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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Aug 08. 2022

"여름에는 빙수지!"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엄마의 암 진단으로 우리 가족들은 쫄보가 되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해서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시간의 흐름 따라 몸도 나이 들어가므로 '누군가의 아픔'이 그저 남의 일이 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가수는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노래하였지만 삶 속에 우리는, 아니 나는 자꾸만 '익어가는 것이 아니라 늙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의기소침해지곤 합니다.


4년 전 여름 엄마는 오른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2박 3일 만에 가차 없이 퇴원당하였죠. 환자의 상태와 상관없이 병원 지침에 따라 퇴원할 수밖에 없던 그 황당함이란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대학병원은 질병코드에 따라 입원할 수 있는 날들이 정해져 있는데 인공관절수술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예정된 기일 안에 퇴원을 해야 합니다. 수술 전에는 상식이 없던 터라 대학병원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했다가 막상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이끌고 퇴원할 상황에 놓이니 전문 병원에서 받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어머니께서는 세 곳의 병원으로 옮겨 다니며 입퇴원 및 재활 치료를 받았습니다. 수술 후 2년여 시간이 지나니 수술로 인한 통증에서 자유로워지셨지만 반대쪽 다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2년을 버티는 동안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해져 지난주 왼쪽 다리도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암 수술과 치료를 병행하며 재활을 받으셔야 했기에 세브란스 인근 관절 전문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주치의의 배려로 조금 길게 입원이 가능해져 가족들의 마음이 편안합니다. 이전에 수술했을 때와 수술 방법이 다르고 의술이 좋아져서인지 회복되는 속도도 빨라 감사하고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어머니의 치료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느낀 것은 노후로 인해 관절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민간요법 및 침 치료보다는 병원 치료가 일상생활로의 회복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용이하다는 것입니다. 차일피일 미루다 뼈에 염증이 생겼던 오른쪽 다리보다 염증이 덜한 왼쪽 다리의 수술 후 예후가 훨씬 양호하고 재활이 빠른 것을 보며 아플 때는 빠른 시간 내에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 봅니다.


노후로 인한 인공관절수술은, 힘들고 아프고 괴롭지만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고 회복기에 접어들면 아파서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던 때보다 좋아집니다. 세브란스 폐암 전문의는,


"폐 수술은 수술이 잘 되어도 수술을 하는 순간부터 삶의 질이 떨어지지만, 관절 수술은 아프고 괴로워도 회복기가 지나면 통증은 사라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니 관절 수술부터 하고 오시죠."


라고 하셨습니다. 폐기능이 약해지니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수술 전부터 어려움이 있었고, 헤모글로빈 수치가 안정화되지 못하여 수술 후 3일 동안 수혈을 받으셨습니다. 걱정이 가득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지금은 잘 회복되고 있습니다.


인공관절 수술 전 검사를 하면서 오래도록 기침이 잦아들지 않고 있어 노파심에 찍었던 CT에 암 소견이 보였고, 세브란스 암병동으로 옮겨 진료를 받았더니 악성종으로 보여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하셨습니다. 활동적이고 건강하게 활동하시던 어머니께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당사자보다 더 많이 놀라신 아버지께서 식사를 거의 못하시고 하루하루 살이 빠지는 모습을 뵈며 어머니보다 홀로 계신 아버지가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말씀이 많이 없으신 아버지께서는 말보다 몸이 더 먼저 움직이십니다. 매 끼니때마다 병원에 찾아가 어머니 식사를 거들어주시고, 전화를 주십니다.


"얘야... 네 엄마가 뭘 잘 못 먹는다. 이따가 너 올 때 엄마가 먹을 만한 것 좀 준비해서 와 주겠니?"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시는 줄 알고 잔뜩 준비해서 병원에 갔더니 병원에 오셔서도 어머니 시중만 드시고 식사를 하지 않은 채 돌아가셨던 모양입니다.


