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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Aug 22. 2022

나의 단골 사용설명서

보글보글 "OO사용설명서"

"오늘 뭐 먹을까?"

"언니는 안 먹는 게 많으니까 묻지 말고 언니가 그냥 정해~"

"아니야.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얘기해."

"언니가 골라주는 게 편해. 우리는 아무거나 다 잘 먹어."


모임이 있을 때마다 함께하는 이들에게 늘 '어떤 음식'을 원하는지 묻지만 대체로 제게 선택권이 넘어옵니다. 이상하죠? 전 그다지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특별히 못 먹거나, 싫어하거나, 가리는 식재료는 없어요. 다만 오랫동안 유치원에 근무하다 보니 현장학습을 다니며 많이 먹었던 김밥•유부초밥•볶음밥 등은 제외하게 되고, 야근할 때 배달로 먹었던 짜장면•탕수육•피자•치킨•천국의 분식 등을 즐기지 않을 뿐입니다.


"먹고 싶은 건 없어?"

"우리 곱창 먹으러 갈까?"

"음... 보기에도 맛나 보이는 걸로 먹자~ ㅎㅎㅎ"

"소곱창이 얼마나 맛있는데... 이 언니가 뭘 먹을 줄 모르네."

"세상에 맛있는 게 많은데 내장까지 먹어야겠어?"

"ㅋㅋㅋㅋㅋ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언니한테 정하라고 했잖아."


곱창 속 곱은 사실 기름 아닌가요? 기름을 구우면 당연히 고소한 맛이 나겠죠. 기름에 튀기면 돌덩이도 맛있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곱창•대창•막창이 왜 맛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언니, 그럼 길 건너 동경 나베 신규 오픈했던데 거기 갈까?"

"거기는 뭐 파는 곳이야?"

"음... 돈가스 팔겠지?"

"돈가스... 안 당기는데... 기름에 튀긴 거 말고 다른 메뉴는 없을까?"


돈가스, 치킨, 튀김처럼 기름에 담가졌다 나온 음식은 식사 후에 소화가 잘 안 되어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내 돈 내산 일 때 찾지 않는 음식이죠.


"보신탕이나 장어탕은 어때? 우리도 이제 몸 생각할 때야."

"한 번도 안 먹어보긴 했는데... 그냥 삼계탕 먹을까?"

"ㅎㅎㅎㅎ 거봐, 언니 편식 대마왕 맞잖아."


생각해보니 편식 대마왕이 맞는 것 같습니다. 가리는 음식을 모두 제하고 나니 남녀노소 무난하게 즐길만한 음식을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호불호가 거의 없는 음식으로, 나름 맛집 고르는 기준에 맞춰 단골을 채워 갑니다. 그래서인지 조금 까다로운 제가 '맛집'이라고 소개하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게 되네요.


때로는 폭풍 검색으로 맛집을 찾을 때도 있고, 우연히 모임 장소로 알게 되거나 주위분들의 소개일 때도 있습니다. 가격, 맛, 위생, 분위기, 친절도 등을 충족하면 '나만의 맛집 리스트'에 추가됩니다. 그렇게 맛집으로 결정되면 특별한 경우 외에 같은 메뉴, 다른 곳을 찾지 않고 정착하는 편입니다. 좋아하는 장소가 세월이 지나도 그곳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거든요. 세월 따라 기억이 쌓이고 추억이 되는 곳이 늘어간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엄마, 신씨네 부엌 사장님은 이상해."

"왜?"

"엄마랑 같이 가면 서비스를 주는데 나 혼자 가면 서비스를 안 줘."

"그래? ㅎㅎㅎ 동글이만 특별히 챙겨주기 어려워서일 거야. 하굣길에는 친구들이 많잖아."


우리 동네 '신씨네 부엌'은 초등학교 앞 떡볶이집입니다. 사장님께는 신기한 능력이 있어서 아이들의 이름을 잘 외십니다. 아이들이 찾아올 때마다,


"동글아~ 안녕? 뭐 줄까?"


