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는 휴지 잘 안 바꿔. 내가 바꿔놓으면 '어? 휴지 바꿔놨네? 고마워!!'라고 한다니까??"
"그러니까... 왜 휴지 바꾸는 걸 싫어할까?"
"아빠, 20년쯤 지났으면 이제 인정할 때도 됐잖아. 그냥 아빠가 바꿔..."
휴지 바꾸기로 부녀가 엎치거니 뒤치거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아니, 내가 진짜 신기해서 그래. 다른 건 더 번거로워 보이는 것도 척척 하면서 왜 휴지는 안 바꾸고 바닥에 내려놓고 쓰는 거야?"
"그렇지~ 나도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엄마도 모르겠대..."
하루 이틀일은 아닙니다. 아주 예전부터 그랬으니까요. 어릴 때는 부지런한 아버지께서 바꿔놓으셔서 휴지가 떨어졌던 경험이 거의 없었던 것 같고, 결혼 후에는... 없으면... 보다 보다 못한 남편이 바꿔놓았겠네요.
휴지가 떨어지면, 휴지심을 봉에서 빼내고
휴지를 봉에 끼운 뒤 걸이에 딸깍 끼우면 끝.
아침에 안방 화장실 휴지가 떨어진 것을 그냥 지나쳤다가 '로운이는 왜 휴지를 안 바꿔 끼울까?'에 대한 남편과 앵글이의 토론을 한차례 들어야 했습니다. 오후에 거실 화장실을 보니 여기도 휴지 교체가 필요한 것을 확인하고 귀찮음에도 갈아 끼웠습니다. 정말 딱 3초! 3초면 충분한 시간이었고, 막상 해 보면 별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 별것 아닌 것을 하지 않는 걸까요?
종일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이유 없음이지만 굳이 이유를 만들자면 '이 정도는 다른 가족원 중 한 명이 해도 될 일'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대체로 가정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잡무는 주부의 손길을 타는 일들이 많습니다. 주방일도 청소도, 계절 옷 정리라던가 장보기 등의 일들도 누구나 할 수 있긴 하지만 주부가 했을 때 효율성이 높고 두 번 일을 안 하게 되니 맡기지 않고 해 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휴지교체, 재활용 분리수거, 쓰레기 수거장에 버리기, 택배 상자 정리하기 등의 일들은 가족원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물론 저의 무의식이 말이죠.
신경 쓴 날은 교체하겠지만 어쩌면 아마도 앞으로의 삶에서도 여전히 휴지가 떨어져도 걸어놓지 않고 대충 선반에 올려두고 번거롭게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역시 이유는 없어요. 볼일을 보며 잠깐은 생각합니다. '바꿀까? 그냥 둘까? 바꿔?? 에이... 그냥 두자.'라고 말이에요. 어쩌다 한 가지씩 귀찮은 건 좀 안 하고, 번거로운 건 좀 피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