"네 아빠가 말이야... 그동안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오랜 세월 동안 뼈가 다 녹아내리도록 고생만 시켜서 정말 미안하다고 올 때마다 말을 해. 이제야 철이 든 모양이다."


말은 투박하게 하시면서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혔습니다.


"병원에 와서 같이 식사를 하면 좋을 텐데 아무것도 먹지 않고 간다. 네 아빠가... 아이고... 내가 짠해서 원... 네가 좀 챙겨보렴."


만나면 투닥투닥, 매번 못마땅하다 투덜대시더니 막상 힘 빠진 아버지 뒷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지시는 것을 보면 반백년 세월 함께 한 그 마음이 어디 안 가는 모양입니다.


외가 어르신들께서 폐암으로 두 분이나 세상을 떠나셨다며 걱정이 늘어지는 엄마를 위해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국가검진을 받는 해 이기도 해서 겸사 추가 검진을 신청하고 남편과 나란히 병원을 찾았습니다. 종합검진으로 접수를 하니 대우가 남다릅니다. 차트 표지에 VIP라고 표시되고, 가운도 다릅니다. 구별하기 위한 방법이었겠지만 왠지 여느 해 보다 빠르게 검사가 진행되는 것도 같습니다. 2년 전 국가검진받을 때와 상반된 대우에 우리 둘은, '역시 돈이 좋긴 좋구나!'라며 실없는 소리를 해 봅니다.


건강검진 전문 병원에서는, 위장 내시경을 하면서 십이지장에 관장약을 넣어 대장을 비우도록 도와주고, 장이 비워진 것을 확인 후 대장내시경을 진행했습니다. 몇 년 전 다른 병원에서 일주일 전부터 식이조절을 하고, 이틀 전부터 관장약을 마시며 장을 비우느라 검사를 받기 전부터 이미 몸살을 앓았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수월하게 받을 수 있는 검사였습니다.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려 받게 된 검사였습니다. 안심하시도록 나란히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리고, 내시경 소견은 건강하다 전해드렸습니다. 검사를 받은 것만으로도 어머니께서는 마음이 한 결 가벼우신 모양입니다. 부모의 마음이 그런 거겠지요. 이제 보호받던 자식에서, 부양해야 하는 자식으로 전환되어야 할 시기가 되었으니 함께 건강을 챙겨가며 조금 더 즐기며 사실 수 있도록 곁을 지켜야겠습니다.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여름에는 더위를 날리는 빙수가 최고!"


안타깝게도 대장 용종을 떼어낸 남편에게 24시간 금식령이 떨어졌습니다. 포카리스웨트만 마셔야 할 남편은 두고, 방학이라 집에서 엄마 오기를 목 빠져라 기다릴 두 아이와 함께 동네 곤드레밥집을 찾았습니다. 금식 후 먹는 밥이라 꿀맛입니다.


심학산 '산뜨락곤드레'


밥보다는 디저트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과 함께 우리 동네 명물 빙수 맛집으로 GO GO~~~

아무리 배가 불러도 디저트 들어갈 자리는 있는 법이니까요. 복숭아 빙수를 개시했다는 인스타 소식을 듣고 얼른 맛보러 가리라 손꼽았던 곳입니다. 역시 마성의 맛이었습니다. 생각했던 딱 그 맛! 시원하고 달달하고 부드러운 맛에 흠뻑 빠져 정신없이 숨도 안 쉬고 꿀꺽 먹어버렸죠.


덕이동 '덕수다방'


복숭아와 함께 연유 듬뿍 우유얼음을 얹어 한 입 가득 넣으면 머리가 띵, 꿀떡 넘어가며 가슴이 서늘 해지는 빙수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도 고드름으로 바꿔줄 만큼 시원합니다. 더운 여름, 눈도 입도 뱃속도 행복하게 해 준 매력적인 빙수 덕분에 크리스마스 선물 부럽잖게 행복하고 나른한 오후가 되었습니다.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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