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공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운 May 08. 2023

난생처음 레커차를 타봤습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멈춤 사고

아침부터 주룩주룩 여름을 알리는 비가 내렸습니다. 세찬 바람과 함께 떨어지는 빗방울이 반갑지 않은 것은 먼 길 외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간만의 서울 나들이지만 반갑지 않았던 것은 옷차림 때문입니다. 굳이 나이 탓을 해 보지만 최근 불어난 몸무게로 마땅히 입을 만한 옷도 없고, 몸에 맞춰 옷을 사자니 그 또한 마뜩지 않아서입니다.


"하필 오늘 같은 날 비가 내리네... 비 오는 날 운전하는 건 정말 싫은데..."


사촌 동생 결혼식이 있는 날,

비로 인해 번거로워진 발걸음 보다 더 걱정인 건 신부입니다. 햇살 좋은 봄볕과 함께라면 더없이 예쁠 신부의 모습도 아른거립니다. 생의 첫 경험(누구나 처음이겠지만)을 아름답게 장식하고픈 바람을 가득 담은 야외 결혼식에 반갑잖은 비바람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엄마, 오후부터 차차 맑아진대."


딸아이의 말 한마디가 어찌나 반갑던지요. 전혀 걷힐 기세가 안보이더니만 오후 한시쯤 되니 정말 차차 그쳐갑니다. 모처럼 몸단장을 시작해 보았습니다. 대소사가 아니면 거의 화장을 하지 않는 편이라 간만의 번거로움이 생경하기만 합니다. 불어난 체형을 커버해 줄 단정한 정장을 찾아 입고, 지난겨울 딸아이에게 선물했던 가방도 빌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엄마 없는 식탁이 쓸쓸하지 않도록 준비해 둔 찌개와 간식거리를 아이들에게 일러주며 수선스레 집을 나서봅니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니 검은색 자동차에 물방울무늬 무늬가 범벅입니다. 지난밤 비를 맞은 채 그대로 말라버려 얼룩 해진 자동차가 영 맘에 들지 않습니다. '고속도로 진출 전 주유와 자동 세차를 하자'라고 생각하며 차에 올랐습니다. 시동을 켜고 액셀을 밟으며 출발!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설렘이 가득해질 그때, '덜컥!' 고리가 빠지는 느낌이 나더니 엑셀에서 힘이 빠지며 [하이브리드 시스템 점검! 시동을 껐다 다시 켜세요!] 안내 문구가 나오더니 자동차가 그대로 멈춰버렸습니다. 아무리 밟아도 힘없이 헛도는 엑셀, 코너에서 멈춰버린 자동차 때문에 뒤에서 연신 클랙슨을 울려댑니다. 줄줄이 선 자동차들과 클랙슨 소리에 쩔쩔매다 차에서 내려 뒷 차들에 양해를 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차가 갑자기 멈췄는데 시동이 켜지지 않아요. 후진해서 이동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줄 서 있는 차들에 일일이 머리를 조아리며 양해를 구하고 있는데 한 어르신께서,


"차가 안 움직여요? 좀 밀어볼까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좀 도와주시겠어요?"


몇 분이 차에서 내려 코너를 벗어난 갓길로 차를 밀어주셨습니다. 한 숨 돌리고 SOS 요청을 했더니 이십여분이 걸린다고 합니다. 밀어서 옮겨놓은 터라 코너를 갓 벗어난 상태여서 여전히 뒤쪽으로 서행하는 차들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레커차가 도착했고, 잠시 점검을 하더니 하이브리드 차량은 센타로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난생처음 레커차에 올랐습니다. 정비소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이 다행스레 느껴졌습니다.



결국 오랜만에 나선 서울 나들이는 자동차 멈춤 사고로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근로자의 날까지 휴무라 수리기간이 일주일은 걸릴 거라는 안내를 듣고 돌아선 길이 낯선 듯 친근합니다. 며칠 동안 내리던 비 덕분에 맑게 개인 푸른 하늘과 아직은 여운이 가시지 않은 성난 바람, 흩날리는 꽃잎과 꽃가루들이 온몸을 휘감으며 도닥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걱정할 가족들에게 안부전화를 넣으며 한 걸음씩 집을 향하여 옮겼습니다.

아침부터 괜한 빗줄기 탓을 하며 투덜대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갑니다. 오가는 길 족히 다섯 시간은 걸릴 여정이 축하해 줄 마음보다 앞섰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았습니다. 애꿎은 옷과 몸매를 핑계로 번거롭고 귀찮은 마음을 감추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축하의 마음보다 그 자리를 채우지 않아서 맞을 시선 때문에 애써 나섰던 길을 하늘도 아셨던 걸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집 근처까지 왔습니다. 누가 봐도 예식장 복장이라 산책하는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고, 모처럼 신은 구두여서인지 발꿈치는 아려왔습니다. '택시를 탈 걸 그랬나?' 뒤늦은 생각이 스쳤지만 홀로 걷던 그 길에 후회는 없었습니다.


비 온 뒤 다가오는 흙냄새와 차갑게 스치는 바람결, 흩날리는 꽃잎이 후광처럼 뒤덮는 그 모든 현상이 더할 나위 없던 늦은 오후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