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김치 담그기에 도전했습니다. 제가 된장은 담가먹지만 김치는 친정에서 공수하거나 사 먹거든요. 된장은 매 해 거의 같은 맛이 나고, 해보면 김치 담기기보다 손이 덜 가죠. 그리고 사 먹는 된장은 집된장의 깊은 맛이 나지 않기에 담가 먹어요. 동글이가 된장국 마니아라 없어서는 안 될 식재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김치는, 담글 때마다 다른 맛이 나요. 어쩌다 실패하면 처치곤란이죠. 두 번의 실패 이후 전통 있는 종가에 의지해 조공받고 있는 중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배추는 아래층 동생과 동생의 친정집에 나누어 드렸어요. 친절한 아버지께서 김장 담그기에 꼭 필요한 재료를 쏙쏙 챙겨주셨죠. 무와 갓까지 꼼꼼히 분량에 맞게 챙겨주신 덕분에 아래층 동생의 친정 부모님께서 너무 좋아하셨어요.
딸내미 주신다고 아버지께서 정성스레 가꾼 배추를 나눠주기만 하면 서운하실 테죠? 그래서 김치 담그기에 도전했습니다. 아버지 걱정과 달리 속이 꽉 찬 이쁜 배추였어요. 초록초록 겉잎은 따로 떼어 맛김치 용도로 썰고, 노오란 알배추는 쪽을 내었어요. 오늘은 백김치를 담가볼 거거든요. 어머니께서 담가주신 백김치 맛을 흉내 내 볼 계획입니다.
6년 동안 간수를 뺀 정성 가득 어머니의 굵은소금을 받아왔어요. 소금물을 만들어 배추를 담갔다가 하얀 줄기 부분에는 소금을 추가해서 솔솔 뿌려줬어요. 그리고 30분 간격으로 위아래 바꿔줬죠.
맛있는 김치를 담그려면 소금 맛이 중요하거든요. 결혼 초, 의욕이 넘칠 때 혼자 김치를 담가보겠다고 마트에서 구입한 굵은소금으로 배추를 절여 김치를 담갔는데 김치에서 쓴맛이 났어요. 영문을 모른 채 쓴맛 나는 김치를 어찌할 수 없어 푹 익힌 후 볶거나 찌개를 끓여가며 애써 처리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김치 맛은 소금이 8할이라는 걸 그때는 알 수 없었죠.
김치 장인 친정어머니께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김치 담그려고요..."
"오메... 네가 웬일로 김치를 다 담그니? 쌈으로 먹는다더니..."
"커다란 배추가 두 포기나 되는데 이걸 쌈으로 어떻게 다 먹어요..."
"고작 배추 두 포기로 김치를 담근다고? 그걸 누구 코에 붙여?"
"두 포기만 있으면 겨우 내 먹을 수 있어요."
"무 많이 가져왔을 텐데 섞박지도 좀 담지 그러니..."
"아니, 그냥 김치만 담글 거예요... 백김치를 담그려고 하는데 빨간 김치랑 어떤 점이 달라요?"
"응~ 백김치에는 사과랑 배가 들어가지. 씹는 맛이 좋으면 채를 채서 넣고, 싫으면 갈아서 넣으면 돼."
"적당히 넣으면 되지. 아, 그리고 백김치는 액젓보다 새우젓을 많이 넣는 게 더 맛있어."
"새우젓은 얼마나 넣어야 하는데요?"
"적당히 넣으면 되지."
"아이참, 엄마... 적당히가 도대체 얼마 큼이에요?"
"그냥 내가 갈까? 내가 가서 후딱 해주고 오면 되는데..."
"입원하신 분이 오긴 어딜 와요... 그냥 설명해주면 제가 해볼게요..."
"그래. 해봐야 늘지... 그런데 설명하는 게 더 시간 걸리겠다... ㅎㅎㅎ 참, 백김치에는 뉴슈가를 조금 넣어야 해!"
"뉴슈가? 그런 거 집에 없는데?"
"설탕 넣으면 절대 안 된다. 뉴슈가를 넣어야 맛있어."
"그건 또 얼마큼 넣어요?"
"조금..."
"하... 아이고 엄마.... ㅎㅎㅎㅎㅎ"
한참을 스피커폰으로 어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곁에 있던 앵글이가 깔깔 웃습니다.
"엄마, 개콘보다 더 웃겨... ㅋㅋㅋㅋㅋㅋ"
"아니, 도대체 적당히가 얼마 큼이야. 양을 말해줘야지..."