라며 이름을 불러줍니다. 제게 없는 귀한 능력입니다. 어쩜 그리 이름을 잘 외실까요?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는 제 마음도 덩달아 행복해집니다. 떡볶이도 맛있지만 사장님의 배려가 맛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돈을 들고 다닐 수 없으니 사장님께서는 장부를 사용하십니다. 예치금을 넣어놓으면 하굣길 아이들이 자유롭게 간식을 먹습니다. 예치금이 떨어져 갈 즈음 알려주시죠. 이 방법은 이름을 잘 외는 사장님의 재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사장님의 마음씀이 감사해서 가게가 잘 되도록 기도 해 드립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도 하고 가게에 들를 때마다 감사의 표현을 합니다.


"동글이 엄마가 가게에 들르면 갑자기 손님이 몰려요. 그러니까 자주 오세요. ㅎㅎ"


어쩜 이리 말씀도 예쁘게 하시는지요. 그런데요... 정말 제가 가면 사람이 몰려요. 신씨네 부엌뿐 아니라 다른 식당이나 매장에 가도 그래요. 제가 사람을 몰고 다니는 기운이 있나 봐요.


식당뿐 아니라 병원이나 생필품 매장 등을 소개받고 싶거나 물건 등을 인터넷으로 구입할 때도 지인들의 질문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유치원 교사 말고 영업사원을 할걸 그랬나 봐요. 오래도록 다니고 있는 치과, 내과, 소아과, 피부과 등을 소개해 줄 때는 미리 전화를 해주곤 합니다. 소개해 준 사람도, 소개받은 사람도, 사업장에서도 지인 찬스는 서로에게 이로우니까요. 그런 마음 때문인지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에도 많은 분들이 기꺼이 도움을 주십니다. 어디를 가든지 진심은 통하니까요.


"언니, 영업사원 같아. 이 정도면 그곳에서 월급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누가 무엇을 묻든 적절한 곳이 생각납니다. 저도 제 머릿속에 얼마 큼의 정보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소개를 많이 해서 따로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전해받을 수 있죠. 소개받은 분은 소개해 준 사람의 마음이 감사해서 '더욱 세심히 마음을 기울'일 수 있고, 소개한 사람은 '소개해줘서 고마워하는 마음'을 선물로 받으니까요.



최근 제가 가장 많이 자랑하는 책방입니다. '너'의 작업실이라고 이름한 것도 새삼 참 좋습니다. 나도, 우리도 아니고 '너'라고... 이름하니, 마치 책방이 나에게 "야! 너도 들어와!!"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인생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고, '함께 책을 통독'하는 수업에도 참여할 예정입니다. 북 토크, 그림책 수업, 글쓰기 수업 등 다양한 강좌가 열리고, 작가들이 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는 독립 책방이죠.



너의 작업실 옆에 위치한 '아티 카페' 주변에는 건물마다 카페가 있습니다. 꼭 이곳이 아니어도 되지만 이곳에만 매주 같은 시간 들르고 있습니다. 이제 사장님과도 친해져서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라고 사장님께서 먼저 인사를 건네주십니다.


제 단골 사용법은, 꾸준히 한 곳에 머물고 친해지는 거예요. 사장님이 손님에게 중독되도록 만드는 거죠. 그리고 마구마구 자랑하고 보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자랑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개선할 점이 있으면 진심을 담아 사장님께 건의를 하죠. 대체로 사장님들께서는 좋아하십니다.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안을 드리는 것이니까요.


매일 같은 곳에 머무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방문객이 되었을 때 더 잘 보이잖아요. 그럴 때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알려드렸을 때 한걸음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면 자영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정성과 공을 들여야 성장할 수 있죠. 맞이하는 사람과 찾아가는 사람 모두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어야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발걸음 하는 모든 곳에 기쁨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8월 4주의 주제는 "OO사용설명서 인물 편"입니다.



도로에서 우연히 "위급 시 활어 먼저 구해주세요."라고 적힌 트럭을 보았어요. 당신의 안위보다 귀한, 활어가 타고 있는 트럭이었죠. 사장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웃픈 글귀였어요. 그래도 활어보다 사장님이 더 안전하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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