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운 Feb 21. 2022

(소설) 마음이 커다란 아이

마음이 커다란 아이


※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part 01 기다림

벌써 7년이 지났다. 인공수정은 세 번, 시험관도 두 번째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도 잘 찾아오는 아이가 왜 우리 부부에게는 오지 않는 건지 하늘이 원망스럽다. 인공수정도 시험관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7년의 시간 동안 남편은 협조하는 것 같았지만 그의 속내는 그만두기를 원하는 듯했다. 언제라도 내가 먼저 그만하자고 말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아이를 포기할 수 있을까... 아이는 그와 나를 연결해 줄 생명줄이다.

part 02 설렘

그는 멋진 사람이다. 주위에는 늘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나는 멀리서 그를 바라보는 소심한 여자였다. 일 년이 넘도록 몰래 그만 바라보는 나는 마치 해바라기 같았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한 학기가 지나갔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MT일정이 잡혔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힘든 나는 매번 핑계를 대고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MT일정이 나온 후 그가 다가왔다.


"너도 이번 MT 가?"

"아니요?"

"왜?"

"전... 그냥... 음... 제가 사람들하고 잘 못 어울려서요... 제가 가면 재미없을 거예요."

"그런 게 어딨어. 같이 가자."

"같이요?? 왜...?"

"왜는 무슨? 우리 같은 과잖아. 우리 과 MT니까 다 같이 가면 좋지."


한 번도 그가 내게 말을 걸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왜?? 나한데 왜?? 가슴이 두근두근... 심장이 벌렁벌렁... 머리는 아찔하고 얼굴은 붉어졌다. '어떡하지?'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기회였다. 용기를 내어 "저도 갈게요!"라고 대답했다. 그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MT를 계기로 우리는 CC가 되었다. 동기들은 모두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핵인싸였던 그가 나와 CC가 된 것은 기적이라고 했다. 모두들 부러운 눈총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싫지 않았다.


선배였지만 그는 나와 같은 학년이다. 내가 신입생일 때 그는 군대를 다녀온 뒤 복학 시기를 놓쳐 학교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가끔 들렀었던 모양이다. 우연히 나는 그를 자주 보게 되었고 그렇게 1년이 지나갔다. 2학년이 시작할 때 그는 같은 학년으로 복학을 했다.


CC가 된 후 그는 언제나 자상했고 날 먼저 배려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찰떡궁합, 닭살 커플로 소문이 자자한 연인이 되었다. 2년 반의 꿈같은 시절이 지나고 우리는 같이 졸업을 하게 됐다.


졸업을 앞두고 그는 먼저 취업을 했다. 나는 연신 취업에 미끄러졌고, 우울했다. 그때 그는 내게 결혼을 하자고 했다. 너무 기뻤다. 꿈같은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고 매일이 행복했다.

part 03 불안

행복은 내 편이 아니었다. 나는 늘 불안했다. 그가 언제고 달아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혼을 한 후 아기를 갖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내게 늘 '너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와 연결된 무언가가 없으면 언젠가 그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두려웠다. 그래서 병원을 찾았다. 배란일을 받아서 그와 함께 했다. 생리일이 지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번에는 분명 나에게 아기가 찾아왔을지도 몰라.' 하지만, 테스트기에는 여지없이 한 줄! 이번에도 아니었다.


매 달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어느새 나는 예민해졌고 그는 지쳐갔다. 그도 나도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스트레스가 심하니 마음을 편안하게 하라고 했다. 나의 조급함은 계속해서 나를 망가뜨렸다. 그럼에도 나는 멈춰지지 않았다. 그렇게 보낸 7년 동안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았다.

part 04 화합

그가 내게 먼저 말했다.


