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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Nov 18. 2022

친정엄마를 암 요양병원에 모셨습니다.

코로나로 드러난 엄마의 암은 온 가족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천운이라 하셨지만 몸의 기관 어느 한 곳을 떼어내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걱정과 놀람을 가져다주었죠. 의연하게 대처하려고 애쓰시지만 겁먹은 엄마의 눈동자는 갈피를 잡지 못했고, 당장이라도 아내를 잃을까 노심초사하시는 아버지의 걱정 어린 염려는 하루에도 여러 번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갔습니다.


수술을 결정하고 날짜를 잡고 그에 수반되는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검사받다가 체력이 약한 환자는 깔딱 고개를 넘을 수도 있겠다' 싶은 3주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수술과 입원, 그리고 회복의 단계를 지나오고 있습니다.


엄마가 입원한 '한강요양병원'의 아침, 점심, 저녁


지인의 소개로 입원 한 암 요양병원은 환자들의 식사 하나까지도 섬세히 챙겨주시는 곳입니다. 단정히 올려진 찬과 매 끼 간식까지 꼼꼼히 놓인 식판을 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합니다. 지난 7월부터 4개월여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계신 엄마는 병원밥이 지루하다며 매 끼니 식사를 거의 못하시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식품군에 맞춰 정갈하게 놓인 식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엄마의 병원 이동을 위해 요양병원 여러 곳을 알아보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병실 확인이 불가하여 병원 외관과 1층 로비, 코디네이터의 설명 및 의사 선생님 면담 만으로 결정해야 하기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결국 환자 본인이 입퇴원을 반복하며 병원 사정을 체험으로 알아보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젊은 우리네들은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생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으니 연약한 부모님을 요양기관에 위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의료사각지대로 변모해버린 요양시설의 열악함은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죠. 엄마가 경험한 타 요양시설은 의리 번쩍한 로비와 상반되게 병실 환경은 위생 개념 없이 환자들이 사용한 기저귀들이 곳곳에 널려있고, 식사 또한 무료배식소에서도 받아보기 어려울 만큼 부실했습니다.


금촌의  D요양병원의 아침, 점심, 저녁


차마 병실환경을 사진으로 올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곳에 입원해 계신 많은 분들이 낙상으로 인해 허리, 고관절 등의 골절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분들과 알츠하이머 환자셨습니다.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지만 홀로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분들도 부당한 처우와 비 위생적인 환경에 놓여있지만 자식들 걱정할까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충격에 빠지셨습니다.


"로운아, 나 좀 데리러 와. 나 여기 못 있겠어. 죽고만 싶다..."

"로운아, 환자들의 동공이 다 풀려있어. 계속 '우리 남편(자식) 좀 불러주세요.'라며 웅얼대는 환자들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의 미래가 저런 모습이라면 지금 당장 그냥 죽고만 싶더라."


단 하루, 아니 반나절 만에 엄마는 펑펑 울며 전화를 주셨습니다. 바로 퇴원 수속을 하고 옮긴 곳이 지금 입원한 암 요양병원입니다.


많은 요양병원이 코로나를 이유로 면회 제한을 하고 있습니다. 감염 위험을 낮추기 위한 그들의 노력임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입원한 환자들에게 소홀하거나 함부로 하고 비 인격적인 대우를 해도 좋은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병실 안의 환경을 저는 엄마가 찍어오신 사진으로 보았습니다. 차마 이곳에는 올릴 수 없지만 함께 일하는 상담사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이곳이 아닌 타 요양병원의 현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보호자가 반드시 병실을 방문하고 수시로 점검할 수 있도록 권한이 주어져야 환자들의 안전도 보호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엄마가 입원해 계신 암 요양병원에서는 암환자들의 치료와 안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항암으로 인해 피부병이 생기고 건선이 되어 고생하는 환자를 위해 피부관리실을 운영합니다. 물론 기본 수가에 포함되어있어요. 수시로 족욕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층마다 안마의자를 두어 환자들이 쉴 수 있도록 휴게공간을 두었습니다.


항암에 도움이 되는 의료장비를 갖추어 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 구비하고 전력으로 치료를 돕고 있습니다. 엄마의 보호자가 된 딸의 시선으로 바라본 암 요양병원은 안전하고 감사한 곳입니다.


엄마의 병실과 병원 곳곳

정권이 바뀌고 10월 1일부터 면회가 일부 허용되어 휴게실에서 잠시 엄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암 병원의 특성상 감염에 취약해서 엄마의 병실에 드나들 수는 없지만 엄마를 만나기 위한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됩니다.


병원에서의 시간을 통증과의 싸움으로 보내면 하루 해가 길어도 너무 깁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소일할 수 있는 것들을 챙겨서 병원으로 보내드립니다. 그 어머니의 그 딸이라고, 엄마도 손으로 하는 작업을 좋아하시는 터라 제가 보내드린 소일거리를 즐겁게 하고 계십니다.


엄마가 그린 유화들


번호 따라 색을 입히면 완성되는 그림들을 보내드렸습니다. 엄마는 요즘 화가가 되셨습니다. 병원 내에서도 유명인사가 되었고, 의사와 직원들, 환자분들이 병실로 구경을 오십니다. 아마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병원 로비에서 엄마의 그림 전시회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친구들의 생일이 다가온다며 손수 만든 모자와 목도리를 선물하고 싶다고 하셔서 어제는 엄마에게 니팅룸 뜨기를 가르쳐드리고 왔습니다. 모자+목도리 6세트를 만드셔야 한다고 하네요.


면회를 위한 휴게 공간에서 함께 차를 마시며 수업해드렸어요.


니팀룸 벌집 뜨기를 설명해드리고 숙지하는데 한 시간이 걸렸어요.


"엄마, 난 울 엄마가 아줌마인 줄 알았는데 할머니가 맞네. ㅎㅎ"

"왜~ 내가 잘 못해서??"

"엄청 잘할 줄 알았는데 자꾸 까먹잖아... ㅎㅎㅎ"

"그러게, 이게 쉽지 않네. 손에 익으려면 한 참 걸리겠어..."


엄마와 두런두런 수다를 떨며 목도리를 뜨고 있는데 병원 실장님이 다가오십니다.


"어머니, 뭐 만드세요?"

"우리 딸이 목도리 뜨는 걸 가르쳐줘서 배우고 있어요."

"어머~ 너무 예쁘네요. 폭신폭신하고... 다른 환자분들께도 가르쳐드리면 좋겠어요."


겨우 내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실 입원 환자분들께 재능기부 수업을 해 드리려고 해요. 엄마를 가르쳐드리면서 다른 분들께도 가르쳐드리면 시간도 알차게 보내고, 만드는 동안 통증도 잠시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암 환자들은 병 때문에 힘든 것보다, 자책과 후회, 억울함 등의 심리적 갈등으로 더 많이 힘이 드십니다. 그분들께 작은 재능이라도 나눠드려 하루 한 시간이라도 재미있게 보내실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제 마음도 기쁠 것 같아요. 의미 있게 2022년을 마무리 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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