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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Dec 26. 2022

11년 만에 남편과 영화관에 갔습니다.

[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평화로 가는 길은

지난주 남편과 함께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2011년 [도가니] 이후 '둘만' 영화를 본 건 11년 만입니다. 음악 듣기를 좋아했지만 육아와 함께 '동요 무한 반복 듣기'로 대체되었고, 개봉일에 영화 보기가 취미였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뽀로로, 카봇, 또봇' 등의 극장판 영화로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두 아이의 연령차가 많이 나다 보니, 남편은 앵글이와 저는 동글이와 각각의 영화를 본 후 약속장소에서 만나 함께 식사하는 방식으로 나들이를 했습니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거치며 우리 두 사람에게서 선택권이 사라졌습니다.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둘이 영화를 볼 수도 있었겠지만 독박 육아맘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지난주 남편은


"아바타 2 개봉했는데 조조로 넷이 같이 볼까?"


 귀여운 요청을 받고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망설일 틈 없이 거절입니다.


"아이들은 안 본다는데?"

"그럼 둘이 보자! 당신이 예매해 줘."

"평일에도 예매를 해야 해?"

"좋은 자리는 지금 예매해도 없을걸?"


조조 영화 6,000원일 때 이것저것 할인받아 4,000원에 본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조 10,000원, 평일 일반 15,000원, 주말 일반 17,000원이 되었네요. 영화 요금표만 봐도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느껴집니다. 남편 말대로 조조는 좌석이 없습니다. 날짜별로 하나씩 다 눌러 좌석을 찾아봐도 이미 만석입니다.


"여보~ 조조는 못 볼 것 같아. 자리가 없어."

"거봐. 내가 없을 거라고 했잖아."


아바타 2 : 물의 길


집 근처에 리클라이너 영화관이 오픈했지만, 개관할 때 코로나를 맞아 오가며 바라만 보았습니다. 궁금했지만 방문하지 못하다 남편이 보고파한 [아바타 2] 관람차 예매를 했습니다. 좌석이 편해서인지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을 앉아있어도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재미있으니 192분도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오랜만에 함께 관람한 영화관 데이트여서인지, 팝콘과 버터구이 오징어가 맛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주머니에 넣어뒀던 핸드폰을 꺼내니 부재중 전화가 8통이나 와 있습니다. 동글이입니다. 분명 나올 때 영화가 세 시간이 넘으니 네 시간 정도 외출을 하겠다 일러두고 나왔음에도 아이는 궁금했나 봅니다.


"동글아~ 무슨 전화를 8번이나 했어?"

"8시가 넘었는데도 엄마한테 연락이 안 와서..."

"엄마가 네 시간쯤 걸린다고 했잖아."

"그랬나~~~?"


천연덕스레 모르쇠를 남발하는 동글이와 통화를 하며 남편과는 눈으로 대화를 합니다. 영화 관람 후 둘이 나란히 카페 뒤풀이를 하고자 했던 계획은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일하다 중간에 짬을 낸 남편은 야근을 위해 회사로, 저는 아이들의 간식거리를 포장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022년을 마무리하며 돌이켜보니, 두 아이를 키우며 '엄마'로는 열심히 살았지만, '부부'로는 좀 소원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늦둥이 동글이도 혼자 너끈히 집을 지킬 수 있을 나이가 되었으니, 2023년에는 남편과의 시간도 만들어봐야겠습니다. 둘만 있고 싶어서 함께 꾸린 가정이었는데 넷이 되니 둘은 사라지고 넷만 남았던 것 같은 아쉬움이 느껴졌달까요?


보글보글 12월 넷째 주 "2002년을 보내며..."


거리 두기를 2년이나 했지만 2022년에도 코로나는 여전했습니다. 이보다 더한 고통이 있을까 싶었지만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21세기에도 무력 전쟁이 일어났고,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적잖이 충격을 전해줍니다. 전쟁으로 인한 공포와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소식에 가슴이 아픕니다. (우크라이나 아동 "전쟁 공포, 스트레스로 흰머리" 호소 | 연합뉴스 (yna.co.kr)) 직접 경험하지 않았어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전쟁,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평화로 가는 길은

이 둥근 세계에
평화를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가시에 찔려 피나는 아픔은
날로 더해갑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왜 이리 먼가요
얼마나 더 어둡게 부서져야
한 줄기 빛을 볼 수 있는 건가요

멀고도 가까운 나의 이웃에게
가깝고도 먼 내 안의 나에게
맑고 깊고 넓은 평화가 흘러
마침내는 하나로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울겠습니다

얼마나 더 낮아지고 선해져야
평화의 열매 하나 얻을지
오늘은 꼭 일러주시면 합니다

- 산문집 <풀꽃단상> 중에서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서 나눔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눔의 삶을 살다보니 내 삶이 나아지는 것을 스스로 체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주도 채 남지 않았지만 2022년을 돌아볼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귀하게 느껴집니다.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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