우여곡절 끝에 김치 3종을 완성했습니다.
"앵글아~ 김치 다 만들었어. 외할머니께서 담가주신다고 했는데, 혼자 담갔더니 뿌듯하네?"
"그런데 엄마, 할머니 도움 없이 혼자 만든 거 맞아?"
"왜~ 종일 혼자 만들었잖아."
"음... 할머니가 전화로... ㅋㅋㅋ 엄마는 손만... ㅎㅎㅎ 아닌가?"
"꼭 그렇게 팩폭을 날려야겠니?"
"ㅎㅎㅎㅎ 엄마~ 고생했어~ 맛있어 보여."
"늦었어. 이미 삐졌거든?"
아침 8시에 시작했는데 다 하고 나니 저녁 8시가 되었네요. 어머니께서 코칭해주신 대로 사이다와 뉴슈가도 넣었죠. 그리고 쪽파도 넣으라셔서 한 단을 샀는데 양이 많아서 얼결에 파김치도 담갔어요.
"엄마, 김치 담갔어요. 사진 보냈는데 보셨어요?"
"아니, 아직... 그런데 이제 다 한 거니?"
"아침부터 시작했는데 열 시간이나 걸렸어... 아이고... 몸살 나겠네... ㅎㅎㅎ"
"누가 들으면 김치 백 포기는 담근 줄 알겠다. 무슨 배추 두 포기를 종일 만드니... ㅎㅎㅎ 그래도 잘했다. 맛있어 보여."
"그런데 배추가 엄청 달아서 아직 맛이 안 들었는데도 엄청 맛있어요."
"아버지 밭에 배추랑 무가 매해 그리 달더라. 고추도 맛나니 김치가 맛있겠지."
"그러니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남겨뒀다가 담글걸 그랬나?"
제 나이 이제 거진 오십입니다. 그런데도 어머니 눈엔 세상 풋내기가 따로 없네요. 백김치는 처음이라 통에 담긴 것만 봐도 뿌듯합니다.
맛김치, 백김치, 파김치 완성!!
어머니께서 주신 미션은 동치미 담그기였어요. 저는 좋아하지 않지만 어머니와 앵글이가 동치미를 엄청 좋아합니다. 아버지 밭에서 동치미용 무를 뽑아왔어요. 아버지 밭의 무는 정말 달달하거든요. 아작아작 맛있는 동치미 담그기를 어머니의 비법으로 만들어보려고요.
솔로 싹싹 무를 닦아서 흠집 있는 부분은 칼로 도려내었어요. 그리고 간수 뺀 굵은소금으로 문질문질 발라 통에 담아주었어요.
통에 담긴 무는 하루에 2~3번 뒤집어 주면서 3일 간 절궈줍니다. 그러면 무에서 맛있고 시원한 물이 나온다고 해요. 무도 아작아작 꼬들꼬들해지죠? 동치미는 씹는 맛과 시원한 맛으로 먹는 거잖아요? 오늘부터 3일이니까 며칠 기다렸다가 어머니 코칭으로 만든 비법 육수를 만들어서 부어줄 거예요.
"맛있게 절궈져라 뾰로롱~"
살림 초보 냄새가 난다고요? 아버지께서 텃밭의 채소를 주실 때는 양이 많아 삶고 데쳐서 소분한 후 냉동고에 차곡차곡 저장했다가 야금야금 꺼내먹는 맛이 있어요. 매해 김장철이 되면 제일 먼저 챙겨주시는 배추로 샤부샤부, 쌈으로, 가끔 겉절이도 담가요. 무청을 데쳐 된장국도 끓여먹죠. 그런데 게으른 몸뚱이는 일거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막상 손질해두면 맛있게 잘 챙겨 먹지만 주방 가득 쌓인 채소를 보면 한숨부터 나오거든요. 배부른 투정이죠.
그런데 신기한 건요? 마트에서 사 온 채소를 상온에 하루만 둬도 상하고 짓무르잖아요? 그런데 아버지의 채소는 며칠을 둬도 끄떡없어요. 이번에도 일정에 쫓겨 며칠 동안 손도 대지 못했는데 감사하게도 싱싱한 상태 그대로 기다려주었어요. 살림 고수님들은 몇 시간 만에 뚝딱 해냈을 김치 담그기를 저는 열 시간이나 걸려 완성했지만 뿌듯하고 어깨가 쑤욱 올라갑니다. 내일은 늦잠 각이에요. 하지만 오늘은 보람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