된 자기 위로
오늘날의 미신은 ‘어리석은 믿음’이 아니다.
오히려 전략적으로 사용되는 합리적인 미신이라 볼 수 있다.
운동선수가 경기 전 루틴을 지키는 것도, 창작자가 늘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작업하는 것도 모두 ‘성과를 위한 심리적 정돈’의 일환이다.
즉, 사람들은 미신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프레임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행위는 집중력과 자신감을 높
이며, 불확실성을 견디는 내부 리듬을 만들어 준다.
결국 현대인은 미신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성과를 조절하는 장치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 미신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유대와 소속감
징크스나 미신은 개인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으로도 작용한다. 같은 징크스를 공유하거나, 같은 의식을 함께 수행하는 것은 소속감을 강화하고 유대를 형성한다.
스포츠 팬들이 모두 유니폼을 입고 ‘오늘은 왠지 이길 것 같다’고 느낄 때, 그 믿음은 논리를 초월한 공감과 연결에서 나온다.
이처럼 미신은 공통된 감정의 언어가 되어 사람들을 묶는 힘을 발휘한다.
# 징크스를 믿지 않는 징크스의 시대
현대인은 이성과 과학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미신을 지우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더 교묘하게 품고 살아간다.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조심스레 지키고, 비과학이라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둔다.
결국, 징크스를 믿지 않는다는 말도, 어떤 상황에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징크스가 될 수 있다. 그 모순과 이중성 속에서, 인간은 훨씬 더 솔직한 존재가 된다.
이성의 옷을 입고, 미신을 주머니에 숨긴 채 살아가는 우리. 그 모습은 비합리적이라기보단 오히려 따뜻하고, 인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