"우리 이제 아기를 갖기 위한 노력은 그만하자. 나는 정말 너만 있으면 돼. 아기를 원하면 우리 입양을 하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가 우리의 아기를 포기한 것이다. 울고불고 난리 치는 나를 그는 애써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설득했다. 몇 달 동안의 설득이 이어지고 나는 입양을 받아들였다.

part 05 기대

그와 함께 입양기관을 알아보았다. 입양기관은 영아 전문 입양기관과 큰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아동보호종합센터가 있었다. 우리는 4~5세 정도의 남자아이를 입양하기로 했고, 입양 절차를 밟으며 입양을 위한 입양부모교육을 받았다.


우리는 거주지 근처의 보육원을 소개받아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쩌면 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그 긴 시간들을 기다렸나 보다 생각되었다.


남편이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눌 동안 나는 잠시 밖으로 나왔다. 시설을 둘러보고 있는데 복도 끝에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화들짝 놀란 아이는 이내 몸을 감추었고,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남편은 담당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고, 곁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조금 전 눈이 마주쳤던 아이가 계속 생각이 났다.


"저,... 말씀 중 죄송한데요..."

"네..."

"조금 전 복도 끝에서 남자아이를 보았거든요. 그 아이도 입양을 대기 중인 아이인가요?"

"음... 누구지?.... 아!! 그 아이요??"

"생각나셨어요?"

"네... 그 아이는 입양이 되었다가 2년 만에 파양 되어 다시 돌아온 아이예요. 아이가 파양 되어 돌아와서 그 아이의 거취 문제를 고민하고 있던 중이지요."

"그래요?"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입양 후 파양 된 아이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담당자에게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남편에게 파양 된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전했다. 남편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상처를 안고 있어서 걱정이 된다며 좀 더 생각해보자고 했다. 나는 아이의 눈망울이 마음에 계속 머물러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입양기관에는 아이의 입양을 고민 중이니 아이에게는 말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전달했다. 남편은 영아를 입양해서 입양 사실을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알리지 말고 키우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하지만 나는 파양 된 아이가 입양된 것을 받아들이고 자라기를 원한다고 했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아들을 맞았다.

part 06 성장

아이를 키우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심리치료를 병행했다. 아이는 잘 자라는 듯 보였다. 밝고 따뜻했다. 아이가 잘 자라고 있음에 감사했다.


아이가 7살이 된 어느 날, 유치원에서 연락이 왔다.


"우성이 어머님, 시간 괜찮으시면 오늘 오후에 상담 오실 수 있으신가요?"

"우리 우성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라고 할 건 아니지만 상담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요."

"예... 몇 시쯤 가면 될까요?"

"아이들을 하원 시키고... 4시 정도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가는 발걸음이 내내 무거웠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적응을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생님은 우성이가 친구들과 잘 못 어울린다고 말씀하셨다. 혼자 구석에 앉아 책을 읽거나, 바깥 놀이를 해도 벤치에 앉아 있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돌아다니는 일도 없고, 선생님 말씀도 잘 따르고 친구들도 잘 도와주는데 자유놀이시간에는 왜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는지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으니 집에서 아이와 대화를 나눠달라고 하셨다.


우성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씻기고 간식을 챙겨주었다.


"우성아, 친구들이 잘 안 놀아주니?"

"아니?"

"유치원 재미없어?"

"아니?"

"그런데 왜 친구들이랑 잘 안 놀아?"

"그냥..."

"그냥? 엄마한테는 다 이야기해도 괜찮아. 우성이의 생각을 이야기해줘야 엄마가 도와줄 수 있어."

"친구들이 자기 엄마가 내가 입양아니까 같이 놀지 말라고 했대. 그래서 내가 안 논 거야."

"그랬구나. 그럴 때 무슨 생각이 들었어?"

"그냥... 친구들은 내 마음을 모르니까, 친구들 엄마도 나를 모르고...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많이 속상하니?"

"아니? 괜찮아. 나한테는 엄마가 있잖아."


아이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교를 다니는 내내 어쩌면 입양아라는 사실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닐 수도 있지만 감추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계속해서 심리치료를 받으며 사랑을 많이 주면 어느 순간 아이가 건강하게 우뚝 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 역시 흔들리고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일은 슬픈 일이 아니었다. 엄마니까, 우성이 앞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엄마가 단단해져야 아이가 엄마를 의지하고 든든하게 서리라고 믿었다.


"우성아, 학교에 가게 되면 우성이를 놀리는 친구가 더 많아질 수도 있어. 하지만 그때마다 엄마에게 말해주겠니? 네 힘이 부족하면 엄마가 같이 싸워줄게. 하지만 이 일은 우성이 마음만 단단해지면 아무 일도 아닌 거야. 엄마가 우성이를 낳지 않았지만 사랑하고, 또 사랑할게. 그러니까 힘들 때 꼭 엄마에게 말해줘. 알았지?"


우리는 그렇게 서서히 한 걸음씩 나아가며 단단해졌다.  

part 07 행복

우성이는 6학년이 되었다. 성격이 좋아 친구들과 잘 지냈고, 학생회장을 하며 적극적인 아이로 성장했다. 친구들의 고민 상담은 도맡아 했다. 어릴 때 아픔이 있던 우성이는 친구들의 진로 상담과 연애 상담 전문가가 되었다. 친구들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우성이를 찾았고, 우성이는 지혜롭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해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고민을 들어줬던 일, 공부하면서 어렵거나 재미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우성이가 하는 이야기는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쳤다. 어느 날, 우성이는


"엄마, 나도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

"왜?"

"형, 누나, 동생이 있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워서..."

"그래? 아빠하고 함께 의논해 볼까? 엄마도 우성이에게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

"정말?"


우리는 새로운 가족을 맞을 준비를 하며 행복한 나날을 꿈꾸게 되었다.    -끝-


작가의 말.


우리의 가치가 옳다고 생각할 때 편견과 선입견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과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 가치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오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윤리 교과서에 수록될 만한 정의라 할지라도 적용 대상에 따라 그릇된 정의가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정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들을 범하는 우리의 오만은 누군가를 흠집 내고 상처 입히면서도 옳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며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나는 과연 겉모습만 보고 상대를 판단하려 한 적이 없었는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정의 때문에 상대를 정죄하고 손가락질한 적은 없었는가? 상대를 평가하는 기준이 외모, 재산의 정도, 학력 등의 외적 조건은 아니었는가? 혹시 나보다 약한 사람은 무시하고, 나보다 강한 사람에게 굽신거리지는 않았는가?


위의 조건들은 제가 살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단정하고 행동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부산해졌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자녀에게 좋은 엄마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아이의 친구 중 누군가와 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품은 채 아이에게 속내를 들킬까 에둘러 표현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모임에 나가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사람을 분류하고 나누어 다음 모임에는 저 사람이랑 함께하지 말아야 할 사람, 저 사람과는 오래도록 관계하고 싶은 사람을 셈하고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쩌면 내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며 이러한 오류를 늘 범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작은 아이는 자기 자신을 마음의 방에 가두며 자란다.'라고 합니다. 앵글이, 동글이가 마음이 큰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저부터 마음이 커다래져야겠습니다.


마음을 키우고픈 로운입니다.


2월 4주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완성하라!]
원곡 풀버전

음악을 소재로 글을 쓰자고 마음을 모은 후 곡을 선물 받았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여든일곱 번을 빼고 백번은 들었습니다. 듣고 또 듣는데 도통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듣고 또 듣다가 곡의 흐름이 바뀌는 부분마다 잘라내어 편집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느껴지는 대로 감정의 말을 붙여 제목을 달아보았습니다. 곡을 편집하고 나니 조금씩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다른 작가님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꾸려낼지 무척 궁금합니다. 보글보글 매거진이 주는 신비한 힘은, 어떤 주제를 던져주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저도 작가님들과 함께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보글보글과 함께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덧.

매거진의 이전글 2022년 2월 4주 [글놀이